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시조 익재 이제현

동문선(東文選)에 올라있는 익재공(益齋公)의 글(B)

녹전 이이록 2009. 2. 7. 17:24

● 동문선(東文選)에 올라있는 익재공(益齋公)의 글(B)

 

 

◆ 동문선 제9권 오언율시(五言律詩)

 
○ 북상(北上)

 
외로운 기러기 가을 소리 괴롭고야 / 斷雁秋聲苦
으스름 닭소리 밤이 늦었네 / 荒鷄夜色?
등불 켜라 하니 게으른 종 얄밉고 / 呼燈憎?懶
말을 태우니 어린 자식 추워 떠네 그때 어린 자식을 거느리고 갔다 / 騎馬?兒寒
풀을 헤치며 가니 서리가 소매에 날리고 / 草動霜飄袂
얼음이 뚫어지니 물이 안장에 뛰는구나 / 氷穿水?鞍
임의 은혜를 아직 못 다 갚았으니 / 主恩猶未報
있는 힘 다해 나갈 뿐, 감히 편안 찾으랴 / 努力敢求安

노를 떠날 때엔 그리도 마음 슬프고 / 去魯情何極
진에 노니 흥이 무르익지 않았네 / 遊秦興未?
강굉의 따뜻한 이불 내 못 잊건마는 / 每懷姜被暖
범숙의 찬 도포를 뉘라서 생각하리 / 誰念范袍寒
술을 대하여 자주 검을 퉁기고對酒頻彈劍
등불을 끄곤 잠깐 안장을 베개하네 / 吹燈乍枕鞍
흰 구름이 볼수록 차츰 멀어지니 / 白雲看漸遠
어쩌면 내 고향에 소식을 전하올까 / 安得報平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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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魯)를 떠날 : 공자(孔子)가 그의 본국인 노국(魯國)을 버리고 타국으로 갈 적에,

“나의 걸음이여[遲遲吾行也].”하였으니, 그것은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마음이다.

 

*진(秦)에 노니 : 당나라 시인(詩人)들이 유진(遊秦), 입진(入秦)이란 말을 간간이 쓰는데,

그것은 당나라 수도(首都)가 옛날의 진(秦)인 장안(長安)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元)나라의 수도는 북경이나, 당나라 시인의 문구를 그대로 써서 중국에 가는 것을 유진(遊秦)이라 하였다.

 

*범숙(范叔)의 찬 도포(道袍) : 전국 때 위(魏)의 범수(范? 范叔)가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고자질로 억울하게 매를 맞고 쫓겨나서 진(秦)에 간 뒤에 상국(相國)이 되었는데,

그때에 수가가 진(秦)에 사신(使臣)으로 왔다. 범수는 남루한 옷으로 수가를 찾았다.

 

그가 보고 가엾게 여겨,
“범수 몹시도 춥겠구나.” 하고 자기가 입었던 비단 도포[?袍]를 벗어 주었다.《史記 范?傳》

 

*검(劍)을 퉁기고 : 맹상군(孟嘗君)의 문객 풍환(馮驩)이 탄검(彈劒)하면서 불우(不遇)한 노래를 부른 고사.

 

*흰 구름이 …… 멀어지니 :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幷州)에 있을 때에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돌아보니,

흰 구름이 외로이 날아가는지라,
“내 어버이 집이 저 아래 있는 것을,”이라 했으니 흰 구름 밑에 고향이 있다는 뜻이다.

 

 

○ 장안 여관에서[題長安逆旅]

 
거마가 들끓는 함곡관(函谷關) 길에 / 車馬函關道
풍진에 해어진 소계자 갖옷 / 風塵季子?
수레바퀸 천하의 반을 돌았네 / 轍環天下半
마음은 물을 따라 동으로 가누나 / 心逐水東流
만사는 오직 술만 부르고 / 萬事唯呼酒
천산에 홀로 누에 올랐네 / 千山獨倚樓
청운엔 지기 있거니 / ?雲有知己
어찌 긴 탄식할손가 / 未用歎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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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진(風塵)에 …… 갖옷 : 각주 ‘해어진 갖옷’ 참조

 

 

○ 32년 만에 다시 찾은 그림

 

 

연우(延祐) 기미년(己未年 충숙왕 6년)에 내가 강남(江南) 보타굴(寶陀窟)로

향(香)을 내리려 가시는 충선왕(忠宣王)을 모시고 갔더니,

왕께서 옛 항주(杭州)의 오수산(吳壽山- 어떤 본에 陳鑑如라 했음은 잘못이다)을 불러내

보잘것없는 얼굴을 그리게 하고 북촌(北村) 탕 선생(湯先生)이 찬(贊)을 썼었다.

 

북으로 돌아오자 남이 빌어간 후로 그 소재(所在)를 잃었더니,

그 뒤 32년에 내가 본국의 표(表)를 받들고 경사(京師)에 가 다시 찾았다.

 

보니, 노년ㆍ장년의 얼굴 다름이 놀랍고 헤어지거나 만나는 데도 때가 있음을 느꼈기로

40자(字)로 적어본다

 

[延祐己未予從於忠宣王降香江南之寶陀窟王召古杭吳壽山令寫陋容而北村湯先生爲之贊
北歸爲人借觀因失其所在其後三年二年余奉國表如京師復得之驚老壯之異貌感離合之有時題

四十字爲識]

 

 

*국립박물관 소장 국보 110호인 '이제현 초상'을 그린 인물을 항주의

오수산(吳壽山)이라고도 하고 진감여(陣鑑如)라고도 한다.

 

 '익재집(益齋集)'에는 오수산(吳壽山)이라고 하고 그림에는 진감여(陣鑑如)로 쓰여 있다.

 

당시의 석학인 탕병룡(湯炳龍)이 그림에 찬기(贊記)한 기록은 진감여(陣鑑如)이다. 
 
내 옛날 이 초상을 그려 받을 땐 / 我昔留形影
푸릇푸릇 두 귀 밑 털에 봄이러니 / ??兩?春
이 그림이 몇 해나 여기저기 떠돌았나 / 流傳幾歲月
다시금 만나보니 정신 아직 그대로 / 邂逅尙精神
이보아, 이 물건이 딴 물건이 아니로세 / 此物非他物
어와, 내 전신이 바로 이 후신일세 / 前身定後身
아이와 손자들은 보고도 모르겠는지 / 兒孫渾不識
날더러 “이게 누구냐” 자꾸 물어보누나 / 相問是何人

 

 

◆ 동문선 제15권 칠언율시(七言律詩)
 

○ 제갈공명 사당(諸葛孔明祠堂)

 

 

뭇 영웅들 봉기하여 천하의 일 어수선한데 / 群雄?起事紛拏
홀로 경륜 안고 초려에 누웠었네 / 獨把經綸臥草廬
삼고를 받고 난 뒤 나라에 몸을 바쳤고 / 許國義高三顧後
칠금 뒤에 출사의 꾀가 원대했네 / 出師謨遠七擒餘
목우 유마의 재주를 그 누가 알리 / 木牛流馬誰能了
윤건과 우선으로 나는 자약하였네 / 羽扇綸巾我自如
천고의 그 충성 해와 달처럼 걸렸으니 / 千載忠誠懸日月
그까짓 위와 진이야 지금 모두 폐허뿐 / 廻頭魏晉但丘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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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금(七擒) : 제갈량이 위(魏)를 치고자 출사하기 전에 뒷 염려를 없애기 위하여

먼저 남만(南蠻 지금 雲南省)을 쳐 그 왕 맹확(孟穫)을 사로잡았다가

그가 열복(悅服)할 때까지 도로 놓아주기를 무릇 일곱 번 했으니,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목우유마(木牛流馬) : 제갈량이 위(魏)와 싸울 때 험준한 산길에 군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썼다는 나무 소와 딸딸이 말.
그 제작법(촌법)이 그의 집(集)에 자세히 적혀 있으나, 그 작용은 미상.

 

*윤건(輪巾)과 우선(羽扇) : 제갈량이 평소에 군중에서 항상 애용하던 흰 새털 부채[白羽扇]와 실로 짠 두건(頭巾).

 

 

○ 사귀(思歸)
 
편주로 떠도는 내 마음 서글퍼라 / 扁舟漂泊若爲情
사해가 다 형제라고 누가 일렀던고 / 四海誰云盡弟兄
기러기 소리 듣자 고향 편지 그립고 / 一聽征鴻思遠信
돌아가는 새를 보면 수고로운 신세 가엾어라 / 每看歸鳥嘆勞生
늦가을 청신(고을 이름) 나무에 궂은 비가 자욱하고 / 窮秋雨鎖靑神樹
지는 해 백제성에 구름이 비끼였네 / 落日雲橫白帝城
과연 순나물 국이 양젖보다 나으니 / 認得蓴羹勝羊酪
내 행장을 군평(유명한 점사)에게 물어 무엇하리 / 行藏不用問君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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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行藏) : 공자(孔子)의 말에, “세상이 나를 쓰면 도(道)를 행(行)하고 나를 버리면 감춘다[藏].” 하였다.

 

 

○ 촉에서 연으로 돌아가는 노상에서[路上 自蜀歸燕]
 

말 위에서 촉도난(비파 곡조 이름)을 읊으며 / 馬上行吟蜀道難
이 아침에 비로소 또 진관에 드네 / 今朝始復入秦關
날 저문데 푸른 구름은 어부수를 격했고 / 碧雲暮隔魚鳧水
가을철 단풍은 조서산에 이었네 / 紅樹秋連鳥鼠山
문자는 천고의 한을 더하고 / 文字剩添千古恨
명리에서 일신의 한가함을 뉘 얻었던고 / 利名誰博一身閑
아아, 몹시도 그립구나, 저 안화사(경치가 좋다 한다) 앞길 / 令人最憶安和路
멋대로 죽장망해로 오가던것 / 竹杖芒鞋自往還

 

 

○ 함곡관(函谷關)

 

 

형승은 열두 제를 내려다보는데 / 形勝平看十二齊
밑에는 길이 없고 위론 사다리도 없네 / 下臨無路上無梯
흙 주머니로 황하의 북을 막았고 / 土囊約住黃河北
지축은 백일 서쪽에 맞닿았구나 / 地軸句連白日西
하늘의 뜻은 이미 삼척검(한 나라 고조高祖)에 돌아갔지만 / 天意已歸三尺劍
인심이야 어이 한 덩이 진흙뿐일까 / 人心豈特一丸泥
가을 곡식 이랑에 가득하고, 풍진이 고요하니 / 秋禾滿畝風塵靜
안장에 편히 걸터앉아 낮 닭 울음 듣노라 / ?跨征鞍聽午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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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곡관(函谷關) : 전국(戰國) 시대 진(秦)에서 산동 6국(山東六國)으로 통하는 관문(關門).

 

*한 덩이 진흙 : 후한(後漢) 때 외효(??)의 장수 왕원(王元)이 효를 달래며 말하되,

 

“청컨대 원이 한 덩이 진흙으로 동으로 함곡관을 봉하리이다.” 하였다.

 

 

○ 이릉조발(二陵早發)

 
내가 성도(成都)로 가려 할 때에, 내한(內翰) 송설(松雪) 조자앙(趙子?) 공이

고조(古調) 한 편을 보내었는데,
“금성이 즐겁다 이르지 마소, 일찍 돌아옴이 좋은 계책일 것을[勿云錦城樂早歸乃良圖].“
이란 시구가 있었다.

 

10월에 북으로 돌아갈 제 눈온 뒤, 이릉 도중에서 문득 그 시를 기억하여 이를 지어 부쳐드렸다.

 

 

역정에 꿈이 깨니 새벽 등이 가물가물 / 夢破郵亭耿曉燈
말 안장 타려 하니 추위가 스산하네 / 欲乘鞍馬覺凌兢
노자가 단을 사르던터에 구름만 뭉게뭉게 / 雲迷柱史燒丹?
문왕이 비를 피한 능에 눈이 펑펑 내리네 / 雪壓文王避雨陵
세사에 부닥치니 혼자 가슴에 덩이 생기고 / 觸事誰知胸?磊
시 읊으매 머리털만 자꾸 헝클어질 뿐 / 吟詩只得髮??
두건의 뿔 꺾이고 갖옷 해졌으니 / 塵巾折角?穿縫
이 꼴로 용문에 가서 이응 어이 뵈올꼬 / 羞向龍門見李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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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丹)을 사르던 : 신선이 되는 단약(丹藥)을 연(煉)하여 만드는 것이다.

*문왕(文王)이 비를 피한 능(陵) : 효(?)지방에 2능[二陵]이 있는데

북릉(北陵)은 주문왕(周文王)이 바람과 비를 피하던 곳이다.

*가슴에 덩이 생기고 : 진(晉)나라 완적(阮籍)이 말하기를,
“가슴에 생긴 불평 덩이가 있어서 술을 부어야 한다.” 하였다.

 

*이응(李膺) :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사람. 자(字) 원례(元禮).

성행(性行)이 고상하고 풍골이 준수하여 태학(太學) 중에서,
“천하의 모범 인물은 이원례”라는 말이 있었고, 선비로서 그에게 접대를 받으면 “용문에 올랐다[登龍門].”고 말했다.

 

조자앙(趙子?)이 당시 원조의 명사였고 작자가 그를 좇아 놀았으므로, 조자앙을 이응에게 비긴 것이다.

 

 

○ 감회(感懷)

 

 

촌점에 팔 베고 누우니 밤은 삼경인데 / 枕肱茅店夜三更
금대를 바라보니 갈 길이 몇 리인고 / 矯首金臺路幾程
괴로운 신세는 탄협 하는 손과 같고 / 若節頗同彈鋏客
한창 나이는 유를 버린 젊은이를 지났네 / 芳年已過棄?生
궁달은 천명이나 어버이 늙음은 슬프구나 / 窮通有命悲親老
완급에 재주 없으니 밝으신 임금께 부끄럽네 / 緩急非才愧主明
필경 내 행장을 누구더러 물어볼꼬 / 畢竟行藏誰與問
창에 가득한 서릿달 만이 내 정을 알아주네 / 滿窓霜月獨鍾情

반세에 조충 공부 장부로서 부끄럽더니 / 半世雕蟲恥壯夫
중년에 말을 타 먼 길에 지쳤소이다 / 中年跨馬倦征途
희미한 등불 밑에 배반이 초초하고 / 杯盤草草燈花落
외로운 새벽달 아래 관새가 멀고머네 / 關塞??曉月孤
화표의 학은 천 년 만에도 아직 안 돌아왔네 / 華表未歸千載鶴
상림 까마귀에게 누가 한 가지 빌려줄까 / 上林誰借一枝烏
돈 있으면 술 사 마시고 불평한 속을 씻으리니 / 有錢徑買?腸酒
구태여 시를 지어 머리 희어 무엇하리 / 莫使詩班入?鬚

장경이 촉 떠날 때 기둥에 글을 썼고 / 長卿去蜀曾題柱
추자는 양에 놀며 옷자락을 끌었네 / 鄒子遊梁得曳?
분주해도 공은 없으니 벼슬 버려야 하리 / 奔走無功合投劾
꿈같아라, 사귀던 벗들은 어디서 사는지 / 交遊似夢惜離居
도롱이ㆍ삿갓 차림으로 갈매기 따라 못 노니 / 未?蓑笠盟鷗鳥
도서 속에서 좀벌레나 될 신세로다 / 已分圖書養?魚
고향을 바라보며 때로 혼자 웃노니 / 一望鄕關時自笑
인생이 백 년 사는 천지가 이 역시 여사(旅舍) 아니리 / 百年天地亦?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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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를 버린 : 한(漢) 나라 종군(終軍)이 약관(弱冠)에 장안(長安)으로 내려가고

제남(濟南)에서 걸어서 관(關)에 드니, 관리(關吏)가
“비단과 유(?)를 맡겨 두라.” 했다.

 

군이, “왜 그러느냐.” 물으니,
“뒷날에 관(關)을 나올 때에 유(?)와 맞추어 보아야 한다.” 했다.

 

군이 말하되, “대장부 서(西)로 가는데 마침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하고 유(?)를 버리고 갔다.

 

그 뒤에 과연 사자(使者)가 되어 절(節)을 가지고 관(關)을 나왔다.

 

*조충(雕蟲) : 좀 글공부[雕蟲)]는 벌레를 아로새기는 것 같은 조그만 재주, 즉 사부(詞賦)와 같은 말예(末藝).

 

*상림(上林) 까마귀에게 …… 빌려줄까 : 당(唐) 이의보(李義父)가 임금 앞에 불려 나가 뵈옵는데, 태종(太宗)이,

“‘까마귀’를 두고 시를 지으라.” 하니 그가 읊되, 끝구에,
“상림(上林) 엔 나무도 많건만, 깃들일 한 가지도 안 빌려주는구나.” 하니, 태종이 말하기를,

“장차 온 나뭇가지를 네게 빌려주리니 어찌 다만 한 가지뿐이랴.” 하였다.

 

뒤에 등용되어 벼슬이 상위(相位)에 올랐다.

 

*장경(長卿)이 …… 글을 썼고 :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 촉(蜀)에서 서(西)로 갈 때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다가 다리의 기둥에 쓰기를,
“높은 수레와 사마(駟馬)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 했다.

 

*추자(鄒子)는 …… 끌었네 : 추자는 한 나라 추양(鄒陽). 그는 오(吳) 나라 양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 되어 말하되,
“어느 왕의 문에서 긴 옷자락을 끌지 못하랴.” 했다.

 

왕후(王侯)의 문객(門客)을 말한 것이다.

 

 

○ 다경루에서 눈온 뒤에[多景樓雪後]

 
높은 다락에 오르니 공중에 가득한 눈이 반갑더니 / 樓高正喜雪漫空
갠 뒤에 바라보니 더 한층 기관일세 / 晴後奇觀更不同
만 리 하늘은 은세계를 둘렀고 / 萬里天圍銀色界
육조의 산들은 수정궁을 안았네 / 六朝山擁水精宮
창해에 솟는 햇빛은 거나한 눈을 흔들고 / 光搖醉眼滄溟日
초목 휩쓰는 바람이 시 짓는 창자에 스며드네 / 淸透詩腸草木風
우스워라, 구구이 무슨 일에 골몰하여 / 却笑區區何事業
10년 간 번잡한 거리 땀 흘리며 다녔나 / 十年揮汗九街中

 

 

○ 다경루에서 유일재를 모시고 옛사람의 운으로 함께 지음[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韻同賦] 

 
양자강 남쪽, 옛 윤주 / 楊子津南古潤州
환락은 몇 번이고 시름은 얼마였던고 / 幾番觀樂幾番愁
고기가 미끼를 탐하듯 나라일 본 영신들 / ?臣謀國魚貪餌
새가 모이를 기르듯이 백성 걱정하는 간리들 / 點吏憂民鳥養羞
바람에 풍경이 뎅겅, 밀물이 포구에 들고 / 風鐸夜喧潮入浦
어둠 속에 누역 오뚝, 비가 다락에 휘뿌리네 / 煙蓑暝立雨侵樓
중류에 돛대를 침은 내 일이 아니로세 / 中流擊楫非吾事
하늘 가 범려의 배를 한가히 바라보네 / 閑望天涯范?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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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류에 돛대를 침 : 진(晉) 조적(狙?)이 원제(元帝)에게 청하여 군사를 통합해서

북벌(北伐)할 때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밝히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이 강과 같으리라.” 했다.

 

드디어 그가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했다.

 

*범려(范?)의 배 : 범려(范?)가 계교를 써 오(吳)를 멸한 뒤에 벼슬을 버리고

미인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떠 놀았다 한다.

 

 

○ 고정산(高亭山)

 

 

강녘의 산들은 아미를 엷게 단장한 듯 / 江上山如淡掃眉
인가 울타리엔 무궁화가 곳곳에 피었네 / 人家處處槿花籬
배 멈추고 송림 속의 절 어딘지 묻다가 / 停舟欲問松間寺
지팡이 짚고 대 아래 못 먼저 엿보네 / 策杖先窺竹下池
돛 그림자는 황혼에 멀리 초원을 이었고 / 帆影暮連芳草遠
종소리는 새벽에 천천히 구름에서 나오누나 / 鍾聲曉出白雲遲
난간에서 바라보니 삼오가 손바닥만 / 憑欄一望三吳小
장군이 말 세웠던 때를 상상하여 보노라 / 像想將軍立馬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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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산(高亭山) : “백운(伯韻) 승상(丞相)이 군사를 주둔했던 곳.”이라는 제주(題註)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