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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世)와 대(代)를 바르게 사용하자 – 5

녹전 이이록 2024. 8. 19. 07:58

()와 대()를 바르게 사용하자 5

 

위로는 모두 代祖(대조)’로 읽고 아래로는 모두 世孫(세손)’으로 읽는다면 이는 이의논지의 상대하세를 적용하여 읽은 것입니다.

 

단지 상대하세를 적용하여 위로는 (). 代祖(대조)로 읽고 아래로는 (). 世孫(세손)만으로 읽게 되니 문제가 생깁니다.

 

[=. 세손=대손. 세조=대조]로 등호(=)좌우의 용어는 같은 뜻으로 읽어야 바른 논리인데 (). 代祖(대조)는 위로, 아래로는 (). 世孫(세손)으로 읽는 것은 잘못된 논지입니다.

代孫(대손)世祖(세조)’의 용어는 족보에도 기록되어 왔고 일상생활에도 쓰이는 용어인데 노석 선생의 주장대로라면 지금부터는 代孫(대손)世祖(세조)의 용어는 없어져 버려야 되는 낱말이 됩니다.

 

그래서 上代下世(상대하세)’라는 말은 보학용어에 쓰이지 않는 사자성어이고 노석 선생의 상대하세의 글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노석선생

노석(老石) 여구연(呂九淵, 18651938)의 문집인 노석선생문집 일(老石先生文集 一)老石集二등에서 볼 수 있다.

 

1. 昔日東國無有節祀七言二絶 에서 참조

 

太宗實錄. 太宗元年辛巳三月癸卯條有曰

上如太平館, 與使臣, 行茶禮.<임금이 태평관으로 가서 중국 사신에게 다례를 행했다>로 된다. <>는 왕이갈자다.

조선 국왕이 중국 사신에게 음식 대접하는 것을 두고 일컫는 궁중용어가 다례(茶禮)였다. 다례를 행하는 관청이 태평관(太平館)이었다.

 

일본사람들이 <>라는 글자를 <: ちやレイ >로 읽는다. 조선음은 da였다.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례로 나온 것이 <다례>였고 <다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의 절차 중에 <헌다(獻茶)>가 있을 뿐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평소에 잎을 다려서 마시기에 중국사신을 대접하는 음식상 위에는 반드시 잎물(茶水)이 놓여지게 되었다.

 

조선왕조 궁중에서 중원사신을 대접하는 음식상 위에 온갖 먹거리가 올라가게 된다.

 

그들 먹거리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잎을 끓인 물이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국 왕이 중국 사신을 대접하는 것을 두고 다례(茶禮)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그 뒤 만국사신이 오게 되자 <다례> <茶禮床>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나라를 잃게 되자 다례(茶禮)라는 궁중용어도 없어졌다.

 

잎을 끓여 마시는 풀을 <()라고 하고, 그 글자 소리를 da라고 했다.

 

경북 고령군에 다산면(茶山面)이 있다.

 

달성군 지묘동에 다천정(茶川亭)이라는 경주최씨 재실이 있다.

 

정종시대 정약용 호가 <茶山>이다.

 

차산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광복후 친일 이희승이 일본말 백과사전 <廣辭苑(광사원)>을 베껴 <국어사전>이라고 했다.

 

<茶禮(다례)><차례>로 적었다.

 

여기서 일본소리 <ちやレイ 챠레이. >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말이 우리나라의 말을 엉망으로 망쳤다.

 

명절제사를 줄인 <절사>라는 말은 고려사에도 적혀 내려오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절기나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제사. 추석의 절사를 모시다.

 

"自今秋夕節祀, 令內官爲之宜當...

(이제 추석절사(秋夕節祀)부터는 내관이 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고...)숙종실록 34(1708) 813"

 

<茶禮>는 아무리 소리 내어도 <다례>일 뿐, ‘차례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석제사>를 줄인 <추석제>라고는 했으나 <추석차례>라는 말은 없습니다.

 

咸興則歲凡三十二, 別大祭曰十月四月, 正朝別小祭, 二月曰春節祭, 六月曰半行祭, 七月曰秋節祭, 八月曰山祭秋夕祭, 十一月曰冬節祭冬至茶禮, 而朔望祭, 正朝秋夕, 惟不疊行

永興則歲凡三十一, 別大祭別小祭朔望祭, 如咸興禮, 正朝爲小祭, 春節不祭, 秋夕用望祭儀

正祖實錄19(1795) 428日 戊申

 

함흥에서는 해마다 모두 32차례의 제사를 올리는데, 별대제(別大祭)10월과 4월에 올리고, 정조(正朝)에는 별소제(別小祭)를 올리고, 2월은 춘절제(春節祭), 6월은 반행제(半行祭), 7월은 추절제(秋節祭), 8월은 산제(山祭)와 추석제(秋夕祭), 11월은 동절제(冬節祭)와 동지(冬至) 다례(茶禮)를 올리고, 삭제(朔祭)와 망제(望祭)는 정조와 추석 때만은 중복해서 행하지 않는다.

 

<차례>라는 말이 교과서에 실리기는 1970년 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국어>의 첫 단원 <추석>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추석>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들에는 벼가 익어갑니다.

감도 익어갑니다......때때옷을 입었습니다. 아침에 <차례>를 지냈습니다.

나이가 40대 중반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학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을 가르쳤지만 집에서는 어른들이 <절사>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배워 와서 <차례>라고 하면, 어른들은 어디서 희한한 말을 주워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꾸짖었습니다.

명절제사를 줄인 <절사>라는 말은 고려사에도 적혀 내려오는 배달겨레의 뿌리 깊은 말입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은 "절사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명절 인사를 했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정월초하루 절사” “설 절사” “추석 절사라고 합시다.

 

<퍼온 글"

- 김봉규씨의 마지막 부분 수촌선생을 원정선생이라고 해석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노석 선생의 선생님이니까 여진규 해석이 맞을 듯합니다.

노석 선생의 2대 윗 항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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