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

신라 6촌의 지명과 위치와 촌장명. 6부시조

녹전 이이록 2008. 12. 11. 23:48

● 신라 6촌의 지명과 위치와 촌장명


○ 신라 6부의 변천

 

* 한자는 생략


◇ 촌명(村名)일 때


구분..........1.................2................3....................4................5.................6

삼국사기....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
삼국유사........〃..............〃........〃(빈지.빈자.빙지).......〃................〃................〃
성(遺事)......이씨...........최씨.............정씨...............손씨............배씨.............설씨


* 새국사사전(이홍직 저)과 삼국유사에는 사량부(돌산고허촌)와 본피부(취산진지촌)의 성씨가 뒤바꾸어 기록하고 있다. 


◇ 부명(部名)일 때


구분.................1...................2...............3............4.......................5.................6

삼국사기...........양부(급량부)....사량부.........본피부.....점량부(모량부).....한지부...........습비부
삼국유사...........〃.................〃(양작탁)....〃..........〃(양작탁)...........〃(한기부)......〃
금석문..............훼부..............사훼부..........본피부......―......................―..................―
일본서기...........훼부..............사훼부...........―............―......................―.................습부
고려사.지리지....양부...............사량부..........본피부.....모량부................한지부..........습비부
고려사(초기).....중흥부.............남산부..........통선부.....장복부...............가덕부...........임천부



● 신라(진한. 사로) 6부와 시조


○ 경주 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은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다.]


*시조를 최치원으로 하고 있다.

 

○ 경주 손씨(慶州 孫氏)

 

[신라의 전신(前身)인 서라벌(徐羅伐)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가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 봄에 왕(王)으로부터 손씨의 성(姓)을 하사(下賜)받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하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의 손순(孫順)을 손씨의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 시조를 손순으로 하고 있다.

 

○ 경주 정씨


[경주 정씨(慶州鄭氏)는 진한국 사로의 6촌 중 취산 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삼국사기」와「동경지」에 의하면, 지백호는 기원전 117년(한무제 원수6) 경주 화산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취산 진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건국에 모체를 이루었고, 서기 32년 그의 현손대에 와서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 받을 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정씨(鄭氏)의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법흥왕 때 문화(文和)로 시호를 받았고,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에 추봉 되었다.]


○ 경주 설씨

 

[시조 설거백은 당시 진한 땅이었던 지금의 경북 월성군 천북면 일대의 명활산 고야촌을 다스리던 촌장으로 서기 9년(신라 유리왕 9) 습비부로 개칭되면서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각각 사성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 경주 배씨

 

[경주 배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중의 한사람인 금산 가리촌장(金山 加利村) 지타(祗陀)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고 총재태사에 올랐다.

 

그 후 32년(유리왕 9년)에 금산 가리촌을 한지부로 고치고 성을 배씨로 하사하였다.

 

후에 한지부가 경주로 이름이 바뀌어서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