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조

경주이씨 중시조 - 소판공. 설단.

녹전 이이록 2008. 12. 16. 23:55

■ 중시조(中始祖) 소판공 휘 거명(蘇判公 諱居明)

 

 

● 소판공(휘 거명)의 최초 기록

 

소판공(蘇判公)은 고려(高麗)말 익재 문충공 이제현(李齊賢)의 묘지(墓誌)에 그 선대(先代)가 신라(新羅)때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이라는 기록을 남김으로서 시조 이후(始祖以後) 기록이 전하는 최초의 선조(先祖)가 되었다.

신라말 소판공(휘 거명) 이전 시조 아랫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는 알 수 없고 중시조인 소판공이후부터 1세로 하여 중시조세수로 이어져 오고 있다..  

 

● 중시조 소판공 휘 거명(蘇判公 諱居明)

 

蘇判이니 新羅官制에 蘇判秩은 有眞骨이 受之라
(소판이니 신라관제에 소판질은 유진골이 수지라)
- 벼슬은 소판이니 신라관제에 소판의 차례 즉 품계는 오직 진골만이 갖는다.

 

唐令狐澄의 新羅記에 新羅 貴族을 謂之骨이라하다
(당 령호징의 신라기에 신라 귀족을 위지골이라 하다)
-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 신라 귀족을 이르되 골이라 하였다.

 

始祖以下는 失系 故로 李牧隱 穡이 撰益齋墓誌에 只載蘇判以下하고
(시조이하는 실계 고로 이목은 색이 찬익재묘지에 지재소판이하하고)
- 시조 이하는 계보를 잃어버렸으므로
목은 이색이 익재 묘지에 글을 지을 때 다만 소판공 이하만 실었다.

 

大譜에 以公으로 爲遠代孫 而起 一世焉하다
(대보에 이공으로 위원대손 이기 일세언하다)
- 족보에 이로써 소판공으로 원대를 위한 후손으로 1세로 하여 일으킨다.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소판공(蘇判公)을 중시조(中始祖)로 문중사(門中事)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신라때 소판(蘇判)의 벼슬은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는 직(職)이었다.

 

따라서 시조 이후 실전(失傳)된 1000年 동안에도 다른 기록에 의하여 경주 이씨(慶州李氏)들이 대대로 왕족(王族)다음 가는 지위를 누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판공(蘇判公)은 신라 말엽 때 활동하셨다.

 

손자인 호부랑중공(戶部郞中公) 휘(諱) 금서(金書)께서 고려조에 중원태수(中原太守) 벼슬을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천자만손(天子萬孫)으로 번성하여 고려조(高麗朝)와 조선조(朝鮮朝)를 통하여 과거급제자가 182분, 재상(宰相)이 8분, 정공신(正功臣)이 12분, 청백리(淸白吏)가 10분 등 이 땅의 대표적인 명문거족(明門巨族)으로 성장했든 것이다.

 

옛말에 이씨(李氏)는 모두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이씨 성(李氏姓)중에서 사성(賜姓)의 으뜸 종문(宗門)으로서 진주, 원주, 재령, 아산, 우계. 차성, 합천 등의 이씨(李氏)는 모두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분적 종파다.

 

 

○ 중시조 소판공 거명 설단(中始祖蘇判公居明 設壇)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동천리 양천 양호단소이다.
(蔚山廣域市蔚州郡靑良面東川里良川良湖壇所)

 

현재 양천(良川) 마을은 양천과 원골 2개의 자연 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회야 댐이 있는 마을로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 판전공파 중조 15세 판전공(휘 강)과 함께 설단되어 있다.

 

 

 

○ 소판(蘇判) 관직


 소판은 관직명(官職名)으로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인 성골과 진골품(聖­眞骨品)으로 소판은 성골이나 진골 출신들만이 오를 수 있는 3관등 지방 수령직(地方首領職)이다.


참고로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공(金舒玄公)도 소판 출신이다.


신라는 9주로 나누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9주의 장(長)들이 소판이다.


九州 :  溟州, 良州, 朔州, 漢州, 尙州, 康州, 熊州, 武州, 全州.

(9주  :  명주, 양주, 삭주, 한주, 상주, 강주, 웅주, 무주, 전주).


五小京 : 南原京, 北原京, 西原京, 中原京, 金官京 ; 景德王 편제 기준

(5소경 : 남원경, 북원경, 서원경, 중원경, 금관경 ; 경덕왕 때 편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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