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경주 이씨의 발전’ 수정 - 2
◈ 경주이씨의 유래
잘못된 내용은 ▲[...........]로 나타내고 아래에 ⇒ 옆에 내용을 바르게 수정하고 그 아래에 설명. 소견을 올립니다.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 진한(辰韓) 땅의 표암봉(瓢巖峰)인 박바위(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소견)
표암봉(瓢巖峯)에서 瓢(표)는 ‘표주박 표’자이고 巖(암)은 ‘바위 암’자로 이를 [박바위]라고 하는데 박혁거세의 ‘박’자가 ‘밝음’을 나타내는 글자이기도 하여 ‘박바위’를 ‘밝바위’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양산촌의 급량부라 부르고...]
⇒ 양산촌(혹은 양산부)을 개칭하여 급량부라 부르고...
소견)
‘양산촌의 급량부’가 아닙니다.
서기 32년인 유리왕 9년에 6촌(혹은 6부)을 부로 개칭하였는데 이 때 ‘양산촌(혹은 양산부)을 개칭하여 급량부라 부르고’....라고 고쳐야 합니다.
▲[그 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출신인 거명을 중시조로 하고...].
⇒ 그 후 후손들은 알평의 원대손(遠代孫)으로 신라 진골 출신인 거명(居明)을 중시조로 하고....
소견)
진골 출신인 ‘중시조 소판공(휘 거명)은 시조(휘 알평)의 36세손’이 아닙니다.
시조 아드님 대부터 중시조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은 계대를 전연 알지 못합니다.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 발굴되어 게재되었다는 35대 실전 상계는 한 때 사실적으로 받아들여 쓰였지만 뒤에 여러 내용이 사실적이 아닌 계대로 밝혀져 35대 실전세계는 참고용으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35세(=35대) 상계 계대는 사실적이지 못한 계대이므로 이를 적용하여 ‘시조세수’로는 읽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중시조(소판공. 휘 거명)는 ‘시조 36세나 36세손’이 아닌 중시조(중조) 1세로만 기세합니다.
▲[그는 시조 알평의 36세손이며...]
⇒ 중시조 거명(居明)은 시조 알평(謁平)의 원대손(遠代孫)이며
- 시조세수인 36세손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중시조는 ‘시조의 원대손(遠代孫)’이라고 지칭합니다.
▲[시조로부터 현재(熙字돌림)까지는 대략 75대(약 2,000년)가 된다.]
⇒ 시조로부터 현재 중시조 40세 ‘희(熙)’ 돌림(항렬)까지는 약 2,000여 년이 된다.
소견)
시조 아들 대부터 중시조 소판공의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를 전연 모르기 때문에 중조 40세인 '희' 항렬을 시조 75대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6촌장이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신라를 건국한 시기가 BC 57년으로 사로 6촌(혹은 진한 6촌)이 이미 신라 초기 이전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약 900년의 기록이 실전되어 알 수 없지만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찬한 익재 이제현의 묘지(墓誌)에 경주 이씨로 시조이후 최초로 밝혀진 조상이기에 후손들이 중시조로 모시는 것입니다.
중시조이신 소판공(휘 거명)은 신라 말에 생존한 인물로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하기에 ‘희’항렬은 시조 75세가 아닌 그냥 중시조 세수로 ‘중조(중시조) 40세’로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거명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 경주이씨의 세계(世系)는 중시조 거명의 14~20대손(=14~20세손. 15~21세. 고려 말기)에서 크게 14개 대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중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소견)
위 두 개의 문장은 같은 내용을 몇 대손과 몇 세손으로 나누어 기술한 것입니다.
‘몇 대손’으로는 ‘중시조 16대손’으로 읽고 ‘몇 세손’으로는 ‘중시조 17세손’으로 읽은 것입니다.
‘몇 대손’과 ‘몇 세손’은 같은 뜻인데 이를 다른 뜻으로 읽는 ‘이의’논지로 각기 다르게 읽은 것입니다.
즉
같은 말을 중시조 '16대손'으로도 말하고 중시조 '17세손'으로 대손과 세손을 달리 읽어서 분파한 것으로 알고 기술한 것입니다.
‘이의’ 논지에서는 ‘세=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어 17세=17세손으로 읽고 ‘대’는 ‘세-1’로 계산하니까 17-1=16. 16대손으로 읽기 때문에 17세손과 16세손으로 읽은 것입니다.
본디 세손과 대손은 같은 뜻인데 달리 읽는 것이 ‘이의’논지입니다.
위 같은 두 개의 문장은 하나로 묶어 기술하여야 합니다.
우리 경주이씨는 중시조 15 ~ 21세(중시조의 14~20대손. 14~20세손)에서 본손 계통 8대파와 지손계통 6대파 등 총 14개 대파로 분파하였습니다.
중조(중시조) 15세에서 판전공(휘 강)을 파시조로 하는 판전공파. 중조 16세에서 성암공(휘 인정)을 파시조로 하는 평리공파. 중조 17세에서 이암공(휘 관)을 파시조로 하는 이암공파 등 7명의 4촌 형제가 대파로 분파한 7대파. 중조 19세에서 직장공(휘 양오)을 파시조로 하는 직장공파 등 형제 4명이 대파로 분파한 4대파. 중조 21세에서 월성군(휘 지수)를 파시조로 하는 월성군파가 있으니 15~21세(중시조의 14~20대손. 중시조의 14~20세손)에서 분파하였으니 15~21세이나 중시조의 14~20대손(중시조의 14~20세손)이라고 나타내어야 하는데 16대손과 17세손으로 잘못 나타내었습니다.
중조(중시조) 15~21세를 우리는 중시조님의 14세손(=14대손) ~ 중시조의 20세손(=20대손)으로 나타내어야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주이씨는 ‘대손=세손’을 같은 뜻(동의)으로 읽습니다.
경주이씨 족보. 문헌. 비문에서 세손=대손, 세조=대조 용례 59건 중 56건이 ‘세와 대는 같은 뜻(동의)’으로 읽은 자료도 있습니다.
17세는 17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으면 안 되나 16대손은 16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습니다.
- 차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