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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慶州李氏)에 대(對)하여 – 2

녹전 이이록 2024. 1. 26. 08:01

경주이씨(慶州李氏)에 대()하여 2

 

원문에 잘못된 내용은 * 표시를 하고 뒤에 바르게 수정합니다.

 

5-1 경주이씨 항렬제차(慶州李氏 行列第次)

 

35: (영화로울 영), 36: (서옥 규), 37: (술잔 종, 모을 종),

38: (비 우) 39: (서로 상) 40: (빛날 희),(빛날 형)

41: (있을 재) 42: (냄비 호),(자물쇠 건) 43: (건널 제).(깊을 준)

44: (동력 동) 45: (남역 병),(마음 심) 46: (가르칠 교),(대 세)

47: (진압할 진) 48: (구할 구) 49: (뿌리 근)

50: (화할 섭) 51: (가파를 준) 52: (착할 선)

53: (클 태) 54: (법 모) 55: (솥귀 현)

56: (고를 균) 57: (녹일 용) 58: (순박할 순)

59: (잡을 병) 60: (빛날 경).(뛰어날 걸) 61: (터 기)

62: (보배 옥) 63: (물 락).(길 영) 64: (심을 식)

65: (큰 덕) 66: (두루 주),(일어날 기) 67: (큰 쇠북 용)

68: (넓을 호),(물이름 수) 69: (살 주),(비단 채) 70:(불길 훈),(빛날 엽)

 

시조.....중시조..................시조.....중시조............................시조.....중시조

*70, 35세 영()..........*71, 36세 규()..................*72. 37세 종()

*73, 38세 우()..........*74, 39세 상()..................*75, 40세 희(). ()

*76, 41세 재()..........*77, 42세 호(). ()........*78, 43세 제()

*79, 44세 동()..........*80, 45세 심(). ()........*81, 46세 교() ()

 

* 시조세수 2세부터 81세까지는 계대가 실전되어 세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시조세수로는 헤아려 읽지 않는다.

위 시조세수 70~ 81세의 세수는 바르지 못한 세수로 삭제하여야 한다.

 

6. 경주이씨 대동항렬을 최초로 만든 시기

 

1865년경 고종황제 초기 흥선대원군께서 섭정을 하고 계실 때 전국에 왕명으로 () 性氏(성씨) 들은 各己(각기) 行列字(항렬자)를 이에 따라 작명하고 長派(장파)의 항렬자를 따라 統一(통일)해서 性名(성명)만 보더라도 그貫鄕(관향)과 항렬을

단번에 알아보고 서로 敦睦(돈목)하고 위아래 次序(차서)混同(혼동)해서 망발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7. 본손 계통 8대파

 

- 평리공파(評理公派) - 16세 이인정

- 이암공파(怡庵公派) - 17세 이관

- 익재공파(益齋公派) - 17세 이제현

- 호군공파(護軍公派) - 17세 이지정

- 국당공파(菊堂公派) - 17세 이천

- 부정공파(副正公派) - 17세 이매

- 상서공파(尙書公派) - 17세 이과

- 사인공파(舍人公派) - 17세 이조

 

지손(支孫) 계통 6대파

 

- 판전공파(判典公派) - 15세 이강

월성군파(月城君派) - 21세 이지수

- *시랑공파(侍郞公派) 삭제

직장공파(直長公派) - 19세 이양오

- 석탄공파(石灘公派) - 19세 이존오

진사공파(進士公派) - 19세 이존중

교감공파(校勘公派) - 19세 이존사 이다.

 

한편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에는 전술한 *106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 삭제 와 우계이씨. 차성이씨는 거명의 윗대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 상신 8,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하였다.

 

14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 李恒福)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의 세칭 ‘8()과 완()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문형 가운데 백사 집에서 영의정 4, 좌의정 2,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 1287~ 1367)이 고려 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일곱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