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

시조 초강지(初降地)의 여러 사적들

녹전 이이록 2008. 12. 10. 19:15

● 시조 초강지(初降地)의 여러 사적들

 

*초강지(初降地)를 초항지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항복할 항자로 읽는 것이 아니고 '내릴 강'으로 읽는다.

 

 

○ 표암봉(瓢巖峰)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 16번지에 소재하는 경주 국립공원 소금강지구(옛명칭-금강산)의 서남쪽산 기슭의 산봉우리를 일컫는다.

신화로 시조께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와 발을 디디신 땅으로 전해진다.


표암은 『박바위-밝바위』, 『밝은 바위(光明巖)』를 뜻한다.


이곳은 신라6촌(新羅六村) 가운데 근본(根本)이 되는 급량부(及梁部)라는 부명(部名)이 붙여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표암공 휘 알평(閼平) 시조(始祖)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곳이다.

서력 기원전 69년에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열고 신라건국(新羅建國)을 의결했으며, 그후 서력 기원전 57년에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의 혈맥(血脈)의 근원지(根源地)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光明理世)'라는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화백이라는 민주정치 제도의 발상(發祥)을 보인 성스러운 곳이다.

* 북쪽으로 보아서 오른쪽에 석탈해 왕릉이 있다.

 

소금강산 옆으로 흐르는 강이 알천(閼川-현 북천. 앞쪽 큰 강이 형산강)이다.

 

○ 악강묘(嶽降廟)

 

 

산 아래쪽 평지에 1971년 辛亥(신해) 十月에 國家(국가)에서 건립하였다.

 

楊山村長(양산촌장)(及梁部大人(급양부대인) 諱(휘) 謁平(알평) 始祖(시조)의 廟宇(묘우--신위를 모신 집)이다.

2003년 11월 18일 18.9평으로 중건되었다.

 

○ 표암재(瓢巖齋)  

 

 

산 아래쪽 평지에 세워진 시조 사우(祠宇-사당)이다.

1917년 2월 27일에 시공하여 8년에 걸쳐 강원도 대관령 백송으로 건립하였다.

 

1925년에 준공하고 1971년에 중수하였다.

 

○ 광림대(光臨臺) 

 

 

시조(始祖)께서 처음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밟으신 곳인 산위 표암봉 등성이에 초강지(初降址)를 보호하기 위하여 1985년 국가(國家)에서 세운 집이다.

 

○ 박바위(밝바위) 

 

 

문화재로 지정됨.

 

始祖(시조)께서 初降(초강-처음 하늘에서 내려 오심))하시어 沐浴(목욕)하신 곳으로 傳(전)해 내려온다.

산 위 표암봉 등성이의 고르지 못한 편평한 바위 겉면 한 가운데에 길쭉한 상자 모양을 이루는 구덩이를 이른다.

 

○ 유허비각(遺墟碑閣)

 

조선조 순조6년(1806년) 9월에 건립된 비이다.

 

시조(始祖)께서 신라의 전신(前身)인 사로국(斯盧國)을 건국하고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는 사적비이다.

1806年(년) 丙寅(병인) 9月에 後孫(후손) 大匡輔國(대광보국) 崇祿大夫(숭록대부) 原任(원임) 左議政鰲恩君(좌의정오은군) 敬一(경일)께서 찬(撰)하시고 後孫(후손) 正憲大夫(정헌대부) 刑曹判書(형조판서) 兼(겸) 知經筵春秋館事(지경연춘추관사) 五衛部總管(오위부총관) 集斗(집두)께서 書(서) 하셨으며 現(현) 瓢巖薺(표암제)가 있는 곳에 建立(건립)하고 1846年(년) 丙午(병오)에 重修(중수)하셨으며 1915年(년) 乙卯(을묘) 夏(하-여름)에 현 위치로 移建(이건)하였다.

 

○ 석제단(石祭壇)


 

문화재로 지정됨.

유허비를 세우기전에 산 위쪽에 돌로 제단을 쌓아

시조의 향사(享祀-제사)를 지내던 石壇(석단)이다.


○ 암벽각자(巖壁刻字)-自然岩碑(자연암비)

 

 

정조 11년 정미 1787년 7월에 후손 영천군수(永川郡守) 집성공(集星公)이 평지 뒤쪽의 자연암에 가로로 '瓢巖(표암)',  세로로 '月城李氏始祖諱閼平公降處(월성 이씨 시조 휘 알평공 강처)'라고 글씨를 조각한 것이다.

*'降'자는 항복을 의미할 때는 항복할 '항'자로 읽고 내려온다는 의미일때는 내릴'강'자로 읽는다.


 

○ 시조 경모비(始祖景慕碑)

 

 

1979년 11월11일 당시 경주이씨중앙화수회 총재(總裁)이신 호암(湖巖) 병철(炳喆)선생의 성금으로 세웠다.
전주인(全州人)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선생께서 글을 지었으며
제자(題字-제목 글자)는 병철 선생께서 쓰셨다.

'慶州李氏始祖諱閼平景慕碑(경주이씨시조휘 알평경모비)'라고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