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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장례 변천사 - 1

녹전 이이록 2025. 3. 27. 07:50

시대별 장례 변천사 - 1

 

좋은 내용의 글이기에 복사하여 올립니다.

 

- 조선시대부터 죽음. 준비교육의 선구적 모습 자리매김’-

 

사람은 태초부터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고인에게는 이승에서 마지막 가는 길이며, 고인을 보내는 산자의 입장에서는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어 민족별, 종교별, 사회, 문화적 관습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장례의식이 있어왔다.

 

우리나라의 시대별 장례문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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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보면, 당시에는 죽음과 질병을 동일시하여 매우 꺼리는 염기사상(厭忌思想)이 있었던 듯하다.

또 사람이 죽으면 집을 헐어버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수렵 및 목축생활을 한 것으로 사료되며, 죽음에 대한 사생관이 아직 생성되기 전인 듯하다.

 

당시의 장법으로는 시신을 주거로 사용하던 굴이나 지상에 덮어두는 방법, 자연적인 구릉지에 간단한 형태의 구덩이를 파거나 구덩이 없이 조개껍질이나 흙을 덮어 두는 방법, 또는 그 위에 돌을 쌓아 두는 방법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옥저>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매장을 한 다음에 후일 뼈만 추려서 나무로 만든 큰 곽 속에다 세골장을 하였던 듯하다.

그리고 온 가족은 모두 한 곽 속에 안치되었던 듯하다.

고인이 먹을 쌀을 곽의 입구에 넣어 두었다는 것을 보면, 이승과 저승이 한쪽 입구의 출입문을 통해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계세사상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인의 뼈를 통한 부활과 재생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여>

나무로 곽을 만든 다음 관을 넣는 매장법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순장 후 후장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이를 통한 계세사상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장례 기간(5개월)이 길고 얼음 등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시신보존처리가 어느 정도 발달했던 것으로 보이며, 날 것과 익힌 것 등 제물에 대한 언급과 상복 의미의 흰 옷 등에 대한 언급으로 미루어 보면 고인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의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한>

삼한에서는 장사지낼 때 관 밖의 곽에 큰 새의 깃털을 꽂았다.

이는 새가 영혼을 저승이나 천상에로 운반해가는 매개자로 여겨졌다는 반증이다.

깃털 대신 오리 모양의 토기가 부장품으로 낙동강 유역의 변한 진한 지역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또한 장송에 우마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우마가 가지는 재산적 가치로서의 후장 풍습 때문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는 종교적 의미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특히 말은 영혼을 지하의 세계에서 명계 즉 천상세계로 운반해가는 매개동물로 여겨졌다.

 

삼국시대(기원전 1세기~7세기)

 

<고구려>

혼인 후 곧바로 수의를 마련하면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기록을 보면, 삶과 죽음이 함께 진행된다는 믿음 하에 시신에게 상당한 예를 갖추어 치장을 함으로써 저승에서도 육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당시의 저승 관념과 사생관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 소나무 등 특별한 종류의 나무를 심어서 묘역을 조성한다는 기록을 보면, 고인의 무덤을 조경을 필요로 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집의 개념과 유사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자생 풍수적 비보사상의 한 선구적 흔적으로도 보인다.

 

장사 후 재물을 나누어 주는 풍습은 상속 및 재물의 재분배로 볼 수 있다.

3년 상이나 3개월 상 등의 장례 기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유교적 상장례 문화가 이미 벌써 이 시대에 유입되어져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초상이 나면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곡을 하지만 장사지낼 때에는 풍악을 울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망자를 저승길로 인도하였다는 데에서는, 유교식 상장의례와는 구별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장례문화의 축제적 성격을 보는 것 같아서 일종의 흥미로움이 느껴진다.

 

<백제>

수서에 따르면 백제의 상례제도는 고구려와 같다.”고 한다. 그 때문에 특히 부모나 남편이 죽으면 고구려의 유제와 같이 3년 동안 상복을 입었으며, 그 나머지 친족들은 장례를 마치면 바로 복을 벗은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를 통해서 그려볼 수 있는 백제의 장례 풍습 역시 고구려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그 밖에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백제의 장례 풍습을 유출할 만한 내용이 별로 없다.

 

화장하여 그 뼈를 추려 땅 속에 묻는 골호식 매장 법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다른 나라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