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본 분적종(分籍宗)

분적종(分籍宗) 차성 이씨(車城李氏)

녹전 이이록 2009. 2. 19. 18:30

●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분적종(分籍宗) 

 

1987년 간행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에 수록된 내용으로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分籍)되어 내용이 확인된 이씨(李氏)는 아래와 같다.

 

○ 합천이씨(陜川이씨) 분적시조 강양군 개(開)- [시조후손]

 

○ 차성이씨(車城李氏) 분적시조 차성군 위(渭)- [시조 후손] 

 

○ 우계이씨(羽溪李氏) 분적시조 좌복야공 양식(陽植)- [시조 후손]

 

 아산이씨(牙山李氏) 분적시조 증사공공 주좌(周佐)- [중시조 6세. 周福과 동렬]

 

○ 재령이씨(載寧李氏) 분적시조 재령군 우칭(禹)- [중시조 7세. 과 동렬]

 

○ 진주이씨(晋州李氏) 분적시조 대제학공 영재(永)와 벽호공 군재(君) 형제

- [중시조 18세. 17세 사인공(휘 조)의 4자 영재와 5자 군재]

 

○ 원주이씨(原州李氏) 분적시조 경원군 반계(攀桂)
- [중시조 23세. 중조 11세 玄福의 차자 申佑 계대- 21세 月城君 之秀의 동생인 之衍의 손자]

 

 장수이씨(長水李氏) 분적시조 중조 16세 임간(林幹- 直幹)

 

이상 8개 성씨의 기록은 1987년도 간행 정묘보이며 중앙표준보인 경주이씨 대종보에 게재된 자료이다.

 

하지만 가평 이씨(加平李氏- 윤원- 평창 이씨 윤장의 동생), 금구 이씨(金溝李氏), 덕은 이씨(德恩李氏),

흥양 이씨(興陽李氏), 영천 이씨(永川李氏), 진위 이씨(振威李氏), 장수 이씨(長水李氏), 울산 이씨(蔚山李氏). 성산 이씨(星山李氏)· 우봉 이씨((牛峰李氏)는 기록이 애매하고 계대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경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는 추정되나 계대가 불분명하여 경주이씨 분적종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 분적종(分籍宗) 차성 이씨(車城李氏)

 

○ 분관 시조(分貫始祖) 이위(李渭)

 

이위는 경주 6촌의 하나인 양산촌장 이알평의 후손으로 원대손(遠代孫) 거명(居明) 이전의 시조 알평(謁平)의 후손인 신라 신문왕 때의 문의공(文義公) 이사언(李嗣彦)의 차남이다.

 

신라 신문왕 때에 태자 사부 태사령이며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오른 문의공(文義公) 이사언(李嗣彦)의 차남이다.

자는 경지(涇之)이고 호는 조은(釣隱)이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행적(行蹟)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고려 때 사람으로 나라에 공을 세워 차성군에 봉해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라 말에 공을 세워 벽상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에 오르고 차성(車城)의 성주(城主)로써 차성군(車城君)에 봉작되었다는 것이다.

 

분적은 이위(李渭)에서 후손들이 경주 이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차성(車城)으로 하고 있다.

 

차성(車城)은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을 일컫는다.

 

차성이라는 이름이 어느 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차성 이씨 파보서 역문]에 보면 '차성 이씨의 세대(世代)는 요원하게 내려왔다.

 

처음에 월성(月城)의 표암(瓢巖)에서 분적되어 차성(車城)으로 본관을 삼았으니 모두 차성군 휘 위(渭)를 시조로 삼았다.

차성은 지금의 부산 기장(機張)이다.
 

차성군이 중경(中京- 고려의 서울 松京. 개성)의 말기에 목은(牧隱) 이 선생(李穡)의 문인(門人)으로 폄박(貶薄)을 당해 향리(鄕里)에 살면서 조토(示대신月 祚土- 봉군이 됨)를 받았다.' 라고 되어 있다.

 

[계 파]


-교리공파(校理公派)- 부산 동래(釜山東萊)
-부사공파(府使公派)- 경주 효현(慶州孝峴)
-정랑공파(正郞公派)- 영일 청하(迎日淸河)
-판관공파(判官公派)- 경주 마동(慶州馬洞)
-호군공파(護軍公派)- 경주 불국사(慶州佛國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