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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용트림' 조각은 왕의 전유물인가?

녹전 이이록 2020. 7. 31. 09:16

비의 '용트림' 조각은 왕의 전유물인가?

 

카페에 종친님과 아래와 같은 대화가 있었습니다.

 

비의 용트림에 대한 글을 읽고 A 종친님께서 답글을 올려 주었습니다.

[요즘 보면 용트림 석을 관석에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용은 왕이나 왕자 등 궁중의 전유물이 아닌지요?]

 

이에 대하여 B 종친님께서 아래와 같이 문의하셨습니다.

[신도비나 유허비 등에도 용트림 조각을 무수히 보았는데 그것도 王室(왕실) 전유물입니까? ]

 

이는 대체로 왕과 황제의 전유물 같이 말씀하신 A 종친님의 올린 글에 B 종친님의 용트림 조각은 왕이 아닌 일반인의 유허비나 신도비 등에도 사용하였는데 그것도 왕실의 전유물이냐? 는 문의입니다.

 

아래는 이에 대하여 서로 의견이 오고간 내용입니다..

 

이이록

[더 좋은 내용이 있으면 답글로 올려서 모든 종친님들이 온전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부터 왕이나 황제의 상징으로 용()과 봉황(鳳凰) 중의 봉(- 봉황 수컷. - 암컷)을 사용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임금이 입던 정복을 '곤룡포(袞龍袍)'라 하여 왕의 권위로 누른빛이나 붉은빛의 비단으로 지었으며 용무늬로 수를 놓았습니다.

가슴과 등, 두 어깨에 발톱이 다섯 개 딸린 용을 수놓았습니다.

준말로 '용포(龍袍)'라고도 합니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임금의 몸은 '용체(容體)', 임금의 정자(精子 또는 궁녀의 뱃속에 잉태된 임금의 자식)'용정(龍)'이라고 용과 관련지어 임금을 특별한 존재로 받들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임금과 관련되는 궁전이나 비석에는 거의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트림의 조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연유하여 임금과 용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여 왕족을 신성시하는 경향을 보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용트림의 조각이 왕가(王家)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유는 아래의 내용에서 알 수 있습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 제59)가 현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 74-2번지에 위치해 있는데 비신 옆쪽 언저리에는 당초문을 돌려놓았고 그 안에 여의주를 물고 상천(上天)하는 형상의 용트림을 조각하였습니다.

이수(螭首- 뿔이 없는 용)에도 연꽃잎과 구름 속의 용을 조각하여 하늘로 활짝 벌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국보 제4호로 우리나라의 부도 가운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호방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른바 고달사지 부도에서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용() 조각과 덮개 돌 아래쪽의 두 조각상이 있다는 것인데 곧 승천할 것 같은 모습으로 조각된 용트림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경렴정(景濂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중 하나로 1543년 신재 주세붕 선생이 지은 것입니다.

이름은 중국 북송의 철학자 '염계 주돈이'를 경모한다는 뜻에서 주돈이의 호인 '염계'의 첫 글자 ''자를 따서 붙인 것입니다.

''자의 치켜 올린 꼬리 부분이 원래 용트림하는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일제시대 제국주의자들이 한민족의 기를 꺾는다하여 글씨 꼬리를 잘랐다고 합니다.

 

경북 상주시 지천동 722번지 용흥사의 대웅전 내부의 삼존불을 봉안한 위의 천장부의 천개에는 용트림과 운문조각이 특수하게 휘황 스럽게 단청되어 있고....

 

경남 밀양시 표충사 법당 올라가는 돌계단 양쪽에 있는 용의 모습 조각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광국사 현묘탑비의 용 조각

 

신륵사 다층 석탑의 용트림은 보물 제 225호로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 해안대종사비의 용트림 등은....

 

이로 미루어 보면 탑비. 부도. 정자 등에도 용트림의 그림이나 조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나 왕의 궁전과 비석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용트림의 조각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일반 서민의 비석에 용트림 조각이 있는 것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근래에 김대중 전 대통령 선산 봉분 우측에 용트림하는 대형 비석이 서 있습니다.

왕조가 없어진 지금 세상에 지금은 갑부인 일반인들도 용트림 조각이 있는 비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으로 보입니다.

 

절과 관계되는 비석이나 부도에 용트림 조각이 많이 있는 이유는 절의 위치와 용과의 전설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황룡사와 통도사 구룡연 등에서 절이 용과 관련이 깊거나 부근 지역과 관련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에 대하여 두 분 종친님께서 아래와 같이 댓글을 올려 주었다.

 

B 종친님

불가에서 용트림 장식은 호국 불교적 차원이 아닐까요?

신도비에 용트림 장식은 연안김씨 김제남 선조 장인에게도 보이고요.

선산김씨 김선궁계 숭양부원군 김이원(金履元)의 묘비에도 보이더군요.

모두 다 오래된 비석입니다.

그 외 모당 홍이상. 연성부원군 이광정 등 많이 보이더군요.

 

이이록

그러면 왕실. . 높은 관직을 가졌던 사람들의 비석에도 용트림 조각을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니 이는 꼭 왕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일반인의 경우 왕의 장인. 공주나 옹주 등의 배위 부마도위도 용트림 조각이 가능합니다.

왕실의 척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이록

B 종친님께서 예로 든 연안김씨 김제남. 선산김씨 숭양부원군 김이원(金履元). 연성부원군 이광정이 모두 임금의 장인으로 왕의 척족입니다.

용의 의미를 보면 본래 권력자 또는 통치자를 상징하는 가공의 동물입니다.

동양에서 다 같이 숭상되어 왔던 것으로 우리나라는 왕. 중국은 천자,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왔습니다.

이로 보면 시대에 따라 용 조각이 왕실의 전유물이나 왕의 척족에게도 사용되고  때로는 절의 용트림 문양은 예부터 절과 용의 전설이 관련되어 있어 신라나 고려의 호국 불교적 차원으로 사용되었음을 보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