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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1

녹전 이이록 2024. 3. 7. 08:54

경주이씨 판전공파(判典公派) - 1

 

경주이씨이면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고 좋은 자료이기에 복사하여 올립니다.

 

* 숫자는 시조(始祖) 이알평(李謁平)으로부터 몇 세()인가를 의미하며, 시조로부터 몇 세인가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시조(알평) 다음 부터 중시조(이거명) 앞대까지 계대는 실전되어 알 수 없기 때문에 헤아려 읽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괄호안의 숫자는 遠代孫(웜대손). 中始祖(중시조) 蘇判公(소판공) 居明(거명)으로부터 몇 세()인가를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판전공파로 명명되었던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수차례 나와서 判典公派(판전공파) 문중에서 그냥 판전공파로 사용하자는 쪽과 判事公(판사공)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쪽이 팽팽히 맞서다가 判典公派(판전공파) 그대로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判典公派(판전공파)에 대하여

 

판전공의 휘는 아강(李康+)으로 시조로부터 *50세손 삭제. 시조 부터 중시조 앞대까지는 계대가 실전되어 세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중시조 소판공(蘇判公)*15세손 15. 15세 손으로서 정순대부(正順大夫) 판전객시사(判典客侍事)의 벼슬을 하셨으나 난중(亂中)의 화를 피하여 산중촌락에서 독서만 즐기셨다.

 

공의 백형은 휘 핵()으로 ()가 만리요, 호는 悅軒(열헌)으로 문하평리의 벼슬을 하셨고 상서좌복야로 증직 받으셨다.

열헌공이 슬하에 세 아드님을 두셨으니 첫째가 성암공(誠庵公) 휘 인정, 둘째가 동암공(東菴公) 휘 진, 셋째가 송암공(松巖公) 휘 세기이며, 공의 중형인 휘 ()은 아들이 직간(直幹)으로 장수이씨로 분적 되었다.

 

공의 아드님은 휘 신유(臣裕)로 봉익대부 예의판서를 지내셨다.

 

공은 14개 대파 중에서 아홉 번 째 대종으로 첫손자가 낭장 휘 원무(元茂)이시고, 아들 첨정공 휘 운경(雲敬)에서 5개 중종으로 분파하고, 판서공의 둘째 아들은 병정공 휘 문저(文著)로 그 아래로 예빈시 봉사공 휘 태()를 두셨다.

 

5개 중종은 첫째가 비순위중랑장 휘 (), 둘째는 휘 ()인데 후손이 없는 것으로 전해온다.

 

셋째는 감찰공 휘 ()이고, 넷째는 예의판서 휘 耒吾(뢰오), 다섯째는 훈련원판관 휘 ()이다.

 

공은 고려 문관위계의 정순대부라는 품계로 정3품 당상관이시니 고려 25대 충렬왕 34(1308)에 여러 관계를 고치면서 새로 제정된 사실을 고려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충렬왕 때 품계를 보면

 

당상관으로는

1: 삼중대광(三重大匡), 1: 중대광(重大匡)

2: 광정대부(匡靖大夫), 2: 통헌대부(通憲大夫)

3: 정순대부(正順大夫),

 

당하관으로는

3: 봉순대부(奉順大夫),

3: 중정대부(重正大夫)/중현대부(重顯大夫),

4: 봉상대부(奉常大夫), 4: 봉선대부(奉善大夫)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객시라는 관사가 의부(그 뒤 고려 26대 충선왕 21310년에 예의사로 개칭)에 배속되어 외국의 사신 또는 빈객을 영접하고 왕실과 재상들의 주요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으로 으뜸은 판사(判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