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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 11

■ 족보 - 11 ◈ 대자(代字) 해당 글자와 뜻은 같은 별도의 한자를 쓴다.  연(淵)개소문을 천(泉)개소문으로 쓰거나, 당나라 시대에 출간된 사기에서 세가(世家)를 계가(係家)로 쓴 예 등이 있다. 피휘를 하는 것도 단순히 글자를 피하는 것에서부터 심지어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로 안 되면 음만이라도 바꿔 읽었다. • 글자의 전체를 피한다. (예: 한나라 문제의 이름인 유항(劉恆)를 피휘 하려고 기주의 항산(恒山)은 상산(常山)으로 개명되었다. 바로 '상산 조자룡' 할 때 그 상산이 맞다.  또 한나라 경제의 이름이 유계(劉啓)였기 때문에 계칩(啓蟄)을 경칩(驚蟄)으로 바꾸었다.) • 글자의 일부도 피한다.  (예: 진시황의 이름 정(政)자의 일부인 正을 피하려고 정월(正月..

카테고리 없음 2024.11.23

족보 - 10

■ 족보 - 10 ◈ 피휘(避諱) - 기휘(忌諱) 피휘(避諱)를 기휘(忌諱)라고도 한다.  휘(諱)는 본래 '꺼릴 휘'인데, 옛 관습에서 함부로 부르는 것이 꺼려지는 군주 등의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피휘를 직역하면 이 '휘를 피한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한 조상 [1], 성현(聖賢), 군주 [2]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한자문화권의 옛 관습. 드물게 혐오스러워서 부르기 회피하는 것도 피휘로 본다.  예를 들면 너무나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초기에는 글자만 피하고 음은 같거나 비슷한 한자를 골랐으나 후대에 가면서 음이 같은 한자도 기휘에 걸려 사용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로 인해서 백성들의 불편해 했는데, 그래서 조선 시대 왕..

카테고리 없음 2024.11.22

족보 - 9

■ 족보 -  9 옛 사람들은 이름 외에 별도로 字(자)나 號(호)를 지었다.  옛사람들은 이름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이 때는 兒名(아명)을 지어 불렀고, 冠禮(관례)를 올려 성인이 된 뒤에는 이름대신 字(자)나 號(호)를 지어 불렀다.  ◈ 兒名(아명) :  아이(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때 지어 부르는 이름으로 귀한 집 자손일수록 귀하게 되라는 뜻에서 '개똥이' 등 천하게 짓는다.  예를 들면, 豚兒(돈아) 즉 '돼지새끼'라는 뜻이다. ◈ 자(字) :  관례(冠禮)를 치르고 성인이 되면 스승이나 집안 어른이 이름자와 비슷하게 짓거나 품성과 관련된 글자를 써서 지었다.  예를 들면,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자는 여해(汝諧)이다. ◈ 號(..

카테고리 없음 2024.11.21

족보 - 8

■ 족보 - 8 13. 서출(庶出)과 승적(承籍)  庶出(서출)이란 妾(첩)의 소생을 말하며 庶子(서자) 또는 그 자손들을 가리켜 庶蘖(서얼)이라고 하여 朝鮮時代(조선시대) 側出(측출)이라고도 한다.  또한 자손에게는 일정한 사회적 제한이 있어서 科擧(과거)에도 文科(문과)의 응시가 금지되었고 武科(무과)나 잡과(雜科: 역과 . 의과. 율과)에 한하여 응시할 수 있었다.  承嫡(승적)이란 庶子(서자)가 嫡子(적자)로 되는 것을 말한다.  14. 배위(配位)  配位(배위)란 配偶者(배우자)를 말하는 것으로 妃匹(비필)이라고도 하며, 譜牒(보첩)에는 配(배)자만 기록하고, 本貫(본관) 및 姓氏(성씨)와 4조(四祖: 부 . 종 . 증조 . 외조)등을 표시한다.  족보 관련용어 ◎비조(鼻祖): 시조(始祖) 이..

카테고리 없음 2024.11.20

족보 - 7

■ 족보 - 7 9. 방조(傍祖)와 족조(族祖)  傍祖(방조)란 6代祖(6대조) 이상의 兄弟(형제)를 일컫는 말이다.  族祖(족조) 傍系(방계)인 무복지조(無服之祖: 복을 입지 않는 먼 대의 조)를 말한다.  10. 종손(宗孫)과 장손(長孫)  宗孫(종손)이란 宗家(종가)의 맏손자(孫子)를 일컫는 말이며 長孫(종손)이란 종가가 아닌 次子(차자) 계통, 집의 맏손자를 말하고 大宗孫(대종손)은 大宗家(대종가)의 맏손자를 일컫는 말이다.  11. 경파(京派)와 향파(鄕派)  宗派(종파)의 파 속 외에 血緣的(혈연적)인 신분을 밝히는 말로 경파 또는 향파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門中(문중)에 따라 종파를 초월하여 크게 두 계통으로 구분하는 경우이다.  京派라 함은 서울 지역에 살면서 대대로 벼슬을 ..

카테고리 없음 2024.11.19

족보 - 6

■ 족보 - 6 6. 분적(分籍)과 분관(分貫)  국가에 대한 功勳(공훈)으로 封君(봉군)되었거나 혹은 후손 중에서 어느 1파가 다른 地方(지방)에 分居(분거)해서 오래 살게 되면 그 지방을 근거로 貫籍(관적)을 새로이 창설하게 되어 자동적으로 分籍(분적)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분적 또는 分貫(분관)이라 하며, 이로 말미암아 새로이 분관되는 시조를 始貫祖(시관조) 혹은 得貫祖(득관조)라 일컫는다.  7. 사관(賜貫) . 사성(賜姓) . 사명(賜名)  옛날에는 나라에 공을 세워 功臣에 녹훈된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歸化(귀화)해 온 사람에게 포상의 표시로서, 國王(국왕)이 本貫(본관)이나 姓氏(성씨), 또는 이름을 下賜(하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賜貫(양관), 賜姓(양성) 또는 賜名(양명)이라고 하였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18

족보 - 5

■ 족보 - 5 ◈ 족보의 체제  족보의 조직이나 내용에 관하여서는 족보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편집은 일정한 원칙과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공통점이 없지 않다.  족보의 내용을 대략 기록의 순서에 따라 구성요소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서(序)와 발(跋)  첫째 서는 족보의 권두에 실린 서문이며, 족보 일반의 의의, 동족의 연원., 약력, 족보편성의 차례 등을 기술한다.  둘째 발은 서와 거의 다름이 없는데, 다만 편찬의 경위가 좀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른 동족원 일지라도 세상에 이름난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것도 있으나, 흔히는 직계후손의 학식 있는 사람 중에서 이를 기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보 수정하게 되는 경우에는 일반적..

카테고리 없음 2024.11.16

족보 – 4

■ 족보 – 4 ◈ 족보의 의의 족보는 일가의 혈통과 가계를 알고 동족의 단결과 보다 나은 활동을 추진하기 위한 값진 씨족의 보감(寶鑑)이다.  그렇다면 족보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보(譜) : 보록야(譜錄也)」 . 「보(譜) : 포야(布也) 포렬견기사야(布列見其事也)」등으로 나와 있다.  즉 「보(譜)」란 적록(籍錄)한다든가, 사물을 포렬(布列)한다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보(譜)」에는 락보(樂譜)·음보(音譜)·곡보(曲譜)등과 같이 무형의 것에 대한 포렬도 ㅡ있으나, 전보(錢譜) · 인보(印譜) · 화보(花譜)등과 같이 유형의 것에 대한 적록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보(譜)」는 인간관계를 기록한 것을 말한다.  더우기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보(譜)」란 학문의 도통(..

카테고리 없음 2024.11.15

■ 족보 - 3

■ 족보 - 3 ◈ 족보 관련 용어 - 3 ① 아명(兒名)과 자(字) 또는 관명(冠名)  옛날에는 어렸을 때 부르는 아명(兒名)이 있고, 남자가 20세가 되면 관례를 올리면서 짓게 되는 관명(冠名)이 있었다. 관명을 흔히들 자(字)라고 했다. \자는 집안 어른이나 스승, 선배 등이 성인이 된 것을 대견해 하는 뜻으로 지어 주었다.  ② 호(號) 옛날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임금, 부모, 스승과 존장의 앞에서만 사용했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동년배, 친구, 그 외 사람들은 字를 불렀고, 어린 사람이나 격이 낮은 사람, 또는 허물없는 사람에게는 호(號)를 지어 불렀다.  호는 남이 지어 줄 수도 있고, 스스로 짓기도 했었다.  호는 요즘도 쓰인다.  ③ 시호(諡號) 신하가 죽은 뒤에 ..

카테고리 없음 2024.11.14

◈ 족보 - 2

◈ 족보 -  2 좋은  내용의 글로 복사하여  올립니다. 족보는 어느 나라나 처음에는 왕가의 계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른바 「왕대실록」이니 「원록(源錄)」이니 하여 왕실의 계통 을 기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각 씨족의 족보가 발달한 것은 과연 언제부터인가에 대하여는 이를 명백하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의 한나라 시대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 문헌에 의하면, 후한 이후 중앙 또는 지방에서 대대로 고관을 배출하는 우족(右族)·관족(冠族)이 성립됨에 따라 문벌과 가풍을 중요시하는 사상이 높아져서, 이때부터 족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문벌의 전성기인 위(魏)· 진(晉)· 남북조(南北朝)에 있어서는 제가의 족보를 수집 심사한 뒤에 이것..

카테고리 없음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