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傳世系의 考察

'세=세손이 아닙니다.

녹전 이이록 2009. 2. 26. 14:24

● '세=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지 않습니다.

 

 

약 60-70%가 아직도 '세와 대는 이의'로 읽고 있으며 우리 경주 이씨는 죽어라고 '시조 몇 세손'을 자랑으로 여기는 듯 읽고 있습니다. 

 

어느 때인가는 모두 옛날 우리 선조님들이 사용하던 방식대로 돌아가겠지만 우리 종친님들만이라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균관 유림에서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 완고한 고집으로 '세와 대는 이의'를 주장하다가 요즈음에는 '세와 대는 동의'라는 유명 보학자들의 조사연구물이 많이 나오다보니 이쪽으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큰 카페인 '경주 이씨 종친회' 카페와 대파인 '국당공파' 카페도 여전히 '세와 대를 이의'로 읽고 있고 '시조 73세손'이라고 세계도에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종보 총론에 있는 '실전세계의 고찰'을 한번만 읽어보면 시조로부터의 세수는 읽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시조 73세손'이라고 읽으면 어떠냐? 라고 반문한다면 엉터리인데 왜 그 세수를 꼭 써야 하느냐? 라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세와 대는 동의' 사용은 경주 이씨 비문과 묘갈명. 고문헌 등에서 다른 성씨의 사이버 카페지기님들의 협조를 얻어 정리 중입니다.

 

물론 다른 성씨의 사례도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 중시조 이후의 계대는 바르기 때문에 '중시조 OO세'라고 읽어도 좋으나 시조로부터의 세수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35대로 된 실전 세계의 계대는 정당하게 확인이 안된 한 때 갑자기 발견된 계대로 믿을 수 없는 계대인고로 이를 이용하여 '시조 OO세'라고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 시조(始祖)로부터의 세(世)와 세손(世孫)은 헤아리지 맙시다.

 

우리 경주 이씨의 각 종회나 문회. 각종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雨'자 항렬을 가리켜 '시조 73세'라고 말하거나 '시조 73세손(동의 72세손=72대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雨'자 항렬이 '시조 73世' 라는 말이 틀린 말이라는 것도 모르고 정답인양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종친들은 고사하고 보학에 상당한 관심과 지식을 가진 종친들도 예의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몇 십년 동안 그것이 바른 것인 양 그렇게 알고 사용해 온 것이 그대로 굳어지고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의당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전 종친을 상대로 하는 크고 작은 유명인사 블로그나 그 외 중파명에 따른 카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도 '시조 73세'가 바른 세수법으로 알고 그대로 사용해도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정보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보학이나 선조에 대하여 알려고 하면 '종친회 카페'나 '블로그'에 찾아 들어가면 가장 빨리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카페나 블로그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종친들은 보학이나 조상들에 대하여 조금의 지식을 갖고 운영해야하는데 몇몇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페를 운영하고 무턱대고 남의 글만 펌해서 올려 카페나 블로그를 꾸며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하니 아무런 검토없이 자료를 올리면 그것이 최고인양 그대로 펌해서 올리는 것이다.

 

DAUM 카페에 등록된 경주 이씨 관련 카페만 대개 70여 개이다.

 

물론 9.300여명의 회원을 둔 큰 카페도 있는 반면에 10명 미만의 소 카페와 활동도 하지 않는 카페도 있기는 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 잘못 올려진 내용이 그대로 올려지고 또 올려져 그것을 종친들이 읽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결과가'시조 73세'이니 '시조 75세'이니 하고 올리고 그것을 그대로 학습하여 정론으로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우'자 항렬은 시조로부터 정말 '73세'인가? 

 

과연 '시조로부터의 몇 세' 라는 세수를 헤아리는 것이 맞는지 알아보자.  

 

1) 28대(세) 실전 세계의 언급과 오류  

 

'28대 실전세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이 1868년 무진(戊辰)년에 간행된 백사파보(白沙派譜) 건(乾). 곤(坤)권의 2권 중 곤권(坤券) 끝 부분에 귤산공(橘山公) 휘 유원(裕元)께서 쓰신 발문(跋文)에 처음 '28대(세) 실전 세계'가 언급되고 잘못된 계대 임을 말하고 있다. 

 

[......상계 28대를 원본에서 베껴 왔는데 이 상계 28대가 바르지 못한 것이다.

 

바르지 못한 이유로 국가의 행정 조직 및 직제(職制)가 삼한(三韓)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제와 달라 실질적인 바른 상계(上系)가 아니다.]  

 

이 '28대로 된 실전 세계' 발견 당시는 28대 계대를 사용하기를 권장했으나 귤산공(휘 유원)께서 잘못된 바르지 못한 계대임을 알고 1868년 무진년에 간행된 백사파보에 언급한 내용으로 귤원공께서 하신 말씀이다.

'잃어버린 근본을 꾸며서 계대를 만들어 잇는 것이 세상일을 어지럽히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냐.' 고.... 

2) 35대로 된 실전세계에서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系代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혹 일부는 맞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간에 1세(대)라도 꾸미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이것을 사용하면 안 된다.

 

아예 세(대)수가 틀리는데 이것을 어찌 자랑이라고 '나는 시조 73세이오'라고 말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중조 몇 세'가 아닌 '시조 몇 세'로 읽는 종친들은 합천 이씨 세보에서 발견된 35대로 된 실전 세계의 계대를 그대로 읽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알려진 계대로 그것이 바른 계대라는 것이다.

 

이 계대가 1932년에 간행된 합천 이씨 임신 대보로 계대가 정확한 것으로 무조건 믿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 대보 발간 이전에 5차례나 발간한 합천 이씨 어떤 족보에도 '실전 선계(先系)'를 등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1932년 '임신대보(壬申大譜)' 간행시에 '35대 실전세계'를 처음 기록하고 있는데 이 계대의 출처를 '실전 세계의 고찰'에서 밝히는 중에 여러 가지 모순이 발견됨으로서 바르지 못한 세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1968년 무신(戊申)년에 간행한 강양 합천 이씨 계보 전(系譜全)에 실으면서 1968년 대전 보전출판소에서 발간한 '익재공파보와 평창 이씨 세보에 의거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1968년 익재공파보와 평창 이씨 세보를 보고 그것을 그대로 옮겨 1968년 강양 합천 이씨 세보에 올린 것이라는 것이다.  

 

약 30년 전의 임신대보에 올려진 실전 세계를 보고 올리지 않고 같은 해에 간행되는 익재공파보와 평창 이씨 세보를 보고 계대를 올렸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이보다 앞서 실전 세계는 1902년 전까지는 전연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1904년에 경산군수로 재직하던 군수공(휘 계필)께서 갑진보(甲辰譜. 1904) 간행시 서술(敍述)에 일가 사람 상준 춘우가 옛날 간행본 1권을 갖고 와 표암 선생 이하 소판공 이상 35대의 계대가 써 있는데 책이 헐어 수선하여 완성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아마 이때부터 35대로 된 계대가 경주 이씨와 관련된 분적종에까지 알려져 이것이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면 '35대로 된 실전 세계'의 잘못된 내용을 알아보자. 

 

(1) 상세 실전계의 '3세 타'의 기록이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 거서간조 기록의 내용과 흡사하다.

 

대종보 총편 P300의 '경주 이씨 상세 실전계(慶州李氏上世失傳系)'의 '시조 3세 타'의 기록과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 거서간조'에 나오는 기록이 거의 같다는 사실에서이다. 

 

다만 '상세 실전계'에는 '표공(瓢公)'이라 나오고 '삼국사기'에는 '호공(瓠公)'으로 나오는데 글자는 몇 곳이 틀리나 내용은 거의 같다는 뜻에서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이다.

 

표공과 호공이 같은 인물이면 좋은데 삼국사기에는 호공이 일본에서 온 것으로 말하고 있어 별개의 인물임이 확실하다.  

 

(2) 경주이씨 중앙 화수회 성우 회장님의 대종보 발간사(1987년 정묘. 3월31일)에서 잘못된 계대(系代)임을 말하고 있다.  

 

대종보 총편 발간사 P3의 8∼11 -  [오랫동안 시조 알평으로부터 중시조 소판공 휘 거명에 이르는 세계는 실전이 되어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와서 28세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되었고 20세기초 1902년 경산군수 이계필이 간행한 35세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되고 있다.  

 

믿을 만한 고증은 아직 없으나 참고로 양 실전세계를 그대로 싣고 후일 고증이 나타나면 보완계대 하고자 한다.] 라고 말하였다.

 

*1902년 → 1904년에 간행

 

요약하면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믿을만한 고증은 아직 없다'라고 하며 '28대로 된 실전세계'와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참고용으로 싣는다고 하였다. 

 

(3) 대종보 총편 P287-292의 '실전세계 고찰'에서 지적된 오류  

 

① 왕명을 수행 중이던 주문사가 족보 때문에 5일간을 머문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천재지변이 아닌 족보로 인하여 5일간이나 한 곳에 지체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사신으로 가던 길에 5일을 머물었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② 당지 판각(唐紙板刻)의 보첩(譜牒)이 다른 파보와 틀린다.

 

35대(세)로 된 당지 판각(唐紙板刻)의 보첩(譜牒)을 살펴보니 성씨대관(姓氏大觀)의 내용과 자신의 직계만을 나타낸 가첩류로써 파보의 내용과 서로 틀리거나 어긋난다.

 

* '실전세계의 고찰'에서 틀린 내용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③ 이학영과 이인명의 행적이 확인이 안 된다.

 

전주 사람(전주 이씨) ^이인명은 조선왕조실록에 1750년부터 1770년 사이에 4번 기록이 나타나 실제 인물이긴 하나 당시 벼슬이 '홍문관 도승지인 전주 후....'라고 기록된 이인명은 홍문관(弘文館)에는 승지(承旨)나 도승지(都承旨)의 직(織)은 없고 승정원(承政院)에만 있다는 사실이다.  

 

주문사(奏文使)로 중국에 다녀온 이학영은 보첩에는 이름이 있으나 충북 진천에 살았던 기록은 확인할 수 없고 주문사(奏文使)의 사신(使臣) 직(職)을 역임했다면 마땅히 족보에 올라져 있어야 할 것인데 보첩에 그러한 기록이 전연 없다.

 

④ 임신대보의 실전상계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실전 상계'는 합천 이씨 1932년 간행 임신 대보에 실전 세계를 처음 올렸으나 그 이전 다섯 차례의 합천이씨 발간 세보에는 '실전세계'의 기록이 없다는 것인데 임신대보의 35대로 된 실전상계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1968년 무신(戊申)년에 간행(刊行)한 강양 합천 이씨 계보(江陽陜川李氏系譜) 전(全)에 같은 내용의 '실전세계'를 올리면서 1932년 간행 임신 대보의 '실전 세계'에 대하여는 말이 없고 같은 해 대전 출판소 간행 익재공파보와 평창이씨 세보에서 '실전세계를 가져온 것'이라는 등 전후 간행된 세보의 기록이 신뢰성이 없다.

 

④ 주문사(奏聞使)는 있어도 주문사(奏文使)는 실록(實錄) 기록에 없다.

 

중국에 정기적으로 가는 사신 이외에 주청사(奏請使)와 주문사(奏聞使)가 있었는데 이조실록(李朝實錄)을 보면 주문사(奏聞使)는 10회 중국에 갔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합천 이씨 세보에 기록된 본문에 있는 '주문사(奏文使)'는 실록(實錄)에 기록이 없다.

 

해서 합천 이씨 세보에 기록된 '주문사(奏文使)'는 정확하지 못한 표현으로 잘못된 것이다.

 

⑤ 관직명이 신라 관직명과 상이하다

 

'35세 실전세계'에 적혀있는 관직명이 옛 신라시대의 관직명과 다르니 믿을 수 없다.

 

* 잘못된 관직명이 어떤 것인가는 조사 기록이 없다.

 

⑥ 1868년 이전에는 35대(세) 실전 세계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실전세계가 처음 등재된 것이 1932년 간행 합천 이씨 임신 대보였는데 1978년 대전서 간행된 경주 이씨 무오보에는 150년 전인 1828년에 합천 이씨 가보에서 발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1902년 전까지 존재하지 않든 실전 세계가 1902년에 갑자기 나타났고 1932년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계대가 올라 있다는 것은 결코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⑦ 그리고 고려조 말에 요동반도(遼東半島)로 이거(移居)한 익재공(益齋公)의 혈손(血孫)이 실전세계를 소장하고 있었다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같은 후손이 모를 까닭이 없었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여하간에 이렇게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1904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100여년 동안 쓰여 왔으니 '시조 몇 세손'이라고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견)

 

이로써 28대(세) 실전세계와 35대(세) 실전세계는 여러 가지 모순되고 사실에 어긋나는 점이 많아 사실적인

세계(世系)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참고로 할 뿐이다.

 

약 900년 간의 잃어 버렸던 28대(세), 35대(세) 실전 세계를 알게 되었으나 이는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에 또 다른 정확한 실전 세계의 발견 없이는 함부로 이 계대를 활용하여 '시조세수'를 사용하여 혼란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