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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 와 ‘중흥조’

녹전 이이록 2021. 7. 12. 09:13

중시조중흥조

 

모 성씨 대종회 자유게시판에 게재된 자료입니다.

 

중시조에 보충설명이 되겠습니다. (성균관 논객의 의견을 인용함)

 

보학상 중시조의 개념 정립은 없고 국어사전에 중시조는 쇠퇴한 집안을 중흥시킨 조상’. 중흥조라고 되었는데 중시조와 중흥조는 뜻이 다르지 않는가.

 

중흥조는 중시조뿐만 아니라 집안을 빛나게 한 조상은 누구나 중흥조라 일컬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성씨는 윗대 시조가 있고 아래로 와서 5형제를 각기 중시조로 하는가 하면 어떤 성씨는 5세마다(족보의 1페이지) 끊어서 파시조로 하는 집안도 있는 것을 보면 집안에서 논의하여 그렇게 하는데 정해진 규범도 없는 바에야 이상스럽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하 경주이씨 사례 생략)

 

여태껏 시조라 해왔는데 또 그 윗대를 알게 되었을 때는 都始祖(도시조)라 부르고 또 그 윗대를 우리나라이던 중국에서 찾았을 경우는 原始祖(원시조)라 부르는 예도 있었습니다.

 

중시조는 시조 다음의 계대를 모르다가 계대를 알게 된 첫 조상을 중시조라 함이 의미상 맞는 것 같고 몇 분이든 집안을 일으킨 분은 중흥조라 호칭하며 그 외는 집안에서 종중에서 공적과 덕업이 훌륭한 조상님 중 훌륭한 분을 파시조(파조)로 호칭하는 것도 무난할 듯합니다.

 

비조(鼻祖)는 시조, 원조의 뜻으로 아는데 원시조와 같은 호칭으로 보아도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다소나마 참고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MD)

 

중시조 개념에 대한 원장님의 애쓰신 노력을 바탕으로 용어들의 개념을 사전적, 용례를 여기저기서 모아가며 나름 정리해 봤습니다.

 

온전한 것은 아니며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는 지적해 주십시오.

 

(1) 시조[始祖], (2) 비조[鼻祖], (3) 원조[元祖]

 

(1) 최치원은 우리 한문학의 시조이다. (학문, 기술)
(1) 고구려의 시조 동명 성왕 (나라를 처음 세운 사람)
(1) 양천 허씨의 시조는 허선문이다. (성씨, 본관을 처음 쓴 사람)

 

(2) 주자학의 비조는 주희(朱熹). (학문)
(2) 바윗덩이 위를 주택지로 개척한 비조가 누구인지는 이 근방 사람도 모른다. (개척)

 

(3) 아담은 인류의 원조다. (발원, 첫조상 ; 포괄적 의미)
(3) 족발은 ○○족발집이 원조다. (창시자)

 

(4) 중시조[中始祖],

 

(5) 중흥조[中興祖],

 

(6) 파조[派祖]
파조(派祖) 사전(국어, 한자)에는 표제어로 나오지 않으나 설명문 등에는 나옴.

 

(4) 종중의 공론에 따라 문중 회의에서 ○○ 어른을 중시조로 추존(追尊)하였다. (문중 합의)
(4) 나는 중시조 ○○어른의 12세손이며 시조로부터는 34세손이다.(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
(4) 그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완창하여 잊혀져 가는 판소리계의 중시조가 되었다. (학문, 기술)

 

(5) ○○ 스님은 법당을 다시 세워 그 절을 부흥시켜서 조사당에 중흥조로 모셔졌다. (종교적)

 

(6) ○○파의 파조이자 중시조 어른은 ○○이시다. (파조=중시조 개념)

 

(7) 도시조[都始祖],

 

(8) 원시조[原始祖]
도시조(都始祖), 원시조(原始祖) 사전에는 나오지 않음.

 

(7) 우리의 시조는 ○○ 어른인줄 알았는데 그 윗대가 있음이 밝혀져 □□ 어른을 도시조로 모시고 있다. (시조의 윗대가 새로 밝혀진 경우)

 

(8)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 (원조와 비슷하나 민족, 동족개념)

 

(9) 분관조[分貫祖]
분관조(分貫祖) 사전에는 나오지 않음.
동족으로 성과 시조가 같으나 본관을 달리하는 성씨가 있다.
이런 경우는 후손 가운데 어느 한파가 다른 지방에 분거하여 오래 살게 되면 그 자손들이 독립하여 그 지방을 본관으로 삼을 때 생긴다.

 

또 후손 중 봉군(封君)이나 사관(賜貫)에 의하여 득관(得貫)하여 분관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새로이 관향을 얻은 선조를 분관조라고 한다.

 

(용례)
전주이씨 시조는 이한(李翰)이지만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중시조로 하고, 이성계의 후손들 양녕대군, 효령대군 등을 파조로 하여 양녕대군파, 효령대군파 등으로 분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