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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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시조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은 박혁거세 탄생설화에 나오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 : 及梁部급량부)의 촌장이다.
이알평은 신라의 좌명공신(左命功臣)으로 <경주이씨 대종보>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왕이 된 뒤 아찬(阿粲)에 올라 군사업무를 장악했으며 32년(신라 유리왕 9년)에 *양산촌 ⇒ 급량부 이씨로 성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신라 법흥왕 23년 *익호(謚號) ⇒ 시호(諡號)를 *문선공(文宣公) ⇒ 충렬공(忠烈公)으로 하였고, 무열왕 3년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의 후손에 대한 계대가 전해지지 않아 이알평의 *36세손 ⇒ 원대손(遠代孫)이며 신라 때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진골(眞骨) 출신인 이거명(李居明)을 1세조 ⇒ 1세로 하고 있다.
[가문의 번영]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와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 14개 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집안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세칭 ‘8별(八鼈)집’으로 불리는 익재공파와 ⇒ 익재공파의 화곡(華谷) 이경억(李慶億) 집안과 (매죽헌梅竹軒) 이완(李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 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 ⇒ 8별집의 ‘화곡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 후손에서 ⇒ 후손 매죽헌 집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 ~1367)이 고려 때의 경주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 ⇒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 일곱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근대 인물로는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과 재계의 거목이었던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이 있다.
[계 파]
경주이씨는 중시조 이거명의 17~21세손 ⇒ 14~20세손에서 (아니면 중시조 15~21세에서) 크게 14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크고 작은 ⇒ 중소 70여개 파로 분파된다.
-평리공파(評理公派) : 16세손 ⇒ 16세. 15세손 이인정(李仁珽)을 파조로 한다.
-이암공파(怡庵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관(李琯)을 파조로 한다.
-익재공파(益齋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제현(李齊賢)을 파조로 한다.
-호군공파(護軍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지정(李之正)을 파조로 한다.
-국당공파(菊堂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천(李蒨)을 파조로 한다.
-부정공파(副正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매(李邁)를 파조로 한다.
-상서공파(尙書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과(李薖)를 파조로 한다.
-사인공파(舍人公派) : 17세손 ⇒ 17세. 16세손 이수(李蓚) ⇒ 이조(李蓨)를 파조로 한다.
-판전공파(判典公派) : 15세손 ⇒ 15세. 14세손 이강(李康+羽)을 파조로 한다.
-월성군파(月城君派) : 21세손 ⇒ 21세. 20세손 이지수(李之秀)를 파조로 한다.
-직장공파(直長公派) : 19세손 ⇒ 19세. 18세손 이양오(李養吾)를 파조로 한다.
-석탄공파(石灘公派) : 19세손 ⇒ 19세. 18세손 이존오(李存吾)를 파조로 한다.
-진사공파(進士公派) : 19세손 ⇒ 19세. 18세손 이양중(李養中) ⇒ 이존중(李存中)를 파조로
한다.
-교감공파(校勘公派) : 19세손 ⇒ 19세. 18세손 이존사(李存斯)를 파조로 한다.
[항렬표]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 | - | - | - | -영(榮) | 규(圭)- | 종(鍾)- | 우(雨) | 상(相)- | -형(炯) -희(熙)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재(在)- | -건(鍵) -호(鎬) |
준(濬)- 제(濟)- |
-동(東) | 심(心)- 병(丙)- |
-세(世) -교(敎) |
진(鎭)- | -구(求) | 근(根)- | -섭(燮)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55세 | 56세 | 57세 | 58세 | 59세 | 60세 |
-준(埈) | 선(善)- | -태(泰) | 모(模)- | -현(炫) | 균(均)- | -용(鎔) | 순(淳)- | -병(秉) | 걸(杰)- |
[집성촌]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해안을 낀 이곳 야산 아래 경주이씨가 자리를 잡은 것은 4백여 년 전이다.
익재공 이제현(益齋公 李齊賢)의 9대손인 (중시조 26세) 호암공 이반기(湖巖公 李磻琦)가 정미사화(丁未史禍)를 피해 경기도 고양에서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
현재 약 100여 가구가 있다.
[가문의 문화유산]
익재영정 : 국보 제110 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중국에 머물 때 원나라의 화가 진감여(陳鑑如)가 그린 이 영정은 오늘날 고려시대의 희소한 유품으로 남아 있는데 원나라 때의 화풍을 전하는 중요자료이다.
[족보발간]
-갑자보 : 1684년(조선 숙종 10년)
-무진보 : 1748년(조선 영조 24년)
-갑술보 : 1814년(조선 순조 14년)
-계유보 : 1873년(조선 고종 10년)
-경인보 : 1890년(조선 고종 27년)
-원주보 : 1929년
-경주보 : 1930년
-대구신미보 : 1931년
-대전보 : 1933년
-경보보 : 1918년(무오보)
-대전보전보 : 1978년(무오보)
-중앙표준보 : 1988년 ⇒ 1987년
[본관지] 경상북도 경주
[연락처] 종친회 : 02) 742-6250 ~ 6251
[인구]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1,217,279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