2023/05 27

나이

■ 나이 “챵바오”(襁褓 : 강보)는 돌이 채 안된 영아를 말하고 “하이티”(孩提 : 유아)는 두세 살짜리 어린이를 “쓰천”(始龀: 이 갈기 시작)은 7, 8세 아동. “중쟈오 (總角:머리를 빗 어올려 두개의 뿔처럼 졸라맨 아이들의 머리모양) . “추이티아오(垂髮:머리를 땋아늘인 아이들의 모양)는 동자 들을 부르는 총칭이다. 이러한 호칭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즐겨 사용되고있다. 성어에 서낭반로 (徐娘半老)라는 말이 있다. 서낭은 남조(南朝) 시기 양원제(梁元帝)의 아내 서희(徐妃)를 가리킨다. “남사 원제 서희전(南史元帝徐妃傳)”에 따르면 서희는 아름답기는 했지만 줄곧 원제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 중년에 들어선 후 그는 황제 주변의 젊은 신하 계강(季江)과 관계를 맺었다. 어느 날 누가 계강에게 나..

카테고리 없음 2023.05.19

큰집과 작은 집

■ 큰집과 작은 집 ( 문의 ) 큰집과 작은집에 대한 질문입니다 장남의 집을 큰집이라고 부르는데 2남, 3남, 4남의 집을 5남이 부를 때 어떻게 합니까? 가장 막내이니까 2, 3, 4남의 집을 모두 큰집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아니면 2, 3, 4남의 집을 전부 2, 3, 4째 작은 집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의견이 한쪽은 모두 큰집이라고 칭해야 된다하고 다른 쪽은 장자의 집을 제외하곤 모두 작은집이라고 칭해야 된다고 하는데 정확한 근거에 의한 답변 부탁합니다. 답변) △ 이기 큰집 즉 장남의 집만 큰집이라고 합니다. 2째, 3째, 4재, 5째 분들은 모두 작은 집이 되며, 작은아버지라고 호칭을 합니다. 혼란을 막기 위하여 여러 형제분들 일 경우 둘째가 안동으로 장가를 가고, 셋째가 서울로 장가를 가고, ..

카테고리 없음 2023.05.18

호칭

■ 호칭 아버지 형제가 5명인데 그중 아버지는 제일 막내입니다. 그러면 제가 아버지의 제일 큰형님, 둘째형님, 셋째 형님, 넷째 형님을 호칭할 때 네 분 모두 큰아버지라고 하나요? 아니면 맏형님만 큰아버지고, 둘째, 셋째, 넷째의 호칭은 어떻게 되나요? 답변) △ 코라 모두다 큰아버지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동생분이 계시다면 작은 아버지라 부르셔야 하구요 △ 해맞이 옛날에는 그럴 때 사용하는 호칭이 있긴 했습니다. 큰 아버지를'백부', 그다음 큰아버지를 '중백부'로 말이죠... 하지만 요즘은 이런 호칭을 쓰지도 않고 정해진 호칭도 없습니다. *보통은 (가장 나이가 많은 아버지의 형을) 큰아버지를 '큰아버지', 그다음은 '둘째 큰아버지', 그다음은 '셋째 큰아버지',...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카테고리 없음 2023.05.17

세손 vs 대손의 차이는?

■ 세손 vs 대손의 차이는? 문의나 답변이 잘못된 내용은 원문에 *표시를 하고 붉은 색 ⇒ 다음에 바르게 수정합니다. 【아버지가 7일 전 돌아가셔서, 모레 돌무덤이 올라가고, 표지석이 올려 집니다. 그런데, ▲[*저는 표지석에, '〇〇공 29대손' 으로 적었는데, 문중 어르신이, '세손'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해줍니다.] ⇒ 그래서 '〇〇공 29세손'으로 바꿨고, 내일 돌에 새기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세손은, 왕위를 이를 아들의 맏아들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서, 대손은, 대를 이을 아들이란 뜻인데, 제 친구는 혹시 니네 집이 왕손이냐고 묻네요. ~ 참고로, 우리 집은 종가집입니다. 〇〇김씨, 〇〇공파의 2번째 종가집 입니다. 김알지가 최초 시조이고 〇〇왕이 또한 중시조입니다.* 질문) *〇〇공 ..

카테고리 없음 2023.05.16

제사 주재자

■ 제사 주재자 -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 ◈ 유족 간 합의가 없다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를 맡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5월 11일 나왔다. 아들에게 우선권을 주던 기존 대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깨진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숨진 A씨 유족 간 벌어진 유해 인도 사건과 관련한 원심판결을 이날 파기· 환송하며 이같이 밝혔다. A씨는 1993년 부인과 결혼해 딸 2명을 낳았다. 그는 이어 2006년 다른 여성으로부터 아들을 얻었다. A씨가 2017년 사망하자, 혼외자 생모는 A씨 부인· 딸들과 합의하지 않은 채 고인 유해를 경기도 파주 추모공원 납골당에 봉인했다. 이에 A씨 부인과 딸들은 “유해를 돌려 달라.”며 생모와 추모공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5.13

설 - 1

■ 설 - 1 설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복사하여 올립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설날을 원삭(元朔).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정(元正)· 원신(元新)· 원조(元朝)· 정조(正朝)· 정단(正旦). 세시(歲時). 세단(歲旦). 사시(四始). 삼시(三始). 세수(歲首)· 세초(歲初)·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 설의 어원 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이다. 그러고 그 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섧다"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의 ..

카테고리 없음 2023.05.12

절 – 4

■ 절 – 4 ◈ 우리나라의 절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절은 크게 선절과 앉은절로 나누어진다. 선절은 서 있는 자세에서 하는 절이다. 그 형태는 똑바로 선 자세에서 조용히 고개나 허리를 굽히는 것으로 그 굽히는 정도로 존경의 깊이를 표시한다. 이 때 양손은 사람에 따라 다리의 양옆에 자연스럽게 드리우거나 앞으로 모으기도 하나 양손을 모으는 것을 더 정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여성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는 경우가 많다. 앉은절은 앉은 자세로 하는 절로서, 대개 정중한 의식에서 행하는 큰절, 평상시 웃어른을 뵐 때 하는 평절, 그리고 약식절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절이 있다. ① 큰절은 평절에 비해 읍의 형식이 분명하고 절의 횟수도 평절의 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여자의 큰절은 혼자서 하기가 힘들고 실수할..

카테고리 없음 2023.05.12

절 – 3

■ 절 – 3 아래와 같은 좋은 글이 있기에 복사하여 올립니다. 1. 2. 3. 4.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첫째, 계수는 절을 하고 머리를 땅에 대는 것이다. 먼저 양손을 마주잡고 땅을 짚은 다음 머리를 땅에 대었다가 떼고 또다시 땅에 대고 오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주자는 손을 뒤집어서 머리를 땅에 닿도록 하는 것이라 하고, 『가례집람』에는 절을 하면서 이마를 내려 손에 닿도록 하고 엎드려 오래 있는 것인데, 때에 따라 몸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하가 임금을 뵙는 것은 계수 5배로서, 먼저 계수 4배를 한 다음 고두(叩頭) 1배를 하고, 동궁(東宮)을 뵙는 예는 계수 4배만 한다고 하였다. 둘째, 돈수는 절을 하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것이다. 먼저 양손을 마주잡고 땅을 짚은 ..

카테고리 없음 2023.05.11

절 – 2

■ 절 – 2 인터넷에 올라있는 글로 좋은 내용의 글이기에 복사하여 올립니다. ◈ 유가의 절 중국의 절은 유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이것을 유가(儒家)의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 특히 주자학을 지도이념으로 수용하면서부터 조선시대에는 유가의 절을 설명한 『가례』는 일상생활의 예절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절에 관한 문헌들은 『주자가례』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정구(鄭逑)의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 중의 「잡례(雜禮)」,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 중의 「도설(圖說)」, 유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 중의 「통례(通禮)」·「거가잡의(居家雜儀)」, 손여제(孫汝濟)의 『예서유편(禮書類編)』 중의 「거가잡의」, 김재홍(金在洪)의 『상변축사유..

카테고리 없음 2023.05.10

절 – 1

■ 절 – 1 ’절‘에 대한 글로 아래와 같은 좋은 글이 있어 복사하여 올립니다. 절을 의미하는 용어로 아래와 같은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배작(拜爵)· 읍양(揖讓)· 제천(祭天)· 내헌현(來獻見)· 공헌(貢獻)· 내조(來朝)· 조하공헌(朝賀貢獻)· 봉장공헌(奉章貢獻)· 궤배예일각(跪拜曳一脚)· 사귀신(祠鬼神)· 세시조하(歲時朝賀)· 조알(朝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중국과 인접했거나 보다 가까운 부여· 고구려· 예 등에서는 일찍부터 중국과의 외교의례에서 중국식 절이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절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을 제도로 묘제(廟制)를 들 수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는 121년(태조왕 69)에 왕이 부여에 가서 태후묘(太后廟)에, 168년(신대왕 4)에는 왕이 졸본(..

카테고리 없음 2023.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