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시조 익재 이제현

익재공의 표(表)

녹전 이이록 2009. 1. 11. 21:15

● 익재공의 표(表)

 

동문선 제42권에 있는 표전(表箋)인데 익재공이 안축과 이곡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는 전(箋)으로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역문인데 비교해 보세요.

 

 

○ 서연강설(書筵講說)을 면하여 주기를 빌고 찬성사(贊成事) 안축(安軸)과

밀직부사(密直副使) 이곡(李穀)을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는 전(箋)

 

 

[삼가 생각건대 공경을 바치고 예를 다하는 것은 임금이 이에 스승을 얻는 것이요,

어진 자를 천거하고 능한 자에게 양보하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돕는 바입니다.

 

신이 전번에 윤명(綸命임금의 명命)을 받들어 오래도록 서연에서 모셨는데,

거지(擧止)가 우소(迂疏)하여 족히 잘못을 바루지 못하였고,

견문(見聞)이 거칠어서 올바르게 바루는 데에 유익함이 없었습니다.

 

신도 오히려 부끄러움을 알고 있는데 누구를 차마 속이겠습니까?

 

하물며 백발은 성성하고 눈까지 어두움에리까!

 

귀는 허승(許丞)처럼 어둡고 팔뚝은 두자(杜子)처럼 불수가 되었습니다.

 

헌지(軒지- 임금을 가리킨다)를 사모하다가 진실로 상유(桑楡)의 늦은 햇빛을 거두지 못하면,

구렁에 굴러 떨어져 송백(松柏)이 겨울에 푸른 절개를 보전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 안모(安某)와 밀직부사(密直副使) 이모(李某)는 청백하고

경개(耿介 굳은 지조)하여 겉치레가 없으며 단아하고 방정(方正)하여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한 구(句)가 빠졌음)……

 

학문은 동방에서 제일 높고 재명(才名)은 상국(上國)을 진동시켰습니다.

 

이 두 준수한 사람을 가려내 이 한 어리석은 사람과 교체하시어,

중석(重席)을 깔고 경의(經義)를 담론하면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교화(敎化)를 이룰 수 있을 것이며,

문을 닫고 일을 않는다 하더라도 신이 어찌 우로(優老)의 은혜를 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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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승(許丞) : 허승은 허현(許縣)의 승(丞- 벼슬)인데 매우 정치를 잘하였다.
독우(督郵)가 허승이 늙어 귀가 어둡다 하여 쫓아내려 하였으나, 황패(黃패)가
"허승은 염리(廉吏- 깨끗한 관리)이다.

아직도 기배영송(起拜迎送- 일어나 맞이하고 보내는 절)할 수 있으니 귀가 어두운 게 뭐 탓할 일이랴." 하였다.
여기서는 귀가 어둡다는 뜻만 취하였다. 《한서 순리전 漢書 循吏傳》

 

* 두자(杜子) : 두예(杜預)를 가리킨 듯하다.
두예는 몸이 몹시 약하였는데, 팔이 불수가 된 것은 미상이다.

 

* 동문선(東文選) - 삼국 시대 후반기로부터 통일신라 및 고려를 거쳐 조선 중종 초에 이르기까지

문인들의 수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뽑아 편집한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이다.

 

 

○ 걸면 서연강설 거찬성사안축 밀직이곡 자대 전(乞免書筵講說擧?成事安軸密直李穀自代箋)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공경과 예도에 극진해야만 인군(人君)은 능히 스승을 얻게 되고,

어질고 능한 이에게 사양해야만 신자(臣子)는 임금을 보필하는 것이 되옵니다.

 

신은 지난번 윤음을 받들어 오래 서연(書筵)을 모시게 되온바,

행동이 허소하여 족히 그른 점을 바루지 못하옵고 견문이 부족하여 정론을 취택할 수 없사오므로,

신이 오히려 부끄럽게 아옵는데 어느 뉘가 무시하지 아니하겠사옵니까.

 

하물며 백발은 소조하고, 눈에는 백내장이 덮혔으며, 귀는 허승(許丞)의 중청(重聽)과 비슷하고,

팔목은 두자(杜子)의 편고(偏枯)와 같사온데, 헌지(軒?)를 그리어 상유(桑楡)의 저문 볕을 수습하지 못하오면

구학(溝壑)에 넘어져 송백(松柏)의 차가운 겨울을 보장하기 어렵사옵니다.

 

그윽이 보오니,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안축(安軸)ㆍ밀직부사(密直副使) 이곡(李穀)은 맑고 굳건하여

꾸밈이 없사옵고, 단정하고 모나서 지킴이 있사옵니다.

 

결(缺) 학문은 동방에 드높고, 재명은 상국(上國)을 움직였사오니,

이 두 영재를 선택하여 어리석은 저를 대신케 한다면 돛자리를 겹으로 깔고 경서를 담론하여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교화를 돕게 될 것이오며, 문을 닫고 사무를 사절한다 해도 이 우로(優老)의 은전을 잊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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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청(重聽) : 귀가 먹음.

한나라에 귀가 어두운[重聽] 하급 아전이 있었다.
그때에 정승 병길(丙吉)이 그를 면직시키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면서,
“허승(許丞)은 아무리 중청(重聽)이라도 관청 안의 일을 잘 알 것이니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다.

 

* 헌지(軒지) : 임금 있는 전각 앞의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