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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녹전 이이록 2023. 5. 22. 08:02

제사

 

제사에 대한 내용으로 인터넷에 올라있어 좋은 복사자료이기에 펌하여 올립니다.

 

사가(史家)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제사(祭祀) 관습은 고려 말 중국으로 부터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 제사는 원래 지금처럼 죽은 사람을 위한 제례가 아니고 종손을 높이는 의미로 부모를 높은 곳에 모시고 제사 형식의 예를 올렸던 것이다.

그것도 모든 백성이 아닌 황제에게만 적용되던 제사가 그렇게 해야만 후손이 잘 된다는 유혹을 받은 제후들이 따라서 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무너지는 사회질서 속에서 평민들도 자기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 다투어 실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죽은 부모에게로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제사에 대한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기는 훨씬 후대인 송나라 때에 주자학(朱子學)을 창안한 주희(주자)였다고 한다.

이것이 주자학과 함께 우리나라에 도입이 되어 이퇴계에 의해 '성리학'으로 정립되고 아울러 일반 민가에까지 전해져 제사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사대부 등 특수층 사람들에게만 제사가 이루어지다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의 이태조에 의해 서민들에도 널리 장려 되었다.

이후에도 제사 문제는 조정의 사화(士禍)의 빌미가 되는 등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제례 법은 문중 마다 다소 다르기도 해 '가가례문(家家禮文)'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또

'남의 제사상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한다.'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

 

제사상 진설 방법 등 제례 격식은 문중 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전통 제례 법에 따른 제사 모시는 시간은 대체로 같다.

물론 시대 흐름에 따라 지금의 제례에 있어서는 제사 모시는 시간도 크게 달라지고는 있다.

 

그렇다면 격식에 맞는 제대로 된 제사 모시는 시간은 언제일까?

주자가례에 따르면 제사날인 기일의 새벽에 제사음식을 진설한다.’ 라고 되어 있고, 전통 제례법상에서도 기일 날 자시(子時)에 제사를 모시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원칙은 지금에도 이어져 정부가 1969년에 제정하고 20081014일에 전문개정, 공포한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도 부분적으로 준용되고 있다.

 

건전 가정의례 준칙20조 기제사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기제사)

기제사의 대상은 제주로 부터 2대조까지 한다.

기제사는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제사를 모시는 시간인 자시(子時)를 지금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밤 1130분부터 새벽 130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한 계산법에 의한 정확한 시간은 아니다,

우리의 정확한 시간은 밤 1130분부터 새벽 129분까지가 맞다.

 

전자는 일본식 기준이고 후자는 한국식 기준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한국의 문화 말살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간 개념 또한 일본식으로 바꾸어 동경의 표준시 시간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표준시인 한국 경도 127.5도로 기준을 삼으면 밤 1130분에서 다음날 새벽 129분이 제대로 된 시간이다.

그러나 습관대로 대부분 밤 11시부터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제사는 자시(子時)에 지낼까?

^동양학의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자시(子時)는 사후세계인 저승을 비롯하여 천상(天上)의 문이 열려 음신(陰神)들이나 음귀(陰鬼)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간대이다.

 

저승의 저승사자도 음신으로써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볼일을 보고 아침 동이 트기 전, 새벽닭이 울기 전에 저승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태양이 쏟아지는 빛은 양()의 기운이므로 영체(靈體)가 빛을 맞게 되면 치명타가 되어 증발,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이란다.

또 축시(丑時)에는 땅이 열리고 절()이 타종으로 만물 중 식물, 동물을 깨우는 시간이며, 인시(寅時)는 새벽닭이 울고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대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심오(?)한 뜻에서 자시(子時)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란다.

 

옛날에는 시계가 없어서 밤 11시경부터 새벽 1시경을 자시로, 같은 날로 쳤다.

그러므로 제사는 돌아가신 날 새벽(子時)에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은 하루가 시작되는 첫 시간이므로 이 시간에 조상의 제사를 올린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사정상 일찍 제사를 지낸다고 초저녁에 많이 지내는데 그렇게 되면 기일 전날, 즉 살아 계신 날 제사를 모시는 결과가 되므로 틀린 것이다.

시대 조류에 맞춰 불가피하게 시간을 조정하여 일찍 지내려면 기일 당일 해가진 초저녁부터 밤 11시 전에 지내야 되는 것이다.

 

11시가 지나면 다음 날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하면 그것도 자시(子時)는 아니니까 전통 제례 법에서는 벗어난 것이지만 제사를 생략할 수도 없고, 후손들의 현실적인 사정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차선책인 대안으로 제사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유교 풍습이 대체로 많이 남아 있는 경북 지역(특히 안동 지역)의 명문 종가들은 아직도 자시에 제사 모시기를 고집하는 문중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과 종가의 유지· 발전을 위한 선택 등을 이유로 제사 시간을 기일 초저녁으로 바꾸는 사례가 점차 늘고도 있다.

 

또 예서대로 지내오던 4대 봉사(고조까지)도 점차 2대 봉사로 줄어들고 더러는 *부와 모의 제사를 합사하여 같은 날 함께 지내거나 후손들의 편의에 따라 제사 날에 가까운 주말의 별도 날을 정해 지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제례에서 절차나 과정을 생략하거나 바꾸기는 쉽지 않다

 

반면, 시간과 공간 등 제례를 진행하는 기반 조건은 변화가 쉬운 편이다.

경북의 각 종가들도 환경과 시대 변화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러는 경제적 여건,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제사를 아예 지내지 않거나 줄여가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명문 종가 중 명문 종가인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종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북지역 (135), 그 중에서도 안동

지역(47)을 중심으로 종가들의 제사 모시는 시간은 언제인지 알아보자.

 

조선 시대에는 제사를 4대조까지만 모시고 그 이후는 신주를 묻도록 나라에서 엄하게 규정했었지만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과 학문이 높은 인물에 대해 4대 봉사를 끝내고도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러한 불천위는 가문의 명예이고 자랑이다.

 

경북지역의 많은 불천위 중 자료가 확보, 파악된 일부 20여 위()의 불천위 제사를 요약 정리했다.

해마다 조상이 죽은 날에 지내는 일반 '기제사'도 기본 제례 방식은 불천위 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불천위 제사 실태를 파악하면 '기제사'와 관련한 흐름도 미루어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자료를 정리 하면서 모두들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조상 제례도 시대의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 느껴졌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갑골학 박사인 김경일 교수가 2001년에 쓴 자신의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다고 비판하고, 핏줄, 혈연, 학연 등 유교의 지

배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에 일침을 가하면서 유교의 세 가지 특징인 인문의식, 온고지신, 조상숭배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글이 문득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