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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2

녹전 이이록 2024. 3. 8. 07:55

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2

 

공은 어느 때 계셨는가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그 당시 밀직승지인 동암공 휘 진이 공의 큰집 둘째조카이며 충렬왕 13(1287)에 공의 연세가 44세로 추정하여 볼 때 익재공이 태어나셨으니 공이 익재공의 종조부가 되시고 동암공의 막내 삼촌이 되시매 그때 공의 연세가 동암공과 몇 세 차이가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대적으로 공께서 판전객시사라는 벼슬에 계실 때 충렬왕 24(1298) 경부터이며 공의 연세가 68세가 되시든 1308년에 충렬왕이 승하하고 공께서도 낙향하신 걸로 추측된다.

 

공의 관직인 정순대부 판전객시사에 대하여 살펴보면,

 

시기 고려 충렬왕 341308년이며

품위 3품 당상관이고

관사 전객시로 지금의 의전실이 되며

직위 판사(判事/3)으로 지금의 의전실장이셨다.

 

공의 묘소는 실전(失傳)으로 후손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다가 서기 1988년 중시조 동역 내인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동천리 양천부락 후원에 설단하고 단비를 세우니 이제 공의 크나큰 자취를 남기시게 되었다.

 

매년 음력 9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판전공파 파조(判典公派派祖)의 벼슬에 관한 고찰(考察)

 

판전공의 휘()는 강(+)으로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으로부터 *15세손(世孫) 14세손(世孫)이요. 열헌공(悅軒公)의 둘째 아우이니 성암(誠庵), 동암(東庵), 송암(松庵)공의 숙부로 이암(怡菴), 익재(益齋), 국당(菊堂), 부정(副正), 상서(尙書)공 등의 종조부(從祖父)가 되신다.

 

()의 형수인 김해김씨는 성암공, 동암공, 송암공, 삼형제 등을 공부시켜 과거에 급제시킨 현모(賢母)로서 당시 고려는 물론 오늘날 우리 후손들까지 모르는 이 없을 만큼 유명한 위인 할머니로서 당시 익재공의 아버지 동암과 국당공의 아버지 송암 두 형제분을 임금이 직접 치르는 친시(親試)에서 함께 급제함으로서 천장급제라는 대호평을 받으며 금으로 만든 황패를 받았든 일들은 물론 당사자들의 재주도 있어야 했겠지만 글을 가르친 스승이 주목 받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 스승이 다름 아닌 판전공의 형수이며 판전공(判典公) 또한 형수분의 가르침을 받아 정순판전객시사(正順判典客侍事)라는 벼슬에 올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판전공에 대한 기록이 족보(族譜)에는 미흡하여 많은 종인들이 궁금함을 금치 못하나 고려의 관직, 문관(文官)의 품계(品階)에 의하면 정순대부(正順大夫)는 정3(正三品)의 당상관(堂上官)으로 고려 제25대 충열왕(忠烈王), 재위(在位) 34년이 되는 1308년에 여러 관계를 고치면서 새로이 제정(制定) 되었던 사실(事實)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품계를 살펴보면

당상관으로는 정일품 : 삼중대광(三重大匡), 종이품 : 중대광(重大匡)

정이품 : 광정대부(匡靖大夫), 종이품 : 통헌대부(通憲大夫)

정삼품 : 정순대부(正順大夫),

당하관으로는 정삼품 : 봉순대부(奉順大夫),

종삼품 : 중정대부(重正大夫) 중현대부(重顯大夫),

정사품 : 봉상대부(奉常大夫),4: 봉선대부(奉善大夫)

순으로 기록되어 있고 전객시(典客侍)라는 관사(官司)는 외국인 사신의 영접 또는 종실과 재상의 중요행사를 주관하는 오늘날 의전실(儀典室)과 겉은 곳으로 공()께서 정3품의 판사(判事)이시니 지금의 의전실장(儀典室長), ()에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