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

경주이씨 - 시조. 표암산수도

녹전 이이록 2008. 12. 9. 18:22

■ 경주 이씨 시조(慶州李氏始祖)

 

 

 

● 시조 표암공 휘 알평(始祖瓢巖公諱謁平)

 

 

경주시 동천동(慶州市東川洞) 산16번지에는 경주 이씨 시조 알평공의 위패(位牌)를 모신 시조 사당(祠堂)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종문들의 뜻을 모아 시조 *초강지(初降地) 아래에 악강묘(嶽降廟), 표암재(瓢巖齋)와 시조 경모비(始祖景慕碑)를 세우니 표암(瓢巖)이란 이름은 시조 하강 신화(始祖下降神話)에서 유래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의하면 어느 날, 경주 하늘에 한 줄기 *서운(瑞雲)이 감돌더니 빛을 타고 신인(神人) 한 분이 홀연히 인간세상으로 내려오셨다.

 

용모가 비범하고 덕(德)과 위엄이 가득했다는 그 선인(仙人)이 바로 경주 이씨 시조 알평공(謁平)이시다.

 

경주 *표암봉(瓢巖峰), 이른바 박바위에 하강하시니 광림대(光臨臺)는 시조께서 첫발을 디디 셨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당시 경주를 다스리던 진한(辰韓)은 여섯 부락의 연맹체(聯盟體)로서 나라에는 질서가 없고 백성은 우매하였다.

 

이에 알평공(謁平公)께서 알천(閼川) 양산촌장(楊山寸長)으로 추대되시어 각종 문물제도를 정비하셨다.

 

특히 국사(國史)를 결정할 때 6부(六部)중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안건으로 채택치 않는 만장일치제도를 확립하셨는데 이는 후일의 신라 화백제도(和白制度)로 계승되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른 촌장들과 백성들의 존경의 대상으로 사실상 왕이나 다름없었으나 시조께서는 13세의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추대하고 4년 간 *섭정(攝政)함으로써 신라건국의 기반 마련에 온 힘을 쏟으셨다. 

 

3대 유리왕(儒理王)은 건국원훈(建國元勳)인 알평공(謁平公)에게 이씨(李氏) 성(姓)을 사성 (賜姓)하니

이로써 2천 년(二千年)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도도(滔滔)한 역사(歷史)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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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지(初降地)

-  '초강지'를 '초항지'로 읽는데 이 때는 '내릴 강降'자로 읽어야지 '항복할 항降'자로 읽으면 안된다.  

시조께서 하늘에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서운(瑞雲)- 상서로운 구름

 

*표암(瓢巖)- '瓢'는 '표주박 표' 즉 박을 가리키고 '巖'은 '바위 암'으로 표암(瓢巖)을 순 우리말로 하여 '박바위'라고 한다.

 

또 일명 '광명암(光明巖)'이라고도 하는데 빛나고 밝은 바위 즉 '밝바위' 라고도 하여 '박바위'를 '밝바위' 라고도 한다. 

 

박혁거세의 '박'과 함께 '밝'사상과 연관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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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攝政)- 군주가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에 군주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

 

 

● 표암 산수도 - 표암 배치도

 

 

 

경주부. 교촌. 첨성대. 반월성. 알지(안압지?). 동천동. 표암. 석탈해왕릉(석씨묘). 왼쪽에 백률사 표시

 

 

아래쪽 부터 표암재사. 석탈해왕릉. 위쪽으로 표암. 시조 유허비각이 있고 옆에 제단이 있다.

그 위에 시조께서 강생하신 발상지 석혈이 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