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조 25세 재사당공의 3남 강(江) 선조에 대한 계보 이해
경주이씨 관련 다음 카페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 있습니다.
앞 회에 올린 재상당공의 차자인 河(하)는 숙부인 장육당공에게 출계하고 4남인 발(氵+㪍)은 숙부인 생원공의 계자로 세계를 이었습니다.
이 내용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 이에 대한 의문에 설명된 글입니다.
【23세 창평공(휘 공린) - 24세 ③ 재사당공(휘 원) - 25세 ② 강(江)으로 이어진 계대입니다.
*①. ②. ③...는 장자. 차자. 3자를 의미한다.
아래의 글은 ‘강(江) 선조에 대한 계보 이해’에 올린 글입니다.
‘미수 허목과 청음 김상헌의 묘갈명’에는 재사당의 네 아드님 중 막내 아드님이신 발(氵+㪍)이 생원공(휘 타)께로 입적하시고 둘째, 셋째이신 하(河), 강(江)께서는 후사가 없는 걸로 기록되는데 하(河)선조께서는 장육당공(휘 별)께로 입적되셨다하니 계보도와 자료가 어느 정도 맞는다 할 수 있지만 강(江) 선조에 대한 계보는 이해를 못하겠군요.】
댓글 답변)
△ M
재사당 선생 사후 약 130년 후 청음 김상헌 선생이 찬한 묘갈명에
[先生有子四人。洙,江,河,渤。洙。郡守。生四男三女。 氵+㪍(발)。贈左通禮。生二男四女。
(선생 유자 4인. 수. 강. 하. 발. 수. 군수. 생 4남3여. 발. 증좌통례. 생 2남4여) ]
- 선생은 4인의 아들을 두었는데 洙(수),江(강),河(하), 氵+㪍(발)로 수(洙)는 군수(郡守)로 4남 3녀를 낳았고 발(渤)은 관직이 증좌통례(贈左通禮)로 2남 4녀를 낳았습니다.
江,河。無后。內外孫。多不可書
(강,하。무후。내외손。다불가서)]
- 강. 하 무후로 자식이 없고 내외손은 적지 못할 정도로 많다.
보첩에는 장자 洙(수)가 재사당공의 계보를 이어 후손이 파주 가야리에 살고 있고 차자 江의 후손이 경남 창녕군 파산면 냉천리에 세거한다고 기록되었으며 3자 河의 후손이 장륙당공의 계보를 이어 충주 동량면에 세거한다고 기록되었으며 4자 渤(발)은 생원공 후손으로 계보를 이어 제천군 송학면 송한리에 거주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문제는 무후로 기록된 江,河。無后 - 이 단어인데 130년 후 손자가 조부의 행적을 가지고 청음 선생에게 부탁한 묘갈명이 오류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직계의 양자가 아닌 일가중의 입양으로 보여 집니다만....
지적과 소견) 이이록
의문을 제기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위 글 ‘청음 김상헌 선생이 찬한 묘갈명’과 ‘경주이씨 대종보 재사당공의 세계 표’를 비교해 보면 ‘청음 김상헌 선생이 찬한 묘갈명’에서 ‘강(江)과 하(河)의 형제 순서’가 바뀌었고 ‘江(강), 河(하)。無后(무후)’의 기록이 잘못된 것입니다.
‘江(강), 河(하)。無后(무후)’에서 江(강)은 삭제하고 ‘河(하)。無后(무후)’로만 기록되어야만 바른 내용입니다.
[차자 江의 후손이 경남 창녕군 파산면 냉천리에 세거한다고 기록되었으며 3자 河의 후손이 장륙당공의 계보를 이어 충주 동량면에 세거한다고 기록되었으며 4자 氵+㪍(발)은 생원공 후손으로 계보를 이어 제천군 송학면 송한리에 거주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문제는 무후로 기록된 江,河。無后 - 이 단어인데 130년 후 손자가 조부의 행적을 가지고 청음 선생에게 부탁한 묘갈명이 오류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라고 하였으나 1987년도 간행 정묘보이며 표준보로 경주이씨 뿌리의 근간 자료로 하는 경주이씨 대종보에는 그 세계도(世系圖)가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위 설명된 글과는 내용이 상이 합니다.
‘재사당공(휘 원)의 장자 洙(수)가 재사당공의 계보를 이어 받고 *3자 河의 후손이 장륙당공의 계보를 이어 ⇒ 차자 河의 후손이 장륙당공의 계보를 이어 4자 氵+㪍(발)은 생원공 후손으로 계보를 이었습니다.’
- 차자와 3자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 문제는 無后(무후)로 기록된 [江,河。無后] - 이 단어인데 130년 후 후손이 조부의 행적을 가지고 청음 선생에게 부탁한 묘갈명이 오류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 그렇지요. 후손이 할아버지의 잘못된 행적을 가지고 묘갈명을 부탁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경주이씨 대종보 세계도(世系圖)의 재사당공(휘 원) 계대를 비교해 보면 장자 수(洙). 차자 하(河). 3자 강(江). 4자 발(渤) 등 4명의 아들 중 장자 수(洙)와 3자 강(江)은 재사당공 계대를 그대로 잇고, 차자 하(河)는 숙부인 장육당공(휘 鼈별)의 계자(系子. 양자)로 4자 발(渤)은 숙부인 생원공(휘 鼉타)의 계자로 입적된 것입니다.
△ Y
재사당의 2자 하(河)께서 장육당공께로 양자를 갔으나 하(河)께서도 또 아들을 두지 못하자 독취정공 수(洙)의 2자 제윤(悌胤) 할아버지가 하(河)의 계자로 양자로 가셨고, 재사당의 3자 강(江)할아버지는 장남 철숭(哲崇)과 차남 철곤(哲坤)을 두셨는데, 강(江) 선조에 대한 계보는 이 해를 못하겠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인지요?
△ 이이록
M 종친의 말씀과 Y 종친의 말씀이 다릅니다.
족보의 기록대로 창평공의 3자인 재사당공(휘 원)과 4자 생원공(휘 타). 5자 장육당공(휘 별)과 아래에 아들 계대의 계자 입적을 나타내면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 재사당공의 차자 河(하)와 4자 渤(발)의 출계(出系) 표
③ 재사당 黿(원) ━ ━ ━ ━ ④ 생원공 鼉(타) ━ ⑤ 장육당공 鼈(별)
┃-----------------------------↑--------------------↑
①洙(수)━ ②河(하)━ ③江(강)━ ④ 氵+㪍(발)---↑
------------┗---------------------------------------┛
*창평공(휘 공린)의 4자 생원공(휘 타)과 5자 장육당공(휘 별)이 無后(무후- 자식이 없음))이므로 재사당공(휘 원)의 차자 하(河)는 장육당공 양자로 입적되고 4자인 氵+㪍(발)은 생원공(휘 타)에게 입적되었다.
관계되는 선조님이 창평공(휘 공린)의 3자 재사당공(휘 원)의 차자 하(河). 4자 발(渤)의 출계(계자- 양자로 감)문제인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재사당공의 3자인 강(江)은 출계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출계한 것으로 말을 하니 헷갈리는 것입니다.
① 洙(수) ━ ② 河(하) 출계 ━ ③ 江(강) ━ ④ 氵+㪍(발) 출계
次子인 하(河)와 四子인 氵+㪍(발)이 출계하였는데 이를 3자 – 차자를 뒤바꾸어 기술하고 出系(출계)한 것 같이 잘못 말하고 있습니다.
본디 창평공(휘 공린)의 8형제 중 생원공(휘 타)과 장육당공(휘 별)은 무후(无后)로 자손이 없습니다.
그런데 재사당공(휘 원)께서는 4남을 두셨으니 사화로 참변을 당하자 차자 하(河)는 장육당공(휘 별)의 계자(系子-양자)로 출계하고 4자 발(渤)은 생원공(휘 타)의 계자(양자)로 출계한 것입니다.
M 종친님은 차자 강(江). 3자 하(河)로 표기했는데 차자와 3자의 형제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Y 종친의 말씀과 같이 재사당공의 차자 하(河)께서 장육당공의 양자를 갔으나 하(河)께서도 또 아들을 두지 못하여 재사당공의 장자 독취정공(군수공. 휘 수洙)의 차자 제윤(悌胤)께서 하(河)의 계자로 가셨는데 족보기록에는 장자 제윤(悌胤). 차자 창생(昌生). 3자 억윤(億胤) 등 3형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자를 간 하(河)께서도 자식이 없었다면 제윤 조상님을 양자로 들이는 것이 맞는데 ‘제윤’ 조상님께서 계자(系子. 양자)로 갔는데 차자 창생(昌生). 3자 억윤(億胤)이 족보 기록에 올라 있으니 어떻게 된 사유인지 궁금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