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제사에 대하여 - 2

녹전 이이록 2022. 11. 1. 07:51

제사에 대하여 - 2

 

알아 둘 좋은 글이기에 긴 글을 여러 편으로 나누어서 복사하여 올립니다.

 

tsky님의 문의에 jus님의 답변입니다.

 

제사의 도리

 

공자 왈 "자기의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하는 것은 아첨이다.

子曰 : "非其鬼而祭之,諂也. ...”

 

계씨가 태산에 여(: 천자나 제후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리자, 공자가 염유에게 말하였다. "네가 막을 수 없었는가?" . "막을 수 없었습니다." . "! 태산의 신이 임방만도 못한 줄로 여긴단 말인가?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 "女弗能救與?" 對曰 : "不能." 子曰 : "鳴呼!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공자가 말하였다.

"체 제사는 강신주를 부은 뒤부터는 나는 보고 싶지 않다." 子曰 : "禘自旣灌而往者,吾不欲觀之矣."

 

혹자가 체 제사의 내용을 묻자, 공자는 "모른다. 그 내용을 아는 자는 천하에 대하여 마치 이것을 보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손바닥을 가리켰다.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知其說者之於天下也,其如示諸斯乎!"指其掌.)

 

공자에 따르면 도리상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귀신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즉 사회에 아무런 긍정적 의미가 없고 오히려 파괴적인 작용을 할 따름이다.

 

대부인 계씨가 제후만이 드릴 수 있는 태산에 제사를 올리자 공자는 탄식하였다.

공자가 보기에 그런 행위는 마치 오늘날 도지사나 군수가 국가 원수나 행할 수 있는 의전행사를 행하는 것처럼 참담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귀신도 예에 맞지 않는 제사는 흠향하지 않는다."는 말 역시 그런 참담한 짓은 조상도 역겨워할 내용이라는 말이다.

공자는 제사를 올릴 자격이 없는 제사는 드려서는 안 된다고 했을 뿐 아니라, 그런 제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여겼다.

 

즉 천자만이 드릴 수 있는 체()제사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조차 거부하였던 것이다.

 

경건과 제사

 

공자는 거친 밥에 나물국을 먹을 때도 반드시 제사를 드렸고(고수레를 하였으며),반드시 재계처럼 엄숙했다.( 雖疏食菜羹, , 齊如也.)

공자가 삼간 것은 재계, 전쟁, 질병이다.(子之所愼 齊 戰,)

자는 벗이 보내준 물건은 그것이 비록 수레나 말이라고 하더라도 제사 고기 말고는 절하지 않았다.(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공자에게 있어서 제사는 "삶에 대한 경건한 태도의 표명"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주희는 설명하기를 "옛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종류마다 조금씩 떼어내서 두간 사이에 두어 선대에 처음 음식을 만든 사람을 제사하였으니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재계는 엄숙하고 공경하는 모습이다. 공자는 박한 물건이라도 반드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제사는 반드시 공경을 다했으니 성인의 정성이다."

 

"()의 의미는 정돈한다는 것이다. 제사를 모시려면 정돈되지 못한 사려를 정돈하여 신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지성을 모으는지 여부와 신의 흠향 여부는 모두 여기서 결정된다. 전쟁은 많은 사람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것이고, 질병은 또 자신의 몸의 생사존망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왕손가가 공자에게 질문하였다.

"안방(귀신)에 잘 보이기보다는 부엌(귀신)에 잘 보여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王孫賈問曰 : "與其媚於奥,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공자가 말하였다.

"내게 잘못이 있었다면 하늘이 증오할 것이다! 하늘이 증오할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내게 덕을 부여해 주셨으니, 환퇴 따위가 감히 나를 어쩌겠는가?" (子曰 : "天生德於予,桓魋其如予何?")

가정에서 봉행해 온 제사는 다음과 같다.

 

국가에서는 원구· 방택과 사직의 제사가 가장 중요하고, 왕가에서는 종묘의 제사를 으뜸으로 삼았으며, 일반 사가(私家)에서는 가묘(家廟)가 있어 조상제사를 정성껏 받들었다.

 

이런 제례는 모두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주희의 가례를 기본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제사(祭祀) 정의 :

 

신령(神靈)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거나, 돌아간 이를 추모하는 의식.

 

1) 사당(祠堂)에 올리는 제의:

대종(大宗). 소종(小宗)은 집안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

사당에는 고조 이하 4대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는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기일(忌日)에는 제사를 드린다.

집안에 중대한 일이 생겼을 때는 반드시 고유(告由)를 하고, 색다른 음식이 생겼을 때 먼저 드리며, 계절의 신미(新味)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삭망참(朔望參)이라고도 한다.

 

2) 사시제(四時祭) :

사계절에 드리는 제사로 중월(2·5·8·11)에 사당에서 지낸다.

춘하추동의 계절마다(춘분, 하지, 추분, 동지(율곡 이이)혹은 매 중월인 음력 2, 5, 8, 11월 상순의 일이나 일에. 불가피할 때에는 계월인 1, 4, 7, 10월에 고조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제사의 하나이다.

예전에는(사례편람)가장 중요한 제사였으나 조선시대이후 기제가 중시되면서 점차 퇴색되어 갔다.

요즈음에는 지내지 않거나 1년에 한번만 행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청사제라고도 한다.

 

사시제는 사당이나 정침의 대청에서 행해졌다.

요즈음에는 시제, 시사, 시향, 세향, 묘제, 묘사, 세일사, 세사, 세제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옛날의 세일사를 말함)

 

- 세일사(歲一祀) :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하여 1년에 한 번 조상의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세일사는 문중에서 지내므로 문중 대표(종손, 요즘에는 연장자가 대신하기도 함)가 주인이 된다.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중 하루를 정해 제사를 올린다.

 

묘지에서 지내기 때문에 제상 위에 차일을 친다.

묘지가 없으면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나 편리한 장소에서 지방을 모시고 지낸다.

가문에 따라서는 초헌시에 삽시정저(揷匙正箸)를 하며 첨작, 합문, 계문 절차가 없다.

가문에 따라 먼저 혹은 나중에 산신제를 지낸다.

 

요즈음 말하는 시제 혹은 묘제가 세일사이다.

 

- 산신제(山神祭)

조상의 묘를 모신 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산신제를 지내는 날은1년에 한번 조상의 묘지에 제사를 지낼 때 지낸다.

산신제를 지내는 장소는 조상묘지의 동북쪽에 제산을 모으고 지낸다.

같은 장소에 여러분 조상의 묘지가 있더라도 산신제는 한곳에서 한번 만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