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경주이씨’의 오류와 수정 – 4
[경주이씨]에 대한 글이 인터넷에 여러 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올린 글마다 잘못된 내용으로 쓰여 있습니다.
모 종친께서 자료를 모아 애를 써서 쓴 장문의 글로 제목은 [경주이씨의 유래와 역사] 입니다.
장문의 글이라 원문은 생략하고 이견이 있거나 잘못된 내용만 ▲[*...........]로 지적하고 아래에 바르게 고쳐 소견)을 올립니다.
▲[백사파(白沙派)의 ‘무진보(戊辰譜)’에서 중시조 이후의 28대에 이르는 실전세계(失傳世系)를 찾아 수록했고, 그 이후 1890년대 광무연간(光武年間)의 ‘갑진보(甲辰譜)’에서 시조 사후 35대에 걸친 실전세계(失傳世系)를 다시 찾아내어 수록함으로써 잃어버린 뿌리를 그런대로 규명하였다.]
소견)
위 글 내용도 아주 잘못된 주장입니다.
[백사파(白沙派)의 ‘무진보(戊辰譜)’에서 ‘28대로 된 실전세계(失傳世系)’를 찾아 수록했고, 1890년대 광무연간(光武年間)의 ‘갑진보(甲辰譜)’에서 ‘35대로 된 실전세계(失傳世系)’를 다시 찾아내어 수록함으로써 잃어버린 뿌리를 그런대로 규명하였다.]라는 말은 잘못 서술한 말입니다.
'28대와 35대 실전세계'는 사실적이지 못한 계대인데 이를 적용하여 잃어버린 뿌리를 규명하였다 함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28대로 된 실전세계’와 ‘35대로 된 실전 세계’의 두 실전세계의 인물명은 시조와 중시조의 휘 외는 28대와 35대의 계대도 다르고 조상님의 휘(諱)도 모두 다릅니다.
28대와 35대의 양 실전 세계의 계대를 참고하여 읽어버린 족보의 계대를 모두 밝혀 수록한 양 말씀하셨지만 이를 토대로 계대를 수록한 내용은 없습니다.
‘28대로 실전세계’와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사실적이지 못하고 잘못이 많은 계대로 중앙화수회에서는 이 계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고 잃어버린 계대를 규명하였다.’ 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35대로 된 실전세계’에서 시조 할아버님 행적 난에 기록된 중 관직명만 보더라도 중국 관직명이나 고려 관직명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신라시대 관직명은 없습니다.
※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시조님의 행적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初에 以成國太輔冢宰太宰로 爲攝政王師하고 延爲太史公하니 諡는 文宣恩烈王이라.
(초에 이성국태보총재태재로 위섭정왕사하고 연위태사공하니 시는 문선은렬왕이라.)
- 신라 건국 초에 태보, 총재. 태재로 임금의 스승으로 섭정하고 연이어 태사공하니 시호는 문선은렬왕이다.]
위 관직을 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태보(太輔)
- 태보는 고구려 관직에 있다.
신라 초 관직명에는 없으며 고려 때 관직명은 태보(太保)이다.
- 중국 관직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로 신라 초에는 없는 관직이다.
△태재(太宰)
- 중국 벼슬(예- 吳나라 백비)로 신라 초 관직에는 없다.
△태사공(太史公)
- 중국사학자 ‘사마천’을 달리 이르는 말로 사마천이 태사 벼슬을 한 데서 유래하며 태사령이라고도 하였다.
태사(太史)는 중국에서 기록을 맡아보던 벼슬아치로 사관(史官)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없는 관직이고 고려시대에는 太師(고려 정1품)는 있어도 太史라는 관직은 없는 듯하다.
중국에서 사관(史官)을 太史라 불렀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빗대어 말했거나 아니면 太史公이 아닌 太師公의 오기(誤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이 중요한 보첩의 기록에 시조님의 약력(略歷)을 기록하면서 잘못 기록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 총재(冡宰). 태재(太宰).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輔).
- 태사공(太史公)은 신라시대 초기의 관직이 아님이 분명하다.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輔)는 중국 관직이거나 고려의 정1품 관직이다.
고려시대(문종)에 정1품으로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는 있었다.
‘태보(太輔). 총재(冢宰). 태재(太宰). 태사(太史)’는 모두 중국식 관직명이고 태보(太保). 태사(太師)도 글자가 틀리나 고려 때 관직명으로
신라통일이전의 관직명에는 없는 관직명이다.
▲[14대파에서 파생된 소파(小派)의 수(243개 파) 중 익재공파는 12개. 국당공파는 117개]
소견)
위와 같이 ‘14대파에서 파생된 소파(小派)의 수(243개 파) 중 익재공파는 12개. 국당공파는 117개’라고 조사하여 올렸는데 이 자료의 출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1987년도 간행 ‘경주이씨 대종보’인 정묘보를 보고 익재공파와 국당공파의 분파명을 조사한 바로는 아래와 같습습니다
보기 : ● - 대파. ○ - 중파. ▲ - 소파.
● 익재공파
- 파시조 17세 익재공(휘 제헌)- 16세 동암공(휘 진)의 차자
○군수공파- 21세 군수공(휘 인로)- 19세 계림군(휘 보림)의 손자. 사간공 (휘 봉승)의 자.
○소경공파- 21세 소경공(휘 지회)- 19세 대사성공(휘 원익)의 손자. 판서공(휘 선)의 장자
○판윤공파- 21세 판윤공(휘 지대)- 19세 대사성공 계대. 판서공(휘 선)의 차자
○참군공파- 21세 참군공(휘 지번)- 18세 운와공(휘 달존)의 증손. 도안무사공(휘 신)의 자
○ 창평공파- 23세 창평공(휘 공린)- 익재공의 차자인 18세 운와공 계대.
21세 낙안공(휘 계번)의 손자이고 22세 감사공 윤인의 아들.
▲ 좌랑공파- 24세 좌랑공(휘 오)-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장자
▲ 사미정공파- 24세 사미정공(휘 구)-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차자
▲ 재사당공파- 24세 재사당공(휘 원)-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3자
▲ 생원공파- 24세 생원공(휘 타)-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4자
▲ 장육당공파- 24세 장육당공(휘 별)-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5자
▲ 참판공파- 24세 참판공(휘 벽)-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6자
▲ 진사공파- 24세 진사공(휘 경)-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7자
▲ 한당공파- 24세 한당공(휘 곤)- 23세 창평공(휘 공린)의 8자
○ 현감공파- 22세 현감공(휘 재인)- 21세 낙안공(휘 계번)의 차자
○ 호군공파- 22세 호군공(휘 존인)- 21세 낙안공(휘 계번)의 3자
○ 사헌공파- 22세 사헌공(휘 유인)- 21세 낙안공(휘 계번)의 4자
○ 묵암공파- 22세 묵암공(휘 처인)- 21세 낙안공(휘 계번)의 5자
○ 평시령공파- 22세 평시령공(휘 원인)- 21세 낙안공(휘 계번)의 6자
○ 직장공파- 21세 직장공(휘 희번)- 20세 도안무사공(휘 신)의 3자
○ 진사공파- 20세 진사공(휘 밀)- 운와공의 장자 19세 덕림의 차자
○ 교리공파- 20세 교리공(휘 미)- 운와공의 장자 19세 덕림의 3자
○ 부사공파- 20세 부사공(휘 간)- 운와공의 장자 19세 덕림의 4자
○ 한림공파- 19세 한림공(휘 수림)- 운와공의 차자.
○ 청호공파- 21세 청호공(휘 희) 운와공의 3자 19세 학림의 손자. 대언공(휘 담)의 자
○ 밀직공파- 18세 밀직공(휘 창로)- 운와공의 3자
● 국당공파
- 파시조 17세 국당공(휘 천)- 16세 송암공(휘 세기)의 장자
○ 문정공파- 18세 문정공(휘 경중)- 17세 국당공(휘 천)의 장자
▲ 사류재공파- 26세 사류재공(휘 정암)- 25세 오재공(휘 탕) 차자
▲ 지퇴당공파- 26세 지퇴당공(휘 정형)- 25세 오재공(휘 탕) 3자
▲ 석천공파- 26세 석천공(휘 정험)- 25세 오재공(휘 탕) 7자
○ 제정공파- 18세 제정공(휘 달충)- 17세 국당공(휘 천)의 차자
○ 정순공파- 18세 정순공(휘 성중)- 17세 국당공(휘 천)의 3자
▲ 간옹공파- 25세 간옹공(휘 익)- 24세 판관공(휘 유일)의 차자
▲ 경림공파- 25세 경림군(휘 정)- 24세 충무공(휘 수일)의 장자
▲ 정익공파- 25세 정익공(휘 완)- 24세 충무공(휘 수일)의 3자
익재공파는 대. 중. 소 27개 파이고 국당공은 9개 파 뿐입니다.
그런데 익재공파는 12개 파. 국당공파는 117개 파로 하는 것은 아직 어느 통계에서도 없는 수치입니다.
주의)
1987년도에 간행한 '정묘보'인 경주이씨 대종보의 기록이 바른 자료입니다.
대파. 중파. 소파. 지파의 분파는 중앙화수회나 대종회의 승인과 인정이 있어야 분파되고 분파 명을 갖게 됩니다.
종문마다 집안의 자랑이라고 마음대로 파명을 지어 부르면 기록에도 없는 파명이라 같은 종인끼리도 혼란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