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제사합치기

녹전 이이록 2025. 3. 25. 07:53

제사합치기

 

좋은 글이 올라있기에 복사하여 올립니다.

 

시대별 장례 방법

 

시대별 장례문화 변천사

재벌이나 거리의 노숙자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죽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를 피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 역사가 낳은 많은 영웅이나 권력자들은 늙거나 죽지 않는 수많은 신화들을 만들어냈지만 그들 모두 인류가 만든 최초의 건축물인 무덤 안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만든 것은 무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과정을 지날 때마다 치르는 일정한 통과의례를 만들어냈는데요,

이것은 좁은 의미로는 관혼상제만 해당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백일과 돌, 생일, 회갑, 진갑, 고희 등을 포함시켜 인생의례가 됩니다.

 

인생의례는 모두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하며, 대부분 당사자의 생각에 따라 치러지곤 합니다. (사실 일정 부분은 그렇지 않지만요^^)

반면 본인 뜻과는 무관하게 정해진 격식과 다른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상()과 제()라는 두 부분입니다.

 

상제에서 제례(祭禮) 부분을 제외한 의례를 표현하는 말로는 장례(葬禮상장(喪葬상례(喪禮양례(襄禮장사(葬事장의(葬儀장송(葬送) 등이 있습니다.

 

이 말들은 대체로 사람의 임종에서부터 묘를 쓰는 산역(山役)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죽음과 관련한 의례거나 그 일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우리 사회에는 장묘(葬墓)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는데, 이 말은 사람의 주검이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묘지와 화장장 그리고 납골당 등과 같은 장소나 시설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곤 합니다.

 

한 미국의 인류학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죽은 자에 대한 의례를 1) 사자(死者) 의례와 2) 조상 숭배로 구분하였습니다.

 

1) 사자(死者) 의례

사자 의례에서는 장례 절차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지 시신을 처리하는 데 머무른다고 하는데, 그 속뜻을 들여다보면 죽은 자의 영혼을 육체와 분리하여 가능한 한 빨리 이승을 잊어버리고 저승에 머무르도록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례에 많은 돈을 들여 시신을 처리하는데, 죽은 자가 이승에서 쓰던 물건들을 빨리 없애는 것도 그 이름이나 기억을 빨리 잊도록 하려는 목적입니다.

20057월에 거행된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구'의 영결식 (출처: NAVER 지식백과)

 

2) 조상 숭배

반면에 조상 숭배에서는 장례에서 일정한 격식과 절차를 거칩니다.

또 가급적 죽은 자와 이승의 산 자들을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죽은 자들이 지녔던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자꾸 드러냅니다.

또한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에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며, 그를 기념할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데 적잖은 시간과 돈을 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장례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는 시기에 따라 때로 사자 의례의 모습이 두드러지기도 하고, 때로 조상 숭배의 모습만 부각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전통적인 장례는 주검을 처리하는 방법인 동시에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을 수반합니다.

죽음을 지켜본 사람이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생활의 변화를 일상의 평온한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와 혈연의 가깝고 먼 정도에 따라 오복(五服)으로 구분되는 상복(喪服)제도가 있어 친족제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사례편람(四禮便覽)을 참고하여 우리의 전통 장례 절차를 살펴보면, 초종(初終(소렴(小斂대렴(大斂성복(成服조상(吊喪문상(聞喪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급묘(及墓반곡(反哭우제(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소상(小喪대상(大喪담제(禫祭길제(吉祭) 등과 같이 여러 단계의 까다롭고 긴 절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절차는 제각기 엄격한 격식은 물론 일정한 의미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엄격한 장례 절차는 대체로 고려 말 성리학과 함께 가례(家禮)가 유입된 다음 조선 중기에 이르러 양반가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일제 아래서 공포된 의례준칙(儀禮準則)1969년에 공포된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합리화간소화라는 명분으로 반강제적으로 굴절되고 축소되는 가슴아픈 역사를 거쳤습니다.

최근에는 도시의 핵가족화에 밀리고 상업주의에 오염, 퇴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장례 문화의 변화 과정을 시대에 따라서 간략하게 살펴볼까요?

 

1. 상고시대 (단군~ 삼한)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 문화는 인류 초기부터 이루어져 왔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무덤이 시체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신앙과 정치가 생겨나고 사상과 철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 개념은 아주 자연스럽게 변해왔습니다.

단군시대부터 약 7세기 정도 까지는 매장이 우리 민족의 주요 장례방법이었습니다.

 

2. 삼국시대 (기원전 1세기~ 7세기)

 

고구려

혼인 후 곧바로 수의를 마련하면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기록을 보면, 삶과 죽음이 함께 진행된다는 믿음 하에 시신에게 상당한 예를 갖추어 치장을 함으로써 저승에서도 육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당시의 저승 관념과 사생관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소나무 등 특별한 종류의 나무를 심어서 묘역을 조성한다는 기록을 보면, 고인의 무덤을 조경을 필요로 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집의 개념과 유사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자생 풍수적 비보사상의 한 선구적 흔적으로도 보입니다.

장사 후 재물을 나누어 주는 풍습은 상속 및 재물의 재분배로 볼 수 있는데요,

3년 상이나 3개월 상 등의 장례 기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유교적 상장례 문화가 이미 벌써 이 시대에 유입되어져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초상이 나면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곡을 하지만 장사지낼 때에는 풍악을 울리고 춤추고 노래하며 망자를 저승길로 인도하였다는 부분에서는 유교식 상장의례와는 구별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장례문화의 축제적 성격을 보는 것 같아서 일종의 흥미로움도 느껴집니다.

 

백제

 

고고학적 발굴 자료를 통해서 그려볼 수 있는 백제의 장례 풍습 역시 고구려와 유사한 경향을 보입니다만 불교의 영향을 받아 화장하여 그 뼈를 추려 땅 속에 묻는 골호식 매장 법이 유행했었던 것이 큰 특징입니다.

 

신라

 

신라에서는 많은 골호들이 경주 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을 통해서 볼 때 통일신라 이후에는 불교의 법식에 따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장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화장한 후 뼈를 항아리에 담아 묻거나 바다에 뼛가루를 뿌리는 장법들이 유행했다 합니다.

 

3. 고려시대 (918~1392)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발달하면서 상장례는 처음에는 통일신라의 예법을 그대로 답습해 나간 듯합니다.

그런데 삼국시대부터 보급된 유교가 고려 성종 때 오복제도를 마련하는 등 확산 일로가 되면서부터 이후 상장례는 불교적 분위기에 유교적 색채를 가미해가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매장, 화장이 복합적으로 시행되었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4. 조선시대 (1392~1910)

 

1. 화장 전면 금지

초기-중기에는 유교적 상장례 문화가 정착되면서 화장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2. 회격무덤

묘제의 경우 주자가례에 서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매장을 전제로 한 돌방무덤에서 회격무덤에로의 전환을 맞게 되었습니다.

- 돌방무덤 : 땅을 파고 돌을 쌓아 방 형태로 만든 무덤

- 회격무덤 : 방을 만드는 방식이 아닌, 관을 여러겹의 소재로 감싸 매우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 매장하는 무덤

 

3. 집단묘지

가묘 제도를 토대로 종법 원리가 뿌리를 내리면서 친족 문중단위 중심의 집단묘지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지석 이외에 가문의 위세를 내세우고자 묘비의 사용이 확산되었으며, 풍수이론을 토대로 한 사상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4. 생전 상장례 준비

자신이 들어갈 관곽을 생전에 만들어 놓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부모의 관을 만들어드리는 것이 효자의 도리라고 여겨졌습니다.

수의도 생전에 입던 옷 가운데 좋은 것으로 골라 입혀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요, 사실 이러한 일련의 준비물들은 죽음 준비 교육의 선구적 모습들이 이미 조선시대에 일상 속에서 자리매김 되어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들입니다.

 

5. 일제강점기 및 해방 (1910~해방 후 현재까지)

근대적 화장장(신당리:1902.5.10) 설치와 1912년 제정 공포된 취체규칙은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노천 화장터에서 장작으로 불을 때어 집행되던 고전적인 화장법이 사라지게 되었고, 조선 성종 때 국법에 의해 금지되었던 화장이 근 500여 년 만에 합법적인 제도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취제 규칙의 핵심

- 매장보다는 화장을 권장한다는 것

- 개인별 묘지보다는 공동묘지를 이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는 것

위의 핵심내용 외에도 이 규칙에는 화장장과 공동묘지의 설치 허가, 시설 주변의 나무 식재 의무화,

화장장의 위생 관리 등과 같이 현대적인 시설 설치와 운영을 규정하고 있으며, 사람이 죽은 후 24시간 이내에는 매장 또는 화장을 할 수 없다는 현행 장사법에서 법적으로 유효한 내용까지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1934년 조선총독부는 건전한 장례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을 대폭 간소화시킨 의례준칙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의례 개혁을 시도합니다.

 

의례준칙의 내용 가운데 상장례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무시하고 상주와 상복, 습렴, 상기 등 복잡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만 발췌하여, 이제 새로이 임의적으로 20여 항목의 간소화된 장례 절차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례준칙의 실행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우리 전통 상장례 속에 내재되어 있던 근본정신과 절차가 무시되어져 버림으로써, 우리의 상장례 문화는 이제 단순하게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만 이행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방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별로 호전되지 않고 있으며, 그리하여 지금도 장례문화는 계속 시신 위생 처리 기능 위주로만 치달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모두가 의례준칙에서의 절차의 간소화가 가져온 결과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현재에도 이러한 부분들은 크게 달라지고 있지 않은데요.

다만, 위의 폐단을 적절하게 상쇄할 수 있는 방안중의 하나가 수목장이 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절차의 간소화가 법령에 의해 고착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장례 방식이나 문화 자체가 간소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장례문화는 간소하게 가져가되, 오래도록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자연의 일부분으로 되돌리는 수목장은 고인과 자연에 대한 예를 다하는 장례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상조 장례 특수전문지<시사상조신문 www.sisasangj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