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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전 이이록 2022. 5. 4. 08:55

답신

 

2신과 3신에서 문의한 내용에 대한 소견입니다.

 

답신) 이이록

 

교육에 힘쓰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현재 손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daum blog “경주(慶州-月城)이씨를 운영하고 동기회. 가족 카페 등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중앙위원으로 있었고 현재는 자문위원으로 있습니다.

 

중앙화수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주장하는 글과 종친님들의 질의에 답변을 올리고 있습니다.

 

종인들의 문의에 설명과 소견을 드리고 있습니다.

 

2신과 3신에서 문의한 내용에 대하여 소견을 올립니다.

 

2신에서

 

[3. 어떤 분이 세손과 대손은 등치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표현할 때 '누구 누구의 몇 세손'으로 해야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대손=세손이라는 말씀이지요?]

 

소견)

 

세와 대는 뜻이 다르다.’라는 주장이 이의론이고 세와 대는 같은 뜻이다. 라고 주장하는 논지가 동의론입니다.

 

[이의론][2세는 1] . [=세손] . [-1=] . [=대손] . [상대하세] . [대불급신]으로 정리되는 논지입니다.

 

‘2=1. 9=8. 15=14. 38=37등으로 말하고 ‘1=1세손. 5=5세손. 19=19세손. 38- 38세손등으로 읽고 위로는 몇 대조로 읽고 아래로는 몇 세손으로만 읽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의논지입니다.(제사 축문에 고조할아버지인 4대조 할아버지를 지칭하면서 자신은 5세손이라고 쓰는 경우를 말합니다.)

 

[동의론][=. 세손=대손. 세조=대조]으로 등호(=) 좌우의 용어는 같은 뜻으로 읽는 주장입니다.

 

제가 경주이씨 족보와 선조들의 문헌에서 59건의 세. . 세손. 대손. 세조. 대조로 쓰인 기록을 찾아 계대와 비교 조사하였더니 2건이 이의논지로 =세손으로 읽은 사례이고 1건은 2세 이상으로 읽은 것이고 56건이 [=. 세손=대손. 세조=대조]로 같은 뜻으로 읽었음을 몇 년 전에 밝힌 바도 읽습니다.

 

일일이 말씀드릴 수는 없고 아래의 글을 찾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성균관 홈페이지 커뮤니티 의례문답523번 창의 이 준설 선생께서 써서 올린 한갑수씨 관련 명예의 글524번에 소견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있으니 읽어 주시면 세와 대의 이의논지가 근래에 몇 사람의 잘못된 해석에 의해 새로운 논지로 일파만파로 퍼져 대세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의논지가 정론으로 우리 조상님들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누구의 몇 세손중시조님의 몇 세손(=대손)’ . ‘익재공의 몇 세손(=대손)’ . ‘판윤공의 몇 세손(=대손)’ . ‘고조할아버지의 몇 세손(=대손)’으로 누구는 윗대 조상을 가리킵니다.

 

[4. 선생님께선 익재공후 판윤공파라고 말씀하셨는데, 저의 경우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요? 그냥 익재공파 38, 익재공 할아버지의 21세손으로 말하면 되나요?]

 

소견)

 

익재공파 38, 익재공 할아버지의 21세손” - 맞습니다.

 

선생은 지금 대파는 익재공파임을 알고 계시나 중파명을 모르고 있습니다.

 

대파 익재공파 아래에 중파가 15개 파가 있으며 다시 중파 창평공파 아래에 8개 소파로 분파되어 있습니다.

 

현재 익재공파라는 것만 알고 계시니 중시조 38항렬 승우” . “익재공파 38항렬 로 말씀하고 우 종친님은 중시조님의 37세손(=37대손)”이고 익재공의 21세손(=21대손)”이며 공통으로 고조할아버지의 4세손(=4대손)” 이라고 말하여야 합니다.

 

[5. 족보 회복 문제는 선생님이 알려 주신대로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대전에 있는 경주이씨 익재공 화수회에 연락을 했으나 만족스런 답을 듣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대동보 추보 발행이 예정되었다니 잘 될 것 같습니다.]

 

소견)

 

익재공파 대동보 추보발행은 예정된 것이 아니고 몇 년 전에 익재공파보를 발행을 했는데 소식이 늦게 전해져 추보를 못한 종친님들을 위해 금년 1월부터 6월까지 추보 발행 등록 신청을 받은 것입니다.

 

기한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연락해 보면 수록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3신에서

 

[이미 자리가 만석이라 입석으로 먼 길을 가려고 작정을 하고 있는데 좌석에 앉은 어떤 중년 신사 한 분이 제 명찰을 물끄러미 보더니 '본관이 어디냐?' 고 묻더군요. 그래서 경주라고 말씀드렸더니 '무슨 파냐?' 물어서 '익재공께서 할아버지 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갑자기 좌석에서 일어나더니 고등학생인 저에게 저리를 양보하시더군요.

 

그래서 한사코 손사래를 쳤지만 그 분의 강권에 못 이겨 그 자리에 앉아서 마음이 불편한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견)

 

왜 그 신사분이 학생인 종친님에게 익재공 할아버지라는 말에 자리를 양보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요.

 

요즈음 세상에 나보다 항렬이 높다고 모든 일에 예를 차리는 행동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말씀은 잦은 전란을 겪으면서 정확하지 못한 자료가 족보에 반영되어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이지요? 짐작은 가지만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항렬의 높고 낮음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과문해서 그런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군요.]

 

- 올린 답변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위 글에서 잘 정리하여 올려놓으셨네요.

 

저도 궁금하여 중앙화수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문의하였고 지금까지 이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은 생략하겠습니다.

 

소견)

 

우리 경주이씨 시보(始譜- 처음 간행한 족보)1684년에 간행된 갑자보(甲子譜)이고 그 뒤에 1748년에 간행한 무진보(戊辰譜), 그 뒤 1814년에 간행한 갑술보(甲戌譜)로 이를 갑무갑(甲戊甲) 3대보(三大譜)라 합니다.

 

시보이후 64년 만에 두 번째 족보가 간행되고 다시 66년 만에 세 번째 대동보가 발행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족보 간행사업이 교통이 나빠 전국 종인들에게 알리고 취합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처음에는 숱한 누락자가 있었겠지요.

 

그리고 전란과 재난으로 계대를 잃어버렸다가 겨우 찾아도 계대가 바르지 않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