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 문장에 ‘세조’와 ‘대조’로 쓴 용례

녹전 이이록 2021. 10. 7. 09:02

한 문장에 세조대조로 쓴 용례

 

한 문장 안에 세조와 대조로 쓴 송암 이로 선생에 대한 용례가 있기에 설명을 곁들여 올렸더니 모 선생께서 잘못된 해석이라며 지적하여 글을 주셨기에 이에 대한 본인의 소견을 올린 글입니다.

 

아래와 같이 세조대조를 병용하여 쓴 용례를 올렸습니다.

 

松巖 李魯行狀(송암 이로 행장)

 

松巖先生文集卷之六 (송암선생 문집 권지 6 (許穆撰허목 찬)

 

[公諱魯字汝唯號松巖系出鐵城其鼻祖璜五世至嚴冲麟冲俱官侍中始大顯公卽嚴冲之後也

其後簪組相繼七世祖諱伯仕麗末至右軍摠制知國事日非棄官南來卜居于宜寧世干村六代祖諱乙賢

太祖二年除少監托病不就移卜于同縣孚谷里

曾祖諱文昌副護軍祖諱翰劑用監僉正考諱孝範通禮院引儀]

 

[七世祖 () 六代祖 을현(乙賢)]

 

고성 이씨 백() ~ ()의 계대

 

七世祖→ ②六代祖→ ③山命→ ④高祖□□→ ⑤曾祖文昌→ ⑥祖翰→ ⑦孝範 → ⑧

--------을현------산명---④□□--------문창--------조한---효범----

7대조-------6대조------5대조-----고조----------증조-------------------부 --------()

7세조-------6세조------5세조-----4세조---------3세조---------2세조-----1세조-----()

[七世祖諱伯(7세조 휘 백)六代祖諱乙賢(6대조 휘 을현)]

----------------------

 

한 계대에서 아버지는 七世祖로 아들은 六代祖로 나타낸 사례로 세조=대조로 같은 뜻으로 읽거나 쓰이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고성 이씨(철성 이씨) 송암(松巖) 이로(李魯)와 그 윗대인 七世祖 휘 백(諱伯) 까지의 계대를 위 문장에 기록된 대로 펼쳐보니 6대조 휘 을현(乙賢)六代祖로 말하고 7세조 휘 백()七世祖로 기록하고 있다.

 

6代祖 다음에 7代祖로 읽지 않고 7世祖로 하고 있음은 옛 사람이 잘못 써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세조와 대조를 같은 뜻으로 혼용하여 써 왔기 때문이다.

 

먼저 世祖라는 어휘는 아랫대의 후손이 윗대의 조상을 헤아려 읽을 때 사용되는 용어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世祖읽는 방법은 누구의 몇 세조이냐?’는 물음에 따라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의는 기준이고 기준은 항상 아랫대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

 

읽는 방법은 맨 아랫대의 후손인 송암공(휘 로)이 기준이 된다.

 

윗대의 조상님은 송암공의 몇 세조이냐?” 를 묻기 때문에 송암공이 기준이 되므로 기준은 헤아리지 않는다

 

아버지인 휘 효범이 1세조로 읽게 된다.

 

즉 아버지인 휘 효범은 송암공의 1세조라고 읽는 것이 몇 世祖로 읽는 바른 방법이다.

 

할아버지 휘 한이 2세조.... 등으로 헤아려 올라가면 휘 을현은 6대조(=6세조)가 되고 휘 백은 7세조(=7대조)가 된다.

6대조는 6세조와 같이 읽고 7세조는 7대조와 같이 읽는다.

 

1- 2----3----4- 5--6-7---8

-------乙賢-------山命-------□□----文昌------------孝範-----

-------을현-------산명-------□□----문창------------효범-----

七世祖--六代祖----------------高祖----曾祖--------------------

7세조----6대조-----5대조----고조-----증조--------------------

 

위와 같이 올렸더니 후손인 이모 선생께서 아래와 같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글을 올려 주었습니다.

 

[세수와 대수를 혼용한 사례를 적시하셨는데 그 중 허목 미수 선생이 찬한 송암공 이로의 철성이씨 건은 해석을 잘못 하였기에 설명을 드립니다.

 

5세에서 7대를 고위 벼슬을 이어와서 12세 할아버지 대를 설명한 것입니다.

 

즉 송암으로 부터 7대조가 아닌 것입니다.

 

저는 송암 선생의 12대손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위 글에 즉시 확인해 보고 답변을 올렸습니다.

 

아래의 글을 이해하시면 귀하께서 보낸 윗글이 잘못된 지적임을 알 것입니다

 

송암(이로) 행장(松巖-李魯行狀) - 松巖先生文集卷之六 (許穆撰)

 

公諱魯字汝唯號松巖
- 공의 휘는 노()이고 자는 여유(汝唯)이고 호는 송암(松巖)이다.

 

系出鐵城其鼻祖璜五世至嚴冲麟冲俱官侍中始大顯公卽嚴冲之後也
- 본관은 철성(鐵城- 고성)이고 비조는 황()이며 5세 엄충(嚴冲)과 인충(麟冲)은 관직이 시중으로 크게 집안을 일으켰으며 공()은 엄충의 후손이다.

 

* 잠조(簪組)는 벼슬아치들이 머리에 쓰는 관()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는 비녀와 끈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관리생활을 뜻한다.

 

其後簪組相繼
- 그 후 후손들이 관직을 계속하였다.

 

七世祖諱伯仕麗末至右軍摠制知國事日非棄官南來卜居于宜寧世干村
- 7세조 휘 백()은 고려 말에 벼슬하여 우군총제(右軍摠制)를 하였다.
나라 일이 잘못됨을 알고 관직을 버리고 남으로 내려와 의령 세우촌에 우거 하였다.

 

六代祖諱乙賢太祖二年除少監托病不就移卜于同縣孚谷里
- 6대조의 휘는 을현(乙賢)으로 태조2년 소감(少監)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병을 칭탁하고 취임하지 않았으며  동현(의령) 부곡리로 이거하였다.

 

曾祖諱文昌副護軍祖諱翰劑用監僉正考諱孝範通禮院引儀
- 증조는 휘 문창(文昌)으로 부호군이고 조부는 휘 한()으로 제용감 첨정이며 아버지의 휘는 효범(孝範)으로 관직은 통례원 인의(通禮院引儀)이다.

 

* 역문은 위와 같습니다.
위 문장을 가지고 OO 이씨 노()의 계대(송암공 7세조 백까지)를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 ②乙賢 → ③山命 → ④□□→ ⑤文昌→ ⑥→ ⑦孝範→ ⑧

-------을현------산명------□□-----문창---------효범-----

七世祖----六代祖----5대조----4대조----3대조---2대조---1대조----()

 

[七世祖 六代祖]
한 계대에서 아버지는 世祖, 아들은 代祖로 나타낸 사례로 이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런 하자가 없는 바른 글입니다.

 

[系出鐵城其鼻祖璜五世至嚴冲麟冲俱官侍中始大顯公卽嚴冲之後也]
- 본관은 철성(鐵城- 고성)이고 비조는 황()이며 5세 엄충(嚴冲)과 인충(麟冲)은 관직이 시중으로 크게 집안을 일으켰으며 공()은 엄충의 후손이다. -

 

윗글에서 보다시피 비조는 황()이며 5세 엄충(嚴冲)과 인충(麟冲) 대에 와서 크게 집안을 일으켰다는 뜻으로 5세의 엄충(嚴冲)과 인충(麟冲)을 말한 것이지 5세부터 7대를 벼슬한 것으로 나타낸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