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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3

녹전 이이록 2024. 3. 9. 08:21

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3

 

아울러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려의 관작 변천사항을 열거해 보면 고려초기에는 예빈성(禮賓省)이라 했는데 그후 예빈시(禮賓侍)로 고쳤고 제25대 충열왕(忠烈王: 1274-1308) 24년에 예빈시(禮賓侍)를 전객시(典客侍)라 했고 제31대 공민왕(恭愍王:1351-1374)때 다시 예빈시(禮賓侍)라 했다가 재위11년에 다시 전객시(典客侍)라 바꾸었으며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恭讓王)2년에 예빈시(禮賓侍)라 개칭하였으니 당시의 연대수를 살펴보면 판전공께서는 고려 제23대 고종(高宗)때 태어나셔서 24대 원종(元宗)대부터 문하평리를 지내신 맏형 열헌공(悅軒公)과 금교 대장을 지낸 방열공(方烈公), 상서좌승을 지낸 숙진공(淑眞公)과 함께 벼슬에 올라 고려 제25대 충열왕(忠烈王) 24(1298)에 이르러 동반(東班)벼슬인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자리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첫째 고려왕조에 전객시(典客侍)라는 관사(官司)명칭을 그때 처음으로 고쳤으며 또한 공()의 연세가 상당히 많으셨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 당시 밀직승지(密直承旨)로 계셨든 동암공(東庵公 : 익재공의 아버지)은 공()의 큰집 둘째조카 되시는 분이며 충열왕 13(1287)에 동암공의 나이 44세에 익재공이 태어 나셨으니 공은 익재공의 종조부(從祖父)가 되시고 동암공의 삼촌이 되시므로 그 시절 조혼(早婚)의 관계로 보아 동암공보다 나이 13세 연상이라 본다면 판전공께서는 충열왕으로 부터 교지를 받으신 해가 충열왕 24년인 공()의 나이 68세로 추정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공의 관직(官職)이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로 기록된 원인을 살펴보면 고려관직에 예를 들어 감사(監事), 판사(判事). 지사(知事), 동지사(同知事) 등의 관직은 관사(官事)위에 감(), (), (), 동지(同知), ()를 두고 ()”는 관사 밑에 썼는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 판문하성사(判門下省事)......... 문하성 판사

감춘추관사(監春秋)........ 춘추관 감사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 전객시 판사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추밀원 지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중추부 동지사

 

이렇게 위의 ()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근무처와 직위를 한꺼번에 나타내어 사용했든 것이다. 그럼으로 공()은 정순공(正順公), 또는 판사공(判事公)이라 칭함이 올을진데 원인을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판전공(判典公)이라 표기하여 받들어 왔든 것이다.

 

다시 판전공께서 어느 시대 분이시고 어떠한 품계와 관직에 계셨는지를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순대부 판전객시사(正順大夫 判典客侍事)

시대(時代) : 고려 충열왕

품계(品階) : 정순대부(正順大夫 :堂上官)

관사(官司) : 전객시(典客侍 : 지금의 의전실)

직위(職位) : 판사(判事 : 지금의 의전실장)

 

끝으로 공의 아드님이 신유(臣裕)이시니 고려 26대 충선왕 2(1310)에 새로 제정한 종2(從二品)인 봉정대부(奉靖大夫)에 올랐으며 후()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내셨으니 그때 의부(儀部)를 예의사(禮儀司)로 개칭, 분사(分司)하여 판서(判書)를 으뜸으로 하고 보조기관으로 전향사(典享司), 전객시(典客侍)등이 있었으니 오늘날 외무부와 문교부장관에 해당한다.

 

< 判事公(판사공)이 맞다고 주장하는 이유 >

 

파조이신 휘 강(+)'정순판전객시사'로 정순은 '정순대부'로 품계(문산계의 정3)를 말함이고, 판사는 '전객시'라는 관청의 수장으로 관직명이다.

 

원래 고려조에서는 관청명을 가운데 쓰고 관직명을 맨 앞에 붙이고 끝에 '()'를 붙여서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판전객시사'를 볼 때 판사가 관직명이고 전객시는 관청명 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파명을 쓸 때 호나 관직명(벼슬이름)에다가 ''자를 붙여 사용하기 때문에 '판전공'이 아니라 '판사공'이 맞다고 봅니다.

 

이와 같이 오문에서 오용되고 있는 것들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고 합니다만 판전공파 대종회에서는 선대조상님들이 파명으로 정해놓은 판전공파 그대로 할 것으로 결의한바 오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