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시조 익재 이제현

동문선(東文選)에 올라있는 익재공(益齋公)의 글(D)

녹전 이이록 2009. 2. 8. 16:34

● 동문선(東文選)에 올라있는 익재공(益齋公)의 글(D)

 

 

◆ 동문선 제21권 칠언절구(七言絶句)

 

 

○ 비간묘(比干墓)

 

 

비간의 무덤은 위주(衛州)의 북 쪽10리쯤에 있으니, 대개 주(周) 나라의 무왕(武王)이 봉축(封築)한 것이다.

 

당태종(唐太宗)이 정관(貞觀) 때에 그 땅을 지나다가 스스로 글을 지어 그 묘에 제사지냈다.

 

그 석각(石刻)이 벗겨지고 떨어졌으나 한두 군데는 알아볼 수 있었다.

 

대개 두 임금이 다른 대(代)의 신하를 그리워한 것이 어찌 그 충(忠)을 슬퍼하고 그 죽음을 가엾이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무왕이 은(殷) 나라를 이긴 뒤에 백이(伯夷)를 소홀히 한 것과 태종이 요(遼)를 치는 날 위징(魏徵)을 의심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때문에 이 시(詩)를 지은 것은 춘추(春秋)의 어진 이에게 책비(責備)하는 뜻에서이다.

 

주왕이 무덤을 봉축하여 은나라 신하를 예한 것은 / 周王封墓禮殷臣
충성된 말 하다가 몸을 죽인 것을 아까워하였기 때문이거니 / 爲惜忠言見殺身
무슨 일로 화양에 말을 돌려 보낸 뒤에도 / 何事華陽歸馬後
부들바퀴로 고사리 캐던 사람에게 청하지 않았던가 / 蒲輪不謝採薇人

원래 분함과 욕심은 사람의 양지를 가리는 것이라 / 從來忿欲蔽良知
날이 저물어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를 하게 한다 / 日暮令人有逆施
비간의 무덤에 몸소 제사지낸 것은 좋았는데 / ?矣親祠比干墓
어찌하여 위징의 비는 넘어뜨리었던가 / 胡然却?魏徵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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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간묘(比干墓) :

비간(比干)은 상(商) 나라의 충신이다.

상나라 임금 주(紂)가 음란함과 포학(暴虐)함이 극도에 달하였므로 비간이 바른 말로 간(諫)하였더니, 주가 노하여,
“성인(聖人)의 심장을 한 번 시험해 보리라.” 하고, 비간을 죽여서 배를 갈라 보았다.

주 무왕(周武王)이 주를 쳐 죽인 뒤에 비간의 무덤을 찾아 봉축(封築)하여 표창하였다.

 

*무왕 :

주 무왕(周武王)이 주(紂)를 칠 때에 백이(伯夷)가 말리기를, “신하가 임금을 쳐서는 안 되오.” 하였다.

 

*위징(魏徵) :

당 태종(唐太宗)의 신하로 곧은 말로 자주 간(諫)하여 태종이 매우 중하게 여겼는데, 위징이 죽은 뒤에 태종이 친필로 비문(碑文)을 써서 주었다가 뒤에 참소하는 말을 듣고 위징의 비(碑)를 넘어뜨리었다.

뒤에 고구려(高句麗)를 치러 갔다가 크게 패하여 돌아오는 길에 뉘우치고 탄식하기를, “위징이 만일 살아 있었더라면 나로 하여금 이번 걸음이 없게 하였을 것이다.” 하였다.

 

*책비(責備) :

춘추(春秋)의 필법(筆法)에 어진 사람에게 책비(責備)하였는데, 책비란 것은 구비(具備)하기를 책(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통 사람에 대하여는 여간한 허물을 용서하거나 비판하지 않지만, 어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조그만 허물이라도 비판하여 이런 어진 사람이 왜 이런 허물을 지었는가 하고 애석히 여기는 뜻으로 책망한다는 말이다.

 

*화양(華陽)에 …… 뒤에도 :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는 전쟁을 끝낸 뒤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馬]을 화산(華山)에 돌려 보내고 군수 물자를 나르던 소는 도림(桃林)의 들에 놓았다 한다.

 

*부들바퀴[蒲輪] :

어진 사람을 청하여 올 때에는 수레를 보내면서 수레바퀴를 부들풀[蒲]로 쌌는데, 그것은 수레바퀴가 터덜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고사리 캐던 :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자, 백이(伯夷)는 주(周) 나라의 불의(不義)한 곡식을 먹지 아니하겠다 하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서 죽었다.

 

*날이 저물어 …… 역시(逆施) :

전국(戰國) 때의 오자서(伍子胥)가 초(楚) 나라를 쳐서 초평왕(楚平王)의 무덤을 파내 송장을 매질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니, 그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기를, “너무 심하지 아니한가.” 하니, 오자서가 답하기를,
“해는 저물고 길은 머니 거꾸로 행하고 역(逆)으로 하노라.” 하였는데, 이것은 당태종이 늙은 욕심에 안 낼 생각을 내어 고구려를 쳤다는 말이다.

 

 

○ 회음표모분(淮陰漂母墳)

 

 

선비를 중히 여기고 궁한 것을 가엾이 여기매 의가 스스로 깊었거늘 / 重士憐窮義自深
어찌 한 그릇 밥으로 천금을 바랐겠는가 / 豈將一飯望千金
돌아와서는 도리어 남창장을 꾸짖었으니 / 歸來却責南昌長
왕손이 반드시 표모의 마음은 알지 못하였도다 / 未必王孫識母心

부인은 그래도 영웅을 알아 / 婦人猶解識英雄
한 번 보자 은근히 곤궁을 위로했다 / 一見殷勤慰困窮
스스로 조아를 내버려 적국에 주었거니 / 自棄爪牙資敵國
항왕은 쓸데없이 두 눈동자 가졌었네 / 項王無賴目重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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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음표모분(淮陰漂母墳) :

한신(韓信)이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굶고서 회음성(淮陰城) 밑에서 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빨래하는 부인[漂母]이 그를 동정(同情)하여 여러 날 밥을 먹였다.

한신이 감사하여,
“내가 성공하면 부인에게 후히 갚겠습니다.” 하니, 부인이,
“내가 왕손(王孫- 한신에게 대한 존칭)을 동정한 것이지, 어찌 뒷날의 갚음을 받기를 바란 것입니까.” 하였다.

그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서 빨래하던 부인을 찾아서 금 천 근을 주었다.

 

*남창장(南昌長) :

한신이 남창정장(南昌亭長)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정장의 아내가 귀찮게 생각하여 밥을 일찍 지어먹고는 한신이 가면 밥이 없다고 거절하였다.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 남창정장을 불러서, “자네는 소인(小人)이라 은혜를 끝까지 베풀지 못하였다.”고 책하고 백 금(百金)을 주었다.

 

*조아(爪牙) :

맹수(猛獸)의 어금니와 발톱을 말하는데, 훌륭한 장수는 임금의 조아가 된다는 것이다.

 

*항왕(項王)은 …… 눈동자 :

항우(項羽)의 눈에 동자(瞳子)가 둘씩이라 한다.

항우가 눈에 동자가 둘씩이나 가졌으면서 한신과 같은 훌륭한 장수를 몰라보고 버려서, 자기의 적(敵)인 한왕(漢王)에게 가도록 하였다는 말이다.

 

 

○ 탁군(郡)

 

 

아름다운 땅은 늘 태행에 닿아 있어 / 美壤每每接大行
동쪽은 진나라의 오른 팔이요 북쪽은 연나라의 목 / 東秦右臂北燕?
유랑은 도리어 잠총국(옛날의 촉(蜀) 나라)을 사랑하여 / 劉郞却愛蠶叢國
그 고장에 우보의 뽕나무가 헛되이 났었네 / 故里虛生羽?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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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羽?)의 뽕나무 :

유비(劉備)가 탁군(郡)에서 궁하게 살았는데, 그 집 문 앞에 뽕나무가 우보(羽? 임금의 수레에 덮는 일산)의 모양과 같으니 사람들이 모두 이상히 여겼다.


유비가 어릴 적에 아이들과 놀면서, “내가 장래 이런 일산으로 덮는 수레를 탈 것이다.” 하더니, 뒤에 과연 촉(蜀) 나라를 점령하여 황제가 되었다.

이 시의 뜻은 유비가 중원(中原)을 찾지 못하고 촉 나라에서 나오지 못한 것을 한탄한 것이다.

 

 

○ 백구(白溝)

 

 

누가 독항을 가져다 강한 이웃에 주어 / 誰將督亢餌强隣
화친을 맺어 해마다 공연히 금과 비단을 대비했던가 / 空費金繒歲結親
한 자쯤 되는 물을 한계로 하여 남목을 막으려 하였으니 / 尺水區區?南牧
누운 탑 옆에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것인가 / 可能臥榻不容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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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白溝) :

옛날 송(宋) 나라와 거란(契丹)의 경계에 있는 강이며, 독항(督亢)도 그곳의 지명(地名)이다.

 

송 나라 진종(眞宗) 때에 거란이 침입하였으므로 송나라에서 백구 이북의 땅을 주고, 해마다 금과 비단을 많이 주기로 하여 강화(講和)를 맺었다.

 

*남목(南牧) :

한 무제(漢武帝)가 흉노(匈奴)를 쳐서 물리치니, 흉노가 감히 남으로 내려와 말을 먹이지 못하였다.

 

북방 민족이 중국에 침입하는 것을 남목(南牧)이라 한다.

 

*누운 탑(榻) …… 않는 것인가 :

송태조(宋太祖)가 중국을 차지한 뒤에 남당(南唐)에서 사신(使臣)을 보내어 강화(講和)를 청하니, 송태조가 물리치며 말하기를, “내가 자는 침대 옆에 다른 사람이 코를 고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하였다.

 

 

○ 송도팔영(松都八詠)

 

 

△ 곡령춘청(鵠嶺春晴)

 

 

여덟 신선의 궁전이 취미봉에 있으니 / 八仙宮住翠微峯
아득하다 구름과 안개가 몇만 리인가 / ??煙霞幾萬重
하룻밤에 긴 바람이 비를 몰고 지나가니 / 一夜長風吹雨過
바다 용이 옥부용을 받들어 낸다 / 海龍擎出玉芙蓉

 

 

△ 용산추만(龍山秋晩)

 

 

지난해 용수에 국화 필 때에 / 去年龍岫菊花時
손과 함께 술두루미 이끌고 취미에 올랐나니 / 與容携壺上翠微
오솔길의 솔바람은 모자를 불어 떨어뜨리고 / 一逕松風吹帽落
옷에 가득한 붉은 잎에 술취해서 붙들고 돌아왔네 / 滿衣紅葉醉扶歸

 

 

△ 자동심승(紫洞尋僧)

 

 

돌샘물이 콸콸 솟아 바람이 겨드랑에서 나고 / 石泉激激風生腋
소나무 안개 부슬부슬 푸름이 수건에 듣는다 / 松霧??翠滴巾
산승은 간곡히 소매 당겨 만류할 것이 없나니 / 未用山僧勤挽袖
들꽃과 우는 새가 사람 붙들 줄 아는 걸 / 野花啼鳥解留人

 

 

△ 청교송객(靑郊送客)

 

 

실개울 깊은 곳에 버들은 솜을 날리고 / 小溪深處柳飛綿
부슬비 갠 때에 풀은 연기와 같네 / 細雨晴時草似煙
손님이야 가거나 오거나 아무 상관 없거니 / 客去客留俱不?
한 두루미 술로 이 좋은 산천 마주 대했네 / 一樽相對好山川

 

 

△ 웅천계음(熊川?飮)

 

 

사장 머리에서 술이 다하고 해는 지려 하는데 / 沙頭酒盡欲斜暉
맑은 물에 발을 씻고 나는 새 바라보네 / 濯足淸流看鳥飛
이 뜻은 스스로 아름답거니 그 누가 알아 주랴 / 此意自佳誰領取
공문에는 무우에 놀고 돌아옴을 허여하였다네 / 孔門吾與舞雩歸

 

 

△ 용야심춘(龍野尋春)

 

 

우연히 시냇가 이르러 푸른 풀을 깔고 앉으면 / 偶到溪邊藉碧蕪
봄새는 일을 좋아해 술 가져 오라 권하네 / 春禽好事勸提壺
일어나 꽃 핀 곳을 찾으려 하니 / 起來欲覓花開處
물 건너 그윽한 향기 가까이 가면 도리어 없다 / 度水幽香近却無

 

 

△ 남포연사(南浦烟蓑)

 

 

한 물굽이의 부들과 갈대에 우수수 비 내리면 / 一灣蒲葦雨蕭蕭
저 언덕의 인가는 더욱 적막하여라 / 隔岸人家更寂寥
고기 잡기 파하고 아이를 불러 푸른 그물 거두어 / 漁罷呼兒收綠網
배를 노질해 늦게 오는 조수 타고 돌아오누나 / 剌船歸起晩來潮

 

 

△ 서강월정(西江月艇)

 

 

강물은 차고 밤은 고요한데 고기 더디 잡히어 / 江寒夜靜得魚遲
혼자 봉창에 기대어 낚시줄을 거두나니 / 獨倚蓬窓捲釣絲
눈에 가득 청산이요 한 배 가득 달빛이라 / 滿目靑山一船月
풍류는 반드시 서시를 싣는 데에만 있지 않으이 / 風流未必載西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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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翠微) :

당 나라 시인 두목지가 9월 9일에 취미(翠微)에 올라서 ‘여객휴호상취미(與客携壺上翠微)’라는 시를 지었는데, 취미는 산 기슭이다.

 

*웅천계음(熊川?飮) : 옛날의 풍속에 3월 3일에 동류수(東流水) 위에 모여서 불상(不祥)한 것을 제거하며 술을 마시고 놀았는데, 이것을 계(?)라 한다.

 

*공문(孔門)에는 …… 놀고 :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각 뜻을 물었더니, 다른 이는 모두 자기의 능력과 포부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말하였는데, 증점(曾點)은 홀로, “모춘(暮春)에 춘복(春服)을 새로 입고 관자(冠者) 5,6인과 동자(童子) 6,7인을 거느리고,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 바람 쏘이고 읊으며 돌아오리다.” 하니, 공자가 탄식하며, “나는 점(點)을 허여한다.” 하였다.

 

*봄새는 …… 가져 오라 : 제호(提壺)는 새 이름인데, 곧 ‘술병을 들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 범려(范려)
 
공을 논하면 어찌 강한 오나라를 쳐부순 것뿐이랴 / 論功豈?破强吳
보다 더 오호에 조각배를 띄운 데 있다 / 最在扁舟泛五湖
서시를 배에 싣고 떠날 줄을 몰랐더라면 / 不解載將西子去
월나라 궁전에도 고소대가 또 하나 있었을 것이다 / 起宮還有一姑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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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范?) :

전국(戰國) 시대 월(越) 나라 범려(范?)가 임금 구천(句踐)을 보좌하여 오 나라를 쳐서 멸한 뒤에, 벼슬을 버리고 오호(五湖)에 배를 띄워 서시(西施)를 싣고 가 버렸다.


서시는 본래 월 나라에서 난 미인(美人)이었는데, 월 나라에서 오 나라를 멸하려고 꾀를 써서 서시를 오왕(吳王)에게 바쳤더니, 과연 오왕이 서시의 미색에 혹하여 고소대(姑蘇臺)에서 음란한 놀이만 하다가 월 나라 군사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망하였다.


이 시의 뜻은 범려가 서시를 월 나라에 남겨 두었더라면 월왕도 오왕처럼 서시에게 혹하여 나라가 망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 동문선 제21권 칠언절구(七言絶句)

 
○ 화박석재윤저헌용은대집소상팔경운(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

 

 

△ 평사낙안(平沙落雁)

 

 

줄줄이 점점이 바로 날았다 비껴 날았다 / 行行點點整還斜
찬 허공을 내려와 따뜻한 모래밭에서 자려는 것이었다 / 欲下寒空宿暖沙
그런데 이상히도 다시 펄펄 날아 다른 언덕으로 옮기는 것은 / 怪得翩?移別岸
뱃사람들이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 ??人語隔蘆花

 

 

△ 원포귀범(遠浦歸帆)

 

 

배 부리는 장사꾼들은 아이들과 같아서 / 行舟賈容似兒童
사람마다 향불 사르며 순풍을 비네 / 香火人人乞順風
호수의 신이 여러 사람 소원 다 이뤄주어 / 賴是湖神能?應
모든 돛이 한꺼번에 올라 제 각기 서쪽으로 동쪽으로 / 衆帆齊擧各西東

 

 

△ 소상야우(瀟湘夜雨)

 

 

신나뭇잎과 갈대꽃 물나라 가을인데 / 楓葉蘆花水國秋
온 강의 비바람이 조각배에 뿌리나니 / 一江風雨灑扁舟
초나라 손의 삼경 꿈을 놀라 깨워 주고 / 驚廻楚客三更夢
상비의 만고 시름을 나누어 준다 / 分與湘妃萬古愁

 

 

△ 동정추월(洞庭秋月)

 

 

삼경의 밝은 달빛 은한이 맑은데 / 三更月彩澄銀漢
만 이랑의 가을빛이 흰 물결에 떠 있구나 / 萬頃秋光泛素濤
호수 위의 누구 집에서 쇠젓대를 부는고 / 湖上誰家吹鐵笛
푸른 하늘 끝 없는데 기러기떼 높이 떴네 / 碧天無際雁行高

 

 

△ 산시청람(山市晴嵐)

 

 

아득하여라 펀펀한 숲에 푸른 안개가 찬데 / 漠漠平林翠靄寒
누대들은 은은히 비단을 격하였다 / 樓臺隱約隔羅紈
어찌하면 바람이 불어 쓸어가서 / 何當捲地風吹去
우리 왕가의 착색한 산을 도로 나타낼꼬 / 還我王家著色山

 

 

△ 어촌낙조(漁村落照)

 

 

떨어지는 해는 차차 먼 산봉우리에 빠지는데 / 落日看看銜遠岫
돌아오는 조수는 철썩철썩 찬물 가에 오른다 / 歸潮咽咽上寒汀
고기 잡는 사람들은 흰 갈대꽃 속으로 들어갔나니 / 漁人去入蘆花雪
두어 점 밥 짓는 연기는 날이 저물어 더욱 푸르다 / 數點炊煙晩更靑

 

 

△ 강천모설(江天暮雪)

 

 

버들개지는 허공에 날으면서 더디 내리려는 듯 / ?絮飛空欲下遲
매화꽃은 땅에 떨어져도 역시 자태가 많다 / 梅花落地亦多姿
강다락의 한 두루미 술을 마셔 버려 다했나니 / 一樽且盡江樓酒
도롱이 입은 어옹의 낚싯줄 거둘 때를 지켜 보게 되네 / 看到蓑翁捲釣時

 

 

△ 연사만종(烟寺晩鍾)

 

 

한 폭의 단청을 펼쳐 놓으니 / 一幅丹靑展不封
두어 줄의 수묵이 흐리다가 도로 짙다 / 數行水墨淡還濃
그림 그리는 붓으로 진정할 수 없는 것은 / 不應?筆眞能爾
남쪽 절의 종소리 떨어지자 북쪽 절의 종소리일세 / 南寺鍾殘北寺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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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비(湘妃) : 순(舜)이 남순(南巡)하다가 창오산(蒼梧山)에서 죽었는데,

그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두 비(妃)가 소상강 가에서 슬피 울었다.

 

 

○ 화이명숙운금루사영(和李明叔雲錦樓四詠) 
 

△ 하주향월(荷洲香月)

 

 

가는 물결 잔잔하매 달이 넘쳐 흐르는데 / 微波澹澹月溶溶
열 이랑의 연꽃에 한 줄기의 바람일세 / 十頃荷花一道風
임평산 밑에서 잔 일을 기억하나니 / 記得臨平山下宿
술이 깨자 내 몸은 화선 속에 있었네 / 酒醒身在?船中

 

 

△ 송학취운(松壑翠雲)

 

 

온 숲의 누른 잎은 멀어서 소리 없는데 / 一林黃葉遠無聲
골짝마다 푸른 구름은 넘쳐서 펀펀하려 한다 / 萬壑蒼雲漲欲平
산 꼭대기로 쓸어 올라가 흩어지지 않는 것 보면 / 捲上山頭吹不散
아마 저녁비가 완전히 개지 않은 것 같다 / 料應晩雨未全晴

 

 

△ 어기만조(漁磯晩釣)

 

 

고기 새끼 물가에 나와 잔 물결을 희롱하는데 / 魚兒?沒弄微瀾
한가로이 가는 낚시를 버드나무 그림자 사이에 던지는구나 / 閑擲纖鉤柳影閒
해 저물어 돌아가려 하매 옷이 반쯤 젖었구나 / 日暮欲歸衣半濕
푸른 연기 비와 섞이어 앞산을 어둡게 하네 / 綠煙和雨暗前山

 

 

△ 산사조취(山舍朝炊)

 

 

산 밑엔 누구 집인가 멀어서 마을 같네 / 山下誰家遠似村
지붕으로 오르는 연기는 태평 세월에 표시로세 / 屋頭煙帶大平?
때때로 허물어진 울타리에 개 짖는 소리 들리나니 / 時聞一犬吠籬落
불을 빌어 와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는가보이 / 乞火有人來?門

 

 

○ 사호귀한(四皓歸漢) 

 
부소는 효도하고 인하였거늘 / 見說扶蘇孝且仁
어찌하여 이세로 하여금 화가 백성에게 미치게 하였던가 / 胡令二世禍生民
포옹은 비사에 굴하지 않았나니 / 逋翁不爲卑辭屈
유씨의 집이 진나라와 같이 됨을 차마 보지 못함이니라 / 未忍劉家又似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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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귀한(四皓歸漢) : ‘이 밑의 네 절구(絶句)는 국재(菊齋)의 횡파십이영(橫坡十二詠) 중의 사수(四首)에 화답한 것이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 여산삼소(盧山三笑)

 

 

불ㆍ도ㆍ유의 이치가 본래 같은데 / ?道於儒理本齊
억지로 분별하여 스스로들 미혹하네 / 强將分別自相迷
세 사람의 뜻을 사람들은 모르나니 / 三賢用意無人識
한 번의 웃음이 호계를 지나간 것과는 관계가 없다 / 一笑非關過虎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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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삼소(盧山三笑) :

‘이 밑의 네 절구(絶句)는 국재(菊齋)의 횡파십이영(橫坡十二詠) 중의 사수(四首)에 화답한 것이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 연심옥경(?尋玉京)

 

 

훨훨 나르는 한 쌍 제비가 공규를 찾은 것은 / 翩翩隻燕訪空閨
아마 아리따운 사람의 석별의 시에 감동되었음이리라 / 應感佳人惜別詩
서로 대해 마음은 아나 말을 하지 못했거니 / 相對知心不知語
한 뜰의 바람 비에 꽃 떨어질 때이리라 / 一庭風雨落花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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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심옥경(?尋玉京) :

혜원법사(惠遠法師)가 여산(盧山)에 있을 때에 손을 전송하였으되 호계(虎溪)를 넘지 않았는데, 만일 거기를 지나면 범이 소리를 질렀으므로 호계(虎溪)라 하였다.


하루는 도연명(陶淵明)과 도사(道士)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호계를 넘는 줄 몰랐다가 깨닫고는 세 사람이 일제히 웃었다.


후인(後人)들이 삼소도(三笑圖)를 그려서 전하는 이가 있었다.

이 시의 뜻은 세 사람의 웃음이 세상 사람들이 유(儒)ㆍ불(佛)ㆍ도(道)의 본의가 같음을 모른다는 것을 웃었다는 뜻이다.

 

 

○ 범려 오호(范려五湖)

 

 

공을 이루고 또한 좋은 계획을 시험하고자 하여 / 功成亦欲試良圖
달에 노질하며 연기 도롱이 입고 오호로 향하였다 / 月棹煙蓑向五湖
오궁의 봄빛을 걷어가 버리고 / 捲却吳宮春色去
한갓 가을 풀만 남겨 고소대에 가득하네 / 獨留秋草滿姑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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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가을풀만 …… 가득하네 :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오자서(伍子胥)의 충성스런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죽이니, 오자서가 죽으면서 말하기를
“장차 사슴들이 고소대(姑蘇臺)에서 놀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오나라가 망하여 고소대에 풀이 우거졌다는 말이다.

 

 

○ 산중설야(山中雪夜)

 

 

종이 이불에 찬 기운 생기고 부처 등은 어두운데 / 紙被生寒佛燈暗
사미는 한밤 내내 종을 치지 않는다 / 沙彌一夜不鳴鍾
아마 성내리라 자던 손이 일찍 문을 열고서 / 應嗔宿客開門早
저 암자 앞의 눈에 눌린 소나무 보려는 것을 / 要看庵前雪壓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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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樂天)의, ‘잘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은 냉담(冷談)함을 꺼린다.’는 시는 의례(儀禮)에,  ‘손님을 재운다[宿].’는 말과 같이 쓴 듯하다.


두자미(杜子美)의, ‘개는 전일 자고 간 손님을 맞이한다.’는 말은 잤다[宿]는 뜻인데, 지금은 자미의 말을 썼다.

 

 

○ 구요당(九曜堂)

 

 

시냇물은 잔잔하고 돌길은 비꼈는데 / 溪水潺潺石逕斜
도인의 집처럼 고요한 데 없으리라 / 寂寥誰似道人家
뜰 앞에 누운 나무 봄인데도 잎이 없고 / 庭前臥樹春無葉
온종일 산벌들은 풀꽃을 뜯어 삼키네 / 盡日山蜂咽草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