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경주이씨의 유래와 역사’에서 잘못된 내용 수정 - 2
신라 6성에 대한 내용을 ‘경주이씨’씨족을 대표하여 경주이씨 유래와 역사를 정리해서 게재한다고 하며 모 종친님께서 장문의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글을 정리하여 올리시느라 노고가 크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3년 전 모 카페에 올라있는 이 글에 잘못된 내용이 있어 이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더니 얼마 후 원문과 필자가 지적하여 올린 글마저 삭제해 버렸더군요.
그 후 이 글이 벌써 몇몇 카페에 복사되어 올라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글이 복사되어 여러 카페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대로 믿고 알게 될 것으로 보여 잘못된 부분을 바르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여 다시 올려 드리니 참고 하기 바랍니다.
애를 써서 쓴 글이지만 후손들이 읽는 글이기에 잘못된 곳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이를 지적하여 바르게 알려 주기 위하여 3년 전 카페에 올렸던 원문의 글 그대로 올립니다.
본문은 앞의 글을 참고하고 잘못된 내용은 [.............]로 나타내고 아래에 ▲표 다음에 잘못 표기된 내용에 대하여 설명. 소견)을 드립니다.
6. [오랜 세월동안 관직에의 등용이 막혔던 신라조의 후예 중 경주이씨의 경우 필자의 35대조에서부터 겨우 향직(鄕職)에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위의 글은 어디에 있는 글인지요?
필자의 35대조라면 중조 3세 중원 태수공(휘 금서)을 말합니다.
소판공이 신라 말에 소판(3두품) 벼슬을 한 분이십니다.
1세손인 그 아들 중조 2세 병부령공(휘 금현金現)이 신라 관직으로 병부령(兵部令)입니다.
신라 관직 병부령이라면 지금의 국방장관입니다.
그리고 2세손인 3세 태수공(휘 금서金書)께서 처음으로 고려조에 출사하여 중원태수로 호부랑중(戶部郞中)관직을 가졌고 경순왕 김부의 3녀(태조 왕건의 외손녀)와 결혼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가 경순왕 김부와 결혼하여 낳은 세 번째 딸입니다.
*낭중(郎中)은 통일 신라 때 집사성(執事省)과 병부(兵部), 창부(倉部- 戶曹)에 딸린 벼슬로 11-13등급의 관직입니다.
그 뒤 3세손인 4세 휘 윤홍 조상이 병정(兵正)
4세손인 5세 휘 승훈- 정조시랑(正朝侍郞)
6세 휘 주복- 좌사간.
7세 휘 휘 칭- 증 보조공신 문하시중.
8세 휘 치련- 아들이 문하시중이라 당연히 증직이 있을 것으로 보나 구보에 기록이 없다.
9세 휘 총섬- 문하시중.
10세 휘 춘정- 순흥부사.
11세 휘 현복- 생원
12세 휘 선용- 군윤
13세 휘 승고- 보윤
14세 휘 득견- 문림랑
15세 휘 핵- 문하평리. 증 상서좌복야
16세 휘 인정- 문하평리. 휘 진- 검교정승. 임해군. 시호 문정.
17세- 이하 생략
위와 같은데 고려 관직에의 등용이 막혔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필자의 35대조]라고 하면 ‘우’ 항렬은 중시조 3世를 말합니다.
중조 3세부터 조상님들의 관직은 위와 같습니다.
*7세 휘 칭(偁)과 9세 휘 총섬(寵暹) 할아버님 때 휘 칭(偁)은 사록(司錄)으로 증 문하시중이고 휘 총섬(寵暹)은 문하시중 관직이었습니다.
*사록(司錄)- 고려 시대 경(京)•도호부(都護府)•목(牧)에 설치되어 수령을 보좌하던 관원으로 초직(初職)이 정7품의 외직(外職)이었음.
이들은 속읍을 순찰하고 속읍의 행정을 감독하였으며 주읍과 속읍의 향리들이 결탁하는 폐단을 방지하였음.
*9세 휘 총섬(寵暹)이 문하시중이니 아버지 8세 휘 치련이 당연히 증직이 있어야 하나 기록이 없고 할아버지인 7세 휘 칭께서 정7품이나 증직으로 보조공신 문하시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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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에 등용이 막혔다는 말은 말이 안 됩니다.
7.[필자의 항렬이 ‘우(雨)'자라는 것과 시조(始祖)이신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의 73대손이며, 중시조(中始祖)이신 이거명(李居明)의 38대손, 파시조(派始祖)이신 익제공(益齋公 : 李齊賢)의 22대손, 입향조(入鄕祖)이신 판윤공(判尹公 : 李之帶)의 18대손이라는...]
△ 수정 사항- 익제공이 아니고 ‘익재공(益齋公)’입니다.
△ [‘우(雨)'자 항렬은 시조(始祖)이신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의 73대손이며,]에서 ‘雨’ 항렬은 시조의 73대손이 아닙니다.
시조 73세라고 표현한 것은?
합천이씨 세보(대종보 총편에도 게재되어 있음)에서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있다하여 이것을 근거로 ‘시조
73’세로 읽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종친님께서도 대종보의 ‘실전세계 고찰‘을 언급하셨고 이 계대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소판공 앞까지 35대와 ’雨‘자 항렬의 중시조 38세를 합하여 73세로 읽고 73세손으로 읽고 있습니다.
‘雨’자 항렬은 시조 73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경주이씨 보학자님들이 합천이씨 세보에서 발견하였다는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신라관직을 기록해야 하는데 1-35대(세)까지 올바른 신라관직명은 없고 거의 대부분 고려 관직으로 나타낸 것과 기타 6-7가지의 바르지 못한 내용과 의문을 가지고 있어 이 실전세계는 다만 참고로만 한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이를 계대로 하여 시조 73세로 읽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조 73세손’으로 읽은 것은 ‘세와 대는 다르다.(異義)‘라는 논법의 ’이의론‘을 따라 읽은 것 같습니다.
유교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에서 2007년 6월까지 하더라도 ‘세와 대는 다르다.’ . ‘世와 世孫을 같다고 하는 異義論’으로 답변을 하다가 이의 잘못을 알고 ‘同義論’으로 선회하여 지금은 世와 代에 대한 문의에 ‘동의’논법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35대로 된 실전 세계 35세(35대)는 잘못된 계대입니다.
그렇다면 ‘시조 73세‘는 읽지 않아야 합니다.
읽는 것이 왜 잘못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틀린 계대를 왜 읽어야 합니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 한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아래의 의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73世와 73世孫을 같이 읽는다.’는 것은 ‘73世=73世孫’으로 등호(=)를 써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世와 世孫이 같은 뜻일까요?
世와 世孫은 분명히 뜻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읽을 수 있는지요?
世와 世孫은 엄연히 그 뜻이 다르고 쓰임도 다릅니다.
한자 말 ‘七十三世孫’은 우리말로 ‘七十三世^孫’으로 나타내거나 ‘七十三世 後孫’으로 나타내거나 해역 되어야만 뜻이 통합니다.
8.[중시조(中始祖)이신 이거명(李居明)의 38대손, 익제공(益齋公: 李齊賢)의 22대손, 입향조(入鄕祖)이신 판윤공(判尹公 : 李之帶)의 18대손이라는...]
△익제공(益齋公)- ‘익재공’으로 수정.
△‘雨’자 항렬은 중시조의 38대손이 아니라 37세손(37대손)입니다.
‘雨’ 항렬은 중시조 38세이니까 38세에서 -1를 하면 37세손(대손)이 됩니다.
종친님은 익재공의 21대손(21세손)이며 판윤공의 17대손(17세손)입니다.
(차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