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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세손, 세조, 대, 대손, 대조의 논리

녹전 이이록 2024. 12. 6. 09:03

, 세손, 세조, , 대손, 대조의 논리

 

四代奉祭祀(4대봉제사)는 누구까지의 제사인가?

 

- 이병혁, 부산대 명예교수문학박사.

 

‘4대봉제사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상에 대해 지내는 제사에 자신까지 여기에 포함시킬 수 없으니 당연히 4대봉제사가 된다. 전통 제례에서 고조할아버지까지는 매년 기제사(忌祭祀)를 지내지만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5대조가 되면 묘제(墓祭)를 지내는 것이 상례다.

 

역사적인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나라 선종(宣宗)의 도광(道光) 26(1846)에 편집하여 지경학재장판(知敬學齋藏板)에서 출판한 피휘록(避諱錄)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중국 역사상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이것을 감히 바로 읽지 못하고 달리 읽는 것을 고증하여 보인 것이다.

 

이 책의 3권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을 당시 사람들이 다른 글자로 고쳐서 읽는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당태종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기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이를 감히 그대로 읽을 수 없어 모든 글에서 세()자는 대()자로 바꾸어 읽었다.

 

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피세작대(避世作代)라고 했다. 즉 세()자를 피해 대()자로 바꾸어 썼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잘 다스려진 세상을 본래 치세(治世)라고 했으나 이를 치대(治代)로 고쳤다.

 

또 세종(世宗)은 대종(代宗)이라 고쳤다.

 

이처럼 세()자만 바꾼 것이 아니라, ()자도 바꾸어서 본래 민부(民部)라 쓰던 것을 호부(戶部)라고 했다.

 

이때부터 몇 세()라는 말도 몇 대()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관례를 따라 세()와 대()는 아무런 혼란 없이 써왔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한갑수의 바른말 고운말(1111~1112. 책은 1968년 융문사에서 펴냈으나, 방송은 훨씬 그 이전에

있었음.)에서 잘못 방송되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는 위에서 내리칠 때 쓰이는 말이고, ()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칠 때 쓰이는 말이란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칠 경우

 

고조의 아버지(五代祖) 고조(四代) 증조(三代) (二代) (一 代) 본인(대수에 넣지 않음)

 

위에서 아래로 내리칠 경우

 

고조의 아버지(一世) 고조(二世) 증조(三世) (四世) (五世) 본인(六世) 와 같이 계산하여 몇 세손(世孫)이라고 할 때, ()에는 자신까지 계산하고 몇 대조(代祖)할 때, ()에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 대()는 본래 같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갑수의 말대로 하면 5대조(五代祖) 묘제(墓祭)에는 6세손(六世孫) ○○5대조(五代祖)에게 올리는 것으로 된다.

 

매스컴에 서 한번 잘못 보도된 이 주장은 오늘날까지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과거에도 조상을 중심으로 내리 계산할 때는 5세손(五世孫)처럼 세()자를 많이 쓰고 자신을 중심으로 위로 계산할 때는 오대조(五代祖)처럼 대()자를 쓰는 경향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와 대(()는 본래 같다.

 

따라서 5세손의 기점이 되는 할아버지는 5대조가 된다.

 

5대조(五代祖)라 하면 조상의 대수(代數)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기준점이 되는 자신은 대수에 넣을 수가 없다.

 

자신을 이 대수에 넣으면 자신이 조상의 대수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5세손(五世孫)이라 하면 자손의 세수(世數)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기준 점이 되는 그 조상은 이 세수에 넣을 수가 없다.

 

그 조상을 이 세수에 넣으면 조상 이 자손의 세수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몇 세손이라 하면 기준점이 되는 조상은 세수에서 계산하지 않고, 몇 대조라 하면 기준점이 되는 자신은 대 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가 손()의 세수(世數)에 계산 되 고, ()이 조()의 대수(代數)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오세손 하면 나를 손의 세수에 계산할 수 없고, 또 나의 오대조라 하면 나를 조의 대수에 계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불급신(代不及身)이라는 말도 대수를 계산할 때는 본인을 대수에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와 대()는 본래부터 동일한 것이다.

 

다만 진시황이후 왕가(王家)에서는 세()를 쓰고, 사가(私家)에서 는 대()를 쓰는 경향은 있다.

 

그러면 묘제 축문에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六世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五世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五世孫○○ 敢昭告于 顯五世祖考...

五代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後孫○○ 敢昭告于 顯先祖考...

 

위의 보기에서 은 한갑수식 발상으로 아예 말이 안 된다.

 

, , 는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다만 는 내리 계산할 때는 世孫, 위로 계산할 때는 代祖라는 관례를 살려서 사용한 것이다.

 

은 모두 世孫, 世祖를 사용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는 내리 계산할 때도 代孫, 위로 계산할 때에도 代祖라 한 것인데 이것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는 이런 번거로운 것을 다 버리고 오대조(五代祖) 이상은 모두 선조라 쓰고 그 후손은 모 두 후손이라고 쓰는 것이다.

 

이는 우암(尤菴) 후손들과 노론계열에서 쓰는 예이다.

 

즉 서인 계열에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