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족보 - 11
◈ 대자(代字)
해당 글자와 뜻은 같은 별도의 한자를 쓴다.
연(淵)개소문을 천(泉)개소문으로 쓰거나, 당나라 시대에 출간된 사기에서 세가(世家)를 계가(係家)로 쓴 예 등이 있다.
피휘를 하는 것도 단순히 글자를 피하는 것에서부터 심지어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로 안 되면 음만이라도 바꿔 읽었다.
• 글자의 전체를 피한다.
(예: 한나라 문제의 이름인 유항(劉恆)를 피휘 하려고 기주의 항산(恒山)은 상산(常山)으로 개명되었다.
바로 '상산 조자룡' 할 때 그 상산이 맞다.
또 한나라 경제의 이름이 유계(劉啓)였기 때문에 계칩(啓蟄)을 경칩(驚蟄)으로 바꾸었다.)
• 글자의 일부도 피한다.
(예: 진시황의 이름 정(政)자의 일부인 正을 피하려고 정월(正月)을 단월(端月)로 바꾸었다...만 진나라가 통일 후 15년밖에 가질 않아서(...) 오늘날도 그냥 정월로 쓴다.)
•휘의 소리를 피한다.
(예: 당나라의 국성인 이(李)와 소리가 같은 이(鯉)가 뜻하는 "잉어"를 글로 쓰지 못하게 하였다.
덕분에 잉어는 이(鯉) 대신에 적선공(赤鮮公: 붉은 물고기님)라는 존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모양이 비슷한 글자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예: 황(皇)자와 고(辜)자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고(辜)를 죄(罪)로 바꾸기도 하였다.)
• 마지막으로 성인의 말씀, 선대왕이 쓴 글, 옥편 등 피휘를 하지 못 할 경우, 피휘는 하지 못 하더라도 음만이라도 바꾸어 읽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旦 자를 피휘하지 못 한다면 같은 뜻의 朝의 발음인 됴로 발음했다.
공자의 이름인 丘를 부득이 유교 경전 등에서 읽게 된다면 [10] 실제로 발음하지 않고 모(某)라고 발음했다.
공자 자신은 생존 당시에 某(모)가 아니라 丘(구)의 발음을 그대로 했을 것이지만 후세 사람들이 감히 읽지 못 하고 회피한 것이다.
공자 외에도 주요 성현들이라든지 기타 읽기가 곤란한 제왕이나 부모의 이름 등도 모(某)라고 읽곤 했다.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사례는 한고조 유방(劉邦)의 사례.
'방(邦)'은 나라를 뜻하는 의미의 한자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유방이 황제가 되면서 '방(邦)'은 사용이 금지되고 비슷하게 나라를 뜻하는 의미의 한자이지만 그때까지는 왕이 거하는 도성을 뜻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였던 '국(國)'이 나라를 뜻하는 한자로 쓰이게 된다.
중국의 최고위 관직이었던 상방(相邦)은 바로 이 때문에 상국(相國)으로 바뀌었다.
•'초(楚)'나라는 시황제의 아버지인 장양왕의 이름이 자초(子楚)였던지라 '형(荊)'으로 개명해야 했다.
형주라는 이름의 기원이며, 그 흔적으로 형초(荊楚)라는 표현이 전해진다.
• 삼국지의 인물들의 이름 중 비(備), 견(堅), 조(操), 우(羽), 의(懿)가 피휘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해당왕조가 존속할 때만
피휘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羽)'의 경우 해당인이 후대에 황제(관성대제)를 넘어 신(神)으로 추대 되면서 이후 중국 후대 왕조의 황제들이 이름을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들 스스로 피휘를 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굳이 운장, 관공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