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시조 38세 ‘우’항렬인 나는 시조 73세 ?
[오랫동안 시조(始祖) 표암공(瓢巖公) 휘 알평(諱謁平)으로부터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諱居明)에 이르는 약 900년간의 세계(世系)는 실전(失傳)되어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 ‘28대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流布)되었고 1904년 경산군수(慶山郡守) 이계필(李啓弼) 선생이 간행(刊行)한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되고 있다.
믿을만한 고증(考證)은 아직 없으나 참고로 양 실전세계(兩失傳世系)를 그대로 싣고 후일 고증이 나타나면 보완계대(補完系代)를 하고자 한다.]
- 1987년(정묘년)에 간행한 ‘경주이씨 대종보’에 실려 있는 발간사 P3 8줄-11줄에 기록되어 있는 3월 31일자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성우(成雨) 회장의 인사말입니다.
▲ [시조(始祖) 표암공(瓢巖公) 휘 알평(諱謁平)으로부터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諱居明)에 이르는 세계(世系)는 실전(失傳)되어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아래와 같이 나타내어야 합니다.
시조(始祖) 표암공(瓢巖公) 휘 알평(諱謁平)의 2세인 子(자. 아들)로부터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諱居明)의 앞대인 父(부. 아버지)에 이르는 세계(世系) 900여년의 세계는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었다.
○ 시조 표암공은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함으로써 신라 건국 원훈이고 그 이전에는 6촌중의 하나인 양산촌장으로 부족민을 다스린 것으로 보인다.
표암공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임진년)에 部(부)를 급량부로 바꾸고 이씨 성(李氏姓)을 사성(賜姓)받았다.
이로부터 신라 말기인 소판공(휘 거명. 중시조) 이전까지 약 900년간의 세계가 실전되어 알 수가 없다.
소판공(휘 거명. 중시조)은 소판공의 손자인 중조 3세 태수공(휘 금서)께서 중원태수 호부랑중으로 고려에 처음 벼슬하였다는 기록과 고려에 투항한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의 3녀 신란궁 부인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 거의 신라 말기에 활동하신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19세기에 와서 ‘28대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流布)되었고 20세기 초 1904년 경산군수 (慶山郡守) 이계필(李啓弼)이 간행(刊行)한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되고 있다.]
- 그러던 것이 1868년 이전에 ‘28대로 된 실전세계’가 발견되어 유포되었는데 귤산공(휘 유원)께서 백사파보 건곤 중 곤권 말에 기록하기를 '서경(평양)에서 윗대(上系) 28대를 베껴서 왔는데 관제가 삼한과 달라 진짜 계보가 아니다. 이는 근본을 속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와 무엇이 다르리오.' 라고 하였다.
아예 없고 모르는 것을 가짜로 새롭게 만들어 알려보았자 이는 근본을 속이는 짓이고 이런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했을 때 이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없는 계대를 가짜로 새롭게 만들어 알려보았자 이는 근본을 속이는 것이고 없는 것을 만들어 보았자 집안을 높이기는커녕 도리어 조상님들과 후손들에게 욕이 되고 부끄럼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 뒤 1904년경에 경산군수(慶山郡守) 이계필(李啓弼) 선생이 간행(刊行)한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유포되고 있다.
이때에 발견된 ‘35대로 된 실전세계’와 그 뒤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35대 상계 계대를 처음 발굴하여 게재한다는 둥 하며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널리 알려짐으로 인하여 지금도 많은 종친들이 이 계대를 활용하여 '시조 몇 세' 로 읽고 있는 것이다.
이 ‘35대로 된 실전 세계’가 ‘분적종 합천이씨 가보에서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익재공파보에 있는 계대를 가져 왔다.’는 등 증명할 수 없고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계대를 가지고 혼란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35대로 된 실전 세계’는 합천이씨 세보에 나오는 진천 거주 이학영(실제 인물이나 족보 행적에는 주문사의 기록이 없음.). 전주인 이인명은 고증이 안 되는 인물이다.
또 35대로 된 실전 계보가 처음 게재된 1932년도 발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 이전에 발간된 5회의 족보 어디에도 ‘35대로 된 실전 세계’가 올라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주문사(奏聞使)는 있으나 주문사(奏文使)는 실록에 기록이 없고 35세 실전세계 인물의 관직이 신라 관직이 아닌 대부분 고려 조선시대 관직. 중국 관직이고 이 관직을 2-3개로 나누어 이를 다시 다른 관직과 짜 맞추어 올린 관직들로 믿을 수가 없는 관직이다.
▲ [믿을만한 고증(考證)은 아직 없으나 참고로 양 실전세계(兩失傳世系)를 그대로 싣고 후일 고증이 나타나면 보완계대(補完系代)하고자 한다.]
- 이 ‘28대’와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잘못된 계대이고 인물 등은 고증이 안 된다.
이 실전 세계를 대종보에는 ‘참고용’으로 싣고 있다.
고증이 나타나면 보완하여 계대를 잇고자 한다는 말씀이다.
35대로 된 계보를 사용하여 중시조 38세 '우'항렬이면 ‘시조 73세'라고 말한다.
"나는 시조 73세(=73대 혹은 72대)입니다."
"나는 시조의 72대손(=72세손)입니다." .
"시조는 나의 72대조(=72세조)입니다.“
’시조 세수와 시조 대수‘, ’시조의 몇 세손과 몇 대손‘, ’시조는 나의 몇 대조(=세조)‘ 등 시조를 기준으로 하여 헤아려 읽는 것은 잘못된 헤아림이다.
시조 2세 아래 중시조 앞 대까지 약 900년의 계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중시조세수'로만 헤아려 읽어야 한다.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계대가 잘못된 것인데 시조 73세(=대). 시조의 72대손(=세손). 나의 72대조(=72세조)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아래와 같이 읽고 말하는 것은 바릅니다.
중시조 38세 ’우‘항렬, 중시조 38대 ’우‘항렬. 중시조의 37세손 ’우‘항렬. 중시조의 37대손 ’우‘항렬. 중시조는 나의 37세조. 중시조는 나의 37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