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별 장례 변천사 - 2
<신라>
신라에서는 관을 사용하여 시신을 염습 후 치장하고 상복을 입는 복제가 시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증왕 때에 제정 반포된 이 상복 제도는 왕, 부모, 처자 모두 1년 동안만 상복을 착용토록 하여 고구려나 백제의 3년 상복제도와는 달리 그 기간이 단축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지증왕은 순장금지제도를 법제화한 왕으로서도 유명하며, 또 죽은 왕들에게 시호(諡號)를 사용하도록 한 왕으로서도 유명하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불교의 법식에 따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장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골호들이 경주 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을 통해서 볼 때 이 당시에는 화장한 후 뼈를 항아리에 담아 묻거나(藏骨) 혹은 바다에 뼛가루를 뿌리는(散骨) 장법들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918년~1392년)
<고려>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발달하면서 상장례는 처음에는 통일신라의 예법을 그대로 답습해 나간 듯하다.
그런데 삼국시대부터 보급된 유교가 고려 성종 때 오복제도를 마련하는 등 확산 일로가 되면서부터 이후 상장례는 불교적 분위기에 유교적 색채를 가미해가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즉 불교적 색채가 강한 문벌귀족들이 새로 집권한 무인세력들에게 제압당하면서 신진세력들을 중심으로 유교적 상장례가 더욱 활발하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의 화장묘는 6개의 판석으로 조립된 소형 석관을 사용하였으며, 이 석관에 화장한 골회(유골)을 넣어 매장하였다.
골호 대신 소형 석관을 사용한 점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화장묘와 구별된다.
그 밖에 자녀가 동등하게 제례에 참여하는 윤회(외손)봉사제도, 성종4년(985년)에 제정 반포된 상복제도(오복제도)와 장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일반화되어 있던 100일장 및 3일장 제도, 국상에 활용된 역월단상 제도(국정을 고려 장례기간을 줄이는 제도), 고려 중기 이후 등장하는 가족(문중)묘지제도의 탄생 등도 눈여겨 볼만한 특징들이다.
조선시대(1392년~1910년)
<조선>
화장전면 금지초기 /중기에는 유교적 상장례 문화가 정착되면서 화장이 전면 금지되었으며, 회격무덤묘제의 경우 『주자가례』에 서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매장을 전제로 한 돌방무덤에서 회격무덤에로의 전환을 맞게 되었다.
집단묘지 가묘 제도를 토대로 종법 원리가 뿌리를 내리면서 친족 문중단위 중심의 집단묘지가 성행하게 되었다.
또 지석 이외에 효를 가문의 위세를 내세우고자 묘비(묘석, 묘표, 묘갈, 신도표, 신도비)의 사용이 더욱 확산되었으며, 풍수이론을 토대로 한 음택 사상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생전 상.장례 준비를 조선시대에는 자신이 들어갈 관을 생전에 만들어 놓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또 생전에 관을 미리 만들어 드리는 것이 효자의 도리라고 여겨졌다.
수의도 생전에 입던 옷 가운데 좋은 것으로 골라 입혀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준비물들은 죽음준비교육의 선구적 모습들이 이미 조선시대에 일상 속에서 자리매김 되어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들이다.
일제강점기 및 해방시대(1910년~해방 후)
<일제강점 및 해방시대>
근대적 화장장(신당리 1902년) 설치와 1912년 제정 공포된 「취체규칙」은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노천 화장터에서 장작으로 불을 때어 집행되던 고전적인 화장법이 사라지게 되었고, 또 조선 성종대 국법에 의해 금지되었던 화장이 근 500여 년 만에 합법적인 제도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이 규칙에는 화장장과 공동묘지의 설치 허가, 시설 주변의 나무 식재 의무화. 화장장의 위생 관리 등과 같이 현대적인 시설 설치와 운영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죽은 후 24시간 이내에는 매장 또는 화장을 할 수 없다는, 현행 장사법에서 법적으로 유효한 내용까지도 들어 있다.
한편 1934년 조선총독부는 ‘건전한 장례’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을 대폭 간소화시킨 <의례준칙>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의례 개혁을 시도한다.
<의례준칙>의 내용 가운데 상장례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무시하고 상주와 상복, 습렴, 상기 등 복잡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만 발췌하여, 이제 새로이 임의적으로 20여 항목의 간소화된 장례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례준칙>의 실행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우리 전통 상장례 속에 내재되어 있던 근본정신(효의 정신, 숭조정신)과 절차가 완전히 무시되어져 버림으로써, 이후 우리의 상장례 문화는 이제 단순하게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만 이행하는 수준으로 전락되어버리고 말았다.
해방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별로 호전되지 않고 있으며, 그리하여 지금도 장례문화는 계속 시신위생처리기능 위주로만 치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이 모두가 <의례준칙>에서의 절차의 간소화가 가져온 결과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모색이 매우 시급하며, 그 방안의 하나로 상중 제의례가 갖는 중요성을 재인식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제의례 의식의 부활과 활성화가 매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