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칭의 뜻 - 1
– 임하필기(이유원(李裕元 : 1814~1888의 문집' 에서 -
◈ 고(考)는 《예기》 곡례(曲禮)에, “생전에는 부(父)라고 부르고, 사후에는 고(考)라고 부른다.” 하였는데, 《설문(說文)》에는, “고는 노(老)의 뜻이다.” 하고, 《석명(釋名)》에는, “고는 성(成)의 뜻이니, 성덕(成德)이 있음을 말한다.” 하였다.
◈ 비(妣)는 《이아(爾雅)》의 주(註)에, “비(媲)의 뜻이니, 고의 배필이다.” 하였다.
◈ 옹(翁)은 《광아(廣雅)》에, “옹은 아버지이다.” 하였다.
그리고 《사기》에는, “나의 아버지[吾翁]는 바로 너의 아버지[若翁]이다.” 하였다.
공(公)은 아버지이다.
《전국책(戰國策)》에 의하면, “진진(陳軫)이 장차 위(魏)나라에 가려고 하니, 그 아들 진응(陳應)이 아버지 [公]의 행차를 만류하였다.” 하였다.
또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공이라고 한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 의하면, “그 자식을 안고 젖 먹이며 시아버지[公]와 더불어 무례하게 나란히 앉았다.” 하였다.
◈ 부군(府君)은 《문중자(文中子)》에 ‘동천부군지술(銅川府君之述)’이란 말이 있다.
◈ 대가(大哥)는 당나라 현종(玄宗)이 영왕(寧王)에게 준 서신에서 대가라고 일컬었다.
◈ 형형(兄兄)은 북제(北齊)의 남양왕(南陽王) 고작(高綽)이 아버지를 형형이라고 부르고,
◈ 적모(嫡母)를 가가(家家)라고 부르고, 유모(乳母)를 자자(姊姊)라고 부르고, 아내를 매매(妹妹)라고 불렀다.
◈ 야(爺)는 고악부(古樂府)의 목란(木蘭) 시에, “책(冊)마다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 있다[卷卷有爺名]”는 말이 있다.
오(吳)나라 사람들은 아버지를 자(㸙)라 부르고, 또 파(爸)라 불렀다.
형(荊) 땅의 방언에는 아버지를 다(爹)라고 하였다.
《정자통(正字通)》에는, “의붓아비[假父]를 동(㸗)이라 한다.” 하였다.
◈ 모(母)는 《석명(釋名)》에는 덮어 주다[冒]의 뜻이라 하였고, 《증운(增韻)》에는 사모하다[慕]의 뜻이라 하였다.
그리고 《창힐편(蒼頡篇)》에는, “그 가운데에 있는 두 점은 사람의 젖을 상징한 것이다.” 하였다.
◈ 태부인(太夫人)은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의 주(註)에 이르기를, “열후(列侯)의 처를 부인(夫人)이라 칭한다.
열후가 죽고 아들이 다시 열후가 되면 이에 태부인이라 일컬을 수 있다.” 하였다.
모(姥)는 공작행(孔雀行)에서 읊기를, “열심히 공모를 봉양하네[勤心養公姥]”라고 하였다.
공(公)은 아버지를 말하고, 모(姥)는 어머니를 말한다.
강남(江南)에서는 어머니를 아언(阿嫣)이라 부른다.
그리고 《자전(字典)》에는, “세속에서 어머니를 낭(娘)이라 칭한다.” 하였고, 《운회(韻會)》에는, “낭(娘)은 양(孃)과 같다.” 하였다.
송나라 인종(仁宗)은 유씨(劉氏)를 대양양(大孃孃)이라 부르고, 양씨(楊氏)를 양양(孃孃)이라 불렀다.
촉(蜀) 땅 사람들은 어머니를 저(姐)라 부르고, 강인(羌人)은 저(媎)라 부르는데, 저(媎)는 저(姐)와 같다.
그리고 강동(江東) 사람들은 제(姼)라 부르고, 초(楚)나라 사람들은 황(媓)이라 부르고, 또 내(嬭)라 부르며, 제(齊)나라 사람들은 미(㜷)라 부르고, 강회(江淮) 사람들은 제(媞)라 부르고, 회남(淮南) 사람들은 염(媣)이라 부르고, 오(吳)나라 사람들은 미(㜆)라 부른다.
소자(所子)는 《한서(漢書)》의 주에, “형제의 아들을 길러서 자기의 아들로 삼는 것을 소자라 한다.” 하였다.
◈ 여(女)는 《박아(博雅)》에는, “여는 따르다[如]의 뜻이다.” 하였고, 《백호통(白虎通)》에는, “사람을 따른다는 뜻이니,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고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 때문에 여(女)라 한다.” 하였으며, 《석명(釋名)》에는, “서주(徐州)와 청주(靑州)에서는 딸을 오(娪)라 하는데, 오는 거스르다[忤]의 뜻이다.
딸이 갓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고 언짢아한다.” 하였다.
◈ 손(孫)은 자(子) 자와 계(系) 자로 이루어졌으니, 조상을 계승함을 말한다.
《이아》에는, “손은 공순하다[順]의 뜻이니, 조상에게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현손(玄孫)은 《이아》의 주에, “현(玄)은 친속(親屬) 관계가 희미함을 말한다.” 하였다.
현손의 아들을 내손(來孫)이라 한다.
《석명》에, “내손은 무복(無服)의 관계에 있으므로 그 뜻이 소원(疏遠)하니 내래(乃來)라고 부른다. 또는 이손(耳孫)이라고도 한다.” 하였고, 응소(應昭)의 주에, “이손은 증조와 고조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서 귀로만 들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내손의 아들을 곤손(昆孫)이라 하니, 곤(昆)은 후(後)의 뜻이다.
◈ 곤손의 아들을 잉손(仍孫)이라 하니, 잉(仍)은 거듭하다[重]의 뜻이다.
《석명》에, “예(禮)를 가지고 그대로 유지할 뿐, 은의(恩義)는 실로 없는 것이다.” 하였다.
잉손의 아들을 운손(雲孫)이라 한다.
《석명》에, “거리가 이미 멀어 떠다니는 구름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형(兄)은 구(口) 자와 인(儿) 자로 이루어졌는데, 인(儿)은 인(人)이다.
구(口)와 인(人)으로 글자가 이루어진 것은 아우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백호통》에, “형(兄)은 견주다[況]의 뜻이니, 아버지에 견주는 것이다.
강남과 강북에서는 형을 황이라 부른다.” 하였다.
◈ 제(弟)는 순종하다[順]의 뜻이니, 형에게 순종함을 말한다.
◈ 자(姊)는 자문하다[咨]의 뜻이다.
먼저 태어났으므로 자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형(女兄)을 저(姐)라 하고, 여제(女弟)를 매(妹)라 한다.
◈ 중(仲)은 가운데[中]의 뜻이니, 지위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 숙(叔)은 젊다[少]의 뜻이니, 어린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
◈ 계(季)는 계(癸)의 뜻이니, 갑을(甲乙)의 차서에 계(癸)가 끝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