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조 2세∼14세

중조 2세 ∼ 14세까지의 조상님

녹전 이이록 2008. 12. 17. 08:49

■ 중시조 2세 ∼ 14세까지의 조상님



신라 건국 전후의 시조 다음 아들 대이후 신라말경 까지 약 900년 간의 세계(世系)는 실전되어 전연 알 수 없다.


시조(휘 알평. 알천 양산촌장. 신라 좌명공신. 아찬공. 급량부-양부)의 아들부터 원대손(遠代孫)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居明)의 아버지까지 대수(代數)는 물론 선세조(先世祖)의 휘(諱)자까지도 알 길이 없으니 그러기에 실전세계(失傳世系)라 하고 있다.


고려 말 중조 17세 익재공(휘 제현)의 묘지명(목은 이색 지음)에서 신라초 부터 고려 말 익재공 까지 약 1400여년의 계대를 모르다가 익재공의 묘지명에 기록된 소판공(휘거명)이후의 윗대 조상 약 500년간의 세계가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소판공이전부터 시조님 아랫대까지 약 900년간은 계대를 알 수 없어 안타갑다.

 

시조 이후 경주이씨에서 최초의 할아버님으로 밝혀진 분이 소판공(휘 거명)으로 우리는 중시조님으로 모신다.  

 

● 중시조 2세 금현(金現)

 

벼슬이 병부령(兵部令)이다.

 

신라 법흥왕(法興王)이 병부령을 두어 대아찬(大阿餐), 각간(角干)의 벼슬로 재상을 겸직토록 하였다.

 

아들이 금서(金書)인데 신라와 고려 풍속에 부자의 이름자를 같이 하였으니 권행(權幸)의 아들이 인행(仁幸)이요, 공직(공直)의 아들을 직달(直達)이라고 함과 같다.

 

공의 부자가 금(金)자로 이름을 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준례(準例)라 할 것이다.

 

아들 금서(金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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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현(金現)과 금서(金書), 권행(權幸)과 인행(仁幸), 공직(共直)과 직달(直達) 등 아버지 이름자와 아들의 이름자에 같은 글자가 들어감을 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병부령 : 대아찬(제5등)에서 태대각간(제1등 관제)이 맡는 병부의 우두머리. 

 

● 3세 금서(金書)

 

벼슬이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정5품)이다.

 

처음으로 고려에 벼슬했다.

 

배(配)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니 경순왕 '부(溥)'의 3녀(三女)이다.

 

윤홍(潤弘)  윤원(潤遠)  윤장(潤張)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윤장(潤張)은 평창 이씨(平昌李氏)로 분적(分籍)하여 시조(始祖)가 되었다.

 

개(開)는 원대손(遠代孫)으로 고려 초에 합천 호장(陜川戶長)이 되어 강양(江陽)을 본관으로 하여 합천 이씨(陜川李氏)로 분적하고 시조가 되었다.

 

강양은 합천(陜川)에 속한 고을이다. 

 

○ 신란궁부인


중조 3세 휘 금서(金書) 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대종보 및 판윤공파 족보에 아래와 같이 씌어있다. 
 

[配慶州金氏 敬順王溥三女 敬順王納土入朝 高麗太祖 妻以長女樂浪公主 比神鸞賜號其宮 神鸞宮夫人

(배경주김씨 경순왕부3녀 경순왕납토입조 고려태조 처이장녀낙랑공주 비신란사호기궁 신란궁부인)]

- 배(配)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니 경순왕 '부(溥)'의 3녀(三女)요, 고려 태조의 외손이다.

 

경순왕이 땅을 바치고 입조(入朝)하니 고려 태조가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로써 아내를 삼게 하고  '신란'에 비하여 그 궁을 이름하여 내렸다. 호는 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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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장녀 낙랑공주를 경순왕한테 시집보냈고 낙랑공주를 일명 신란궁 부인(神鸞宮夫人)이라 하였다. 


* 신란궁은 경순왕이 송도(개성)의 신란궁에 거쳐할 때 그의 부인 즉 태조의 장녀 낙랑공주에게 신란궁의 이름을 따서 호를 내린 것이 '신란궁부인'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 그런데 평창 이씨 본원 선계록(平昌李氏 本源 先系錄-시조 이윤장)에 보면

[휘 거명(居明)께서는 신라 말기 조정에 중서령을 지내셨고 아들 금현께서는 병부령을, 금현의 아들 금서께서는 중원태수 호부랑중을 지내셨다.

 

금서공은 신라 경순왕 김부의 셋째 딸 '신란궁 부인'을 맞아 부마가 되어 두 아들을 두셨다.

 

장자는 휘 윤홍이니 경주 이씨의 선조가 되시고, 둘째 아들은 휘 윤장이니 평창 이씨의 시조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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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윤장 평창 이씨 시조는 휘 금서 할아버지의 3남으로 대종보 족보에 올라있는데 '선계록'에는 차자(次子)로 기록하고 있다.


*분적종 평창이씨는 경주이씨 분적종이 아님이 밝혀져 2011년 분적종에서 제외하였다. 


* 위의 선계록 본문에 김부의 셋째 딸이 '신란궁 부인'으로 휘 금서 할아버지의 부인으로 지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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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신란궁부인'이란 호칭은 경순왕 김부가 신란궁에 살았고 그 부인 낙랑공주에게 주어진 호칭이니까 그 딸들에게도 시집을 가면 '신란궁부인'이란 칭호가 주어졌다고 보아야한다.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경순왕이 혼인하여 신란궁에 살았으며 휘 금서 선조는 경순왕 김부의 3째 딸과 혼인하였다.

 

그러므로 양쪽 왕가(王家)의 후손이 되며 택호가 '신란궁 부인'이다.

 

예전의 풍습으로 택호는 보통 여자가 태어난 곳의 지명을 따르는 것이 통례이니까 양쪽 왕가의 후손임을 나타내려면 위 기록에서 어머니인 낙랑공주도 그 셋째 딸도 '신란궁부인'이라고 했을 것이다. 

 

● 4세 윤홍(潤弘)

 

벼슬은 병정(兵正)이다.

 

고려가 병부령과 병정을 두었으니 직위가 재상(宰相)과 같다.

 

승훈(承訓)과 승겸(承謙) 두 아들을 두었다.

 

● 5세 승훈(承訓)

 

벼슬이 정조시랑(正朝侍郞-정7품)이다.

 

고려관제에 내사시랑(內史侍郞), 문하시랑(門下侍郞), 중서시랑(中書侍郞)이 있는데 이는 평 장사(平章事-정2품)로 불린다.

 

벼슬차례에 6품까지는 경직(卿職-높은 직)이고 7품 이하는 정조(正朝-지방직)이다.

 

공의 아우 승겸(承謙)은 벼슬이 판예부사(判禮部事)이시다.

 

주복(周復)과 제정(齊廷) 두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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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인 문하시중(종1품)이 판이부사(判吏部事- 이부 판사), 아상(亞相- 버금 재상)이 판병부사(병부 판사), 3재가 판호부사(호부 판사), 4재가 판형부사(형부판사), 5재가 ^판예부사(예부 판사), 6재가 판공부사(공부 판사)를 겸직하였다.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의 순으로 서열로 본다. 


^판예부사(判禮部事)-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 예부 판사 고려 시대에 둔, 상서 예부의 으뜸 벼슬. 재신(宰臣)이 겸하였다.

 

● 6세 주복(周復) 
 

벼슬이 좌사간(左司諫-정6품)이다.

 

고려 목종이 좌우보궐(左右補闕)을 좌우사간(左右司諫)으로 고치니 벼슬의 차례는 6품이다.

 

칭(칭)과 우칭(禹칭) 두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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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에 이주좌(李周佐)는 경주인이라고 되어 있고 목종조에 급제하여 벼슬이 형부상서(刑部尙書)인바 좌사간공의 형제인 듯 하나 족보에 전함이 없다.

 

○ 이주좌(李周佐)

 

생몰년은 ?~1040(정종6년)이다.

 

고려의 대신으로 동경 유수(東京留守) 이성공(李成功)에 의해 발탁되어 국학(國學)에서 수학 (修學)하고 목종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상주목(尙州牧)의 기실참군사(記室參軍事)를 거쳐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올랐다.


1016년(현종7년) 감찰 사헌(監察司憲) 시어사(侍御史) 기거사인(起居舍人)
동북면병마사(東 北面兵馬使)를 거쳐 1030년(현종21년)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다.


1033년(덕종2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이듬해 국자좨주 좌간의대부가 되고,
형부상서 판 어사대사에 이르렀다.


사공 상서 우복야(司空尙書右僕射)에 추증(追贈)되었다.

 

● 7세 칭

 

벼슬은 보조공신 문하시중(補祚功臣門下侍中)이다.

 

구보(舊譜)에 벼슬은 사록(司祿-정8품)인데 보조공신은 증직(贈職)인 것 같다.

 

아들 치련(侈連)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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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령 이씨(載寧李氏) 족보를 보면 이우칭(李禹칭)의 벼슬은 좌사간(左司諫)으로 주복의 아들이라 문하시중으로 재령군(載寧君)에 봉하여 재령 이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곧 칭(稱)과 형제이다.

 

● 8세 치련(侈連)

 

아들 총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써 귀함이 있으므로 마땅히 공에 대한 증직(贈職)이 있음직 한데 구보(舊譜)에 기록이 없다.


아들 총섬(寵暹)을 두었다.

 

● 9세 총섬(寵暹)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이다.

 

고려 성종(高麗成宗)때에 문하시중을 설치하니 2품 관직이다.

 

아들 춘정을 두었다.

  

● 10세 춘정(春貞)

 

벼슬이 순흥 부사(順興府使-정3품, 순흥은 지금의 김해부(金海府)이다.

 

아들 현복(玄福)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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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의 아우 춘림(春林)은 벼슬이 문하시랑(門下侍郞-정2품)이고 시랑공파(侍郞公派) 파조(派祖)이다.

 

● 11세 현복(玄福) 
 

생원(生員)으로 좌복야(左僕射-정2품)에 이르다.

 

고려 덕종 원년(德宗元年 1032)에 국자감에서 부(賦),시(詩),경(經)등을 시강(侍講)하였다.

 

문하성(門下省)의 중서사인(中書司인)을 거쳐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다.

 

선용(宣用)과 신우(申佑) 두 아들을 두었다

  

● 12세 군윤공(軍尹公) 선용(宣用)

 

벼슬이 군윤(軍尹)이니 고려관제에 경직 8품(卿職八品)을 군윤이라 하고

9품을 보윤(甫尹)이라 하였다.

 

승고(升高), 작량(作良), 민개(民介), 자춘(自春), 계용(戒用) 등 5형제를 두었다.

 

● 13세 공의공(恭懿公) 승고(升高)

 

벼슬이 보윤(甫尹-9품)에서 이조 참판(吏曹參判-종2품)에 이르다.

 

시호는 공의(恭懿)이다.

 

득견(得堅), 선경(善景) 두 아들을 두었다.

 

● 14세 직장공(直長公) 득견(得堅)

 

 

*문림랑 상의원 직장 동정(文林郞尙衣院直長同正-종7품)이다.

 

당나라 관제에 동정원을 두어 내외직을 다 겸하니 고려의 관제는 당나라 관제를 많이 따랐다.

 

핵(翮), 편(翩), 강(康+羽) 세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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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림랑- 종9품
* 상의원- 궁중 임금 의복 담당
* 직장- 종7품

* 동정(同正)

- 동정이란 산직(散職- 산계. 산반. 산관. 일정한 관직이 없이 품계品階만을 가지던 벼슬아치)은 정원이 제한된 실직(實職)의 한계를 극복하고 많은 사람을 관료체제에 흡수하기 위해 마련된 직제이다.


중앙집권체제가 정비된 성종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 관직은 문반 정6품이하와 무반 정5품이하 및 남반(南班)과 승관(僧官) 등에 설정되었다.


음서(蔭敍)로 벼슬한 자에게는 모두 이 산직을 주었고, 훈직으로 활용되기도 하여, 실직과 동정직을 함께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 실직과 동정직의 관계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실직 앞에 ‘행(行)’또는 ‘수(守)’를 붙여 불렀다.


이들에게는 녹봉(祿俸)은 없고 전시과(田柴科)에 규정된 토지만 지급 받았다.


이 제도는 조선 전기까지 계속되다가 세종 때 혁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