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례의 의미(5)
• 제례
백과사전 연관 이미지
조상을 받들어 추모하는 의례를 제례라고 한다.
이러한 제례는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의 일생과 관련된 의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례가 중요한 의례로 인식된 것은 사후의 조상을 생전의 부모처럼 극진히 모시려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자는 “조상을 제사지낼 때는 앞에 계시듯이 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제사는 효의 한 가지로, 자기에게 생명을 부여한 본원(本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
사자(死者)에 대한 관념은 다양하지만, 크게 사람은 죽으면 그가 살던 세계와 단절된다는 생각과 죽은 사람도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사람이 죽은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회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제사 모시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에는 조상을 잘못 모시면 자손에게 화가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살아 계실 때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죽은 다음에는 제사를 정성껏 모셨던 것이다.
“야! 오늘 저녁이가 나 죽은 날 저녁여. 나 죽은 날 저녁이어서 메 한 술 둘른다네. 그러니께 같이 좀 가세.”
그러니께, 자기 옆에 드러눈 모이서 대답허기를, “야, 난 손님네가 와서 못가. 자네나 점 갔다오게.”
…(중략)…
“에이, 가서 보니께 개갈 안나서(신통치 않아서) 그새 왔네.”
“아이 뭐가 개갈 안나?”
“개갈 안 나서 손주새끼 원, 어린내 새끼 아궁지다 집어넣고 왔네.”
“어이, 그게 무슨 말여. 월마나 잘못헷깐?”
“아, 국이라 보니 구렝이 잡아 넣었지, 밥이라구 보니 바위뎅이 넣어놨지. 그거 먹을 수 있나. 그래선 이것두 다 집어치구 애새끼 하나만 아궁지다가 집어 느쿠 왔네.”
…(중략)…
“아, 그러냐구, 당신 아버지 지사를 다시 지내쇼. 오늘 저녁에 다시 지내야지 다시 지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에, 내 얘기를 들으니께 당신네 메밥에다가 돌팍(돌)을 넣고, 또 국에가는 머리카락이 빠졌어. 그래서 어린애를 아궁지다 발길로 차구 왔다구 헙디다. 그러니께 다시 지내쇼.”
위의 이야기에서 죽은 아버지가 아들이 제사를 정성껏 모시지 않자 그에 대한 벌로 손자를 아궁이에 밀어 넣어 불에 데게 한다.
젯밥을 먹으로 갔던 아버지가 화를 내를 내고 온 것은 제사상에 오른 음식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정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차린 제상의 국에는 머리카락(구렁이)이 빠져 있고, 쌀밥 대신에 메밥(돌)이 올라오자 불경스럽다하여 자손에게 화풀이를 한다.
마침 지나가는 나그네에 의해 이 사실을 알고 다음날, 정성껏 음식을 차려서 제사를 지내자 “어린내 덴 것이 이내(바로) 나섰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설화는 민중들로 하여금 조상을 경외스런 존재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조상숭배를 낳게 한 것이다.
한편,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돌아가신 날 궐명(厥明, 먼동이 틀 때)에 시작하여 질명(質明, 밝아올 때)에 끝내야 한다.
옛날 지체 높은 집안의 자손들이 만나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사람은 닭이 운 다음에 행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또 한사람은 닭이 울기 전에 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곳에 또 한사람이 와서 자신의 집에서도 처음에는 닭이 운 다음에 행했지만,
지금은 닭이 울기 전에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유는 이러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 저녁 무렵에 한 거지가 찾아와서 ‘오늘이 당신 아버지의 제삿날이지요. 부디, 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지내십시오.’라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이유를 묻자, 거지는 ‘사실은 오늘 내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당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오늘은 내 제삿날이지만 나는 매년 제사음식을 받을 수가 없다.
그것은 내가 제사상을 받으려고 가는 도중에 항상 닭이 울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수고스럽겠지만 내 자식 집에 가서 이제부터는 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지내달라고 전해주게. 그리고 이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증거로서 내가 평생 애독하고 있었던 西厓文集(유성룡의 문집) 어디 어디를 펼쳐보라고 말하시오.
그곳에는 내 수염이 두․세 가닥 떨어져 있을 테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西厓文集을 꺼내어 조사해 보니 과연 아버지의 수염이 있어서 그 이후 조상의 제사는 반드시 닭이 울기 전에 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의 설화에서 보듯이 제사는 늦어도 계명(鷄鳴) 전까지는 지내야 함을 알 수 있다. 요사이는 생활 여건의 변화에 따라 돌아가신 날 초저녁에 지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
만일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 해가 진 다음부터 밤 11시가 되기 전에 지내야 한다.
그래서 기제는 보통 돌아가신 날 전날에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기제는 돌아가신 날 만사를 제쳐 놓고 지내야 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날의 시작인 자시에 지내게 되므로 통상 돌아가신 날 전날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