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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4

녹전 이이록 2024. 3. 11. 07:47

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4

 

전객시 : 충렬왕이 1298년 예빈성을 개칭하였는데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의전실이다.

 

경주이씨 종보 제133(2002812(월요일), 2면에 의하면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표암학술원(원장 : 이상비 박사) 전체 회의에서(200289일 오전 11시 장학관에서 개최하다.)

 

당시 4건의 보학 의제 검토 사항 중 판전공파 파명에 대하여란 제일 첫 번 째 의안으로 판사공파로 고쳐져야 한다는 평결을 내린바 있다.

 

그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당시의 관직이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이를 약칭시 "판전(判典)"이 아니고 "판사(判事)" 이다.

둘째, 20011130일 표암 학술원에서 권고한바 있음.

셋째, 조선 말기 영의정을 역임하신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 1814-1888)공이 편찬한 족보에 판사공(判事公), (+)으로 명기되어 있음.

 

그러나 판전공파 문중에서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판전공파 그대로 파명을 하기로 결정함.

 

판전공파(判典公派)

 

중시조 15세 판전공(判典公) (+) - 중시조 15세 열헌공(휘 핵)의 동생

 

감찰공파(監察公派) 19 감찰공(監察公) 휘 자()

(15세 판전공 강16 판서공 신유17 보승랑공 원무18 사재공 운경19 감찰공 자)

 

사정공파(司正公派) - 20 사정공(司正公) 휘 눌()

(15세 판전공 강16 판서공 신유17 보승랑공 원무18 사재공 운경19 4남 판서공 오20 사정공 눌)

 

호계공파(虎溪公派) - 22 호계공(虎溪公) 을규(乙奎)

(15세 판전공 강16 판서공 신유17 보승랑공 원무18사재공 운경19 중랑장 수20 어모장군 구산21 전력도위 한주22 호계공 을규)

 

호계공

예로부터 인재의 고장으로 이름남 경주. 중종 때 경주에서 태어난 호계공 을규는 사신으로 중국 황제를 알연하매, 황제가 그 학문에 감동하여 쇠 화로를 하사하였다.

 

성리학의 거두 회재 이언적과는 도의로 맺어진 벗으로서 호계공이 과거응시 차 상경할 때 회재선생이 지었다는 시 한 수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경산 현령과 호계 군수로 있을 때 청렴하고 공명정대한 일처리로 목민관의 모범이 되었으니 백성들은 송덕비를 세웠으며, 조정에서는 청백리에 녹선 하였다.

 

휘는 을규(乙奎), 자는 문경, 호가 호계(虎溪)와 양졸당(養拙堂), 1508년 남중리서 출생, 랑장공(휘 수)의 증손, 1531년 진사와 생원급제, 1532년 호명리 이거 정사 건립, 회재(이언적)선생과 도의교우로 학문에 심취, 1535년 별시문과 장원, 승문원 교리 겸 경연춘추관 기사관, 중국사신(3), 경산현령, 초계군수, 청백리 녹선, 1543년 호명낙향, 39세로 별세, 묘소는 쌍분으로 북군 화개산(사목정-1015일 시향), 슬하에 5형제가 의병 창궐하여 장자 휘 홍검은 호가 모헌이고 충순위로 곽재우 창의록에 록하고, 차자 휘 홍정은 무과급제하고 호가 만호로 창의록에 록하고, 3자 휘 홍각은 호가 동강이고, 진사와 찰방으로 창의록에 록하고, 4자 휘 홍로는 인의로 화왕산 의병, 계자 휘 홍순은 호가 동우로 창의입훈, 상서원직장으로 병조참의로 증직되셨다.

 

손자 휘 시화(승사랑, 군지감봉사), 휘 시인(장사랑, 영천훈도), 휘 시립(예천훈도)로 창의 훈록하고 증손 휘 형(참봉, 동래교수)도 창의 녹훈되셨다.

 

울산 양천의 감찰공()*7세손 6세손인 휘 석종은 초휘가 석숭, 수문장으로 창궐하여 선무3등 공신으로 울산읍지에 기록되었다.

 

울산 양천의 소판공 사단은 감찰공의 후손들이 설단, 수호하고 있다.

 

북산서사(北山書社)

북산서사는 호계공 25세 때 남중리서 호명리로 이거하여 정사를 건립, 학문에 전념하였고, 북산사(北山祠)1823년 북군동 묘소에 창건, 훼철되었다가 1967년 이건하여 묘호를 지경(持敬), 당호는 포요(抱瑤)로 심덕재를 갖추고 3월 초정일(음력)에 후손과 향인들이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