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의’논지의 ‘39世=39世孫’ - 8
조상님들께서 사용하고 족보와 문헌에 기록으로 남긴 세와 대는 같은 뜻으로 읽고 말하는 ‘동의’논지를
1945년 해방이후에 몇몇 교수와 학자들에 의해 세와 대는 다른 뜻인 ‘이의’논지의 해석으로 정립하여
지금까지 70여년 이상 대세를 이루어 잘못 교육되어 왔습니다.
‘세=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어 중시조 39世를 39世孫으로 읽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시조세수’나 ‘중시조세수’에 ‘孫(손)’자를 붙여 39世=39世孫으로 같은 뜻으로 읽는 것입니다.
‘세와 세손은 그 말뜻이 다르고 쓰임도 다르다.’ 라고 잘못을 지적하니 도리어 내가 잘못 알고 있으니 더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나’와 ‘나의 아들’을 두고 ‘아들은 나의 몇 세손?’이라고 묻는다면 ‘나의 1세손’이 맞을까요? ‘나의 2세손’이 맞을까요?
○ 부 ~ 나의 계대
부(아버지) - - → 나(아들)
1세(=1대).............2세(=2대)
(기준. 나의).........1세손=(1세손)
2세(=2대).............1세(=1대)
1세조(=1대조)......(기준. 나의)
아버지께서 기준이니 1세(=1대)이고 나는 2세(=2대)입니다.
내가 기준으로 1세(=1대)이면 아버지는 2세(=2대)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1세손(=1대손)’이고 ‘아버지는 나의 1세조(=1대조)’입니다.
아래의 글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사용하였고 기록으로 남긴 족보나 문헌의 용례입니다.
● 伯父錦山郡守府君-李大遂-墓誌(백부 금산군수 부군-이대수-묘지) - 碧梧先生(李時發)遺稿卷之五(벽오선생-이시발-유고 권지 5) - (세조. 대조)
[伯父郡守府君。姓李氏。諱大遂。字汝成。......有諱齊賢。號益齋。諡文忠。仕麗朝。
德業文章。震輝今古。*是爲府君十世祖。自文忠以後趾美?奕。*五代祖諱尹仁。仕本朝觀察使。]
*중시조 27세 금산 군수 이대수의 묘지명에 있는 글이다.
▲[是爲府君十世祖(시위 부군 10세조)]
- 이로써 부군 10세조이다.
- 익재공은 부군(군수공)의 10세조이다.
▲[五代祖諱尹仁(5대조 휘 윤인)]
- 5대조는 휘 윤인이다.
- 군수공의 5대조는 관찰사공(휘 윤인)이다.
그러니까 금산 군수공 27세 휘 대수는 익재공이 10세조이고 휘 윤인이 5대조입니다.
○ 17세 익재 ~ 27세 대수(大遂)의 계대.
①17세 - → ②18세 - → ③19세 - → ④20세 → ⑤21세 - → ⑥22세 →
제현(齊賢)...달존(達尊)...덕림(德林)....신(伸)......계번(繼蕃)...윤인(尹仁).......
10세조.........9세조..........8세조...........7세조.......6세조..........5세조
府君十世祖........................................................................五代祖諱尹仁
10대조........9대조...........8대조..........7대조........6대조..........5대조
⑦23세 - → ⑧24세 → ⑨25세 → ⑩26세 - → ⑪27세
공린(公麟)...원(黿)......발(渤).......경윤(憬胤)...대수(大遂)
4세조..........3세조.......2세조........1세조..........(기준. 나의)
맨 아랫대인 군수공(휘 대수)을 기준으로 하되 기준은 헤아리지 않고 그 윗대인 아버지 휘 경윤을 1세조로 하여 윗대로 헤아려 올라가면 관찰사공(휘 윤인)은 5대조(5세조)이고 익재공은 10세조(10대조)로 읽게 됩니다.
한 계대 안에 군수공의 익재공과 관찰사공에 대한 '몇 世祖(세조)'와 '몇 代祖(대조)'를 혼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위의 계대에서 '世祖'와 '代祖'로 헤아려 보면 어느 쪽으로 읽어도 [十世祖=十代祖]이고 [五代祖=五世祖]입니다.
이를 보면 '世祖(세조)와 代祖(대조)를 같은 뜻으로 읽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같은 계대를 나타내는 문장에서 '세조'와 '대조'를 같이 혼용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 대종보 P114 朝鮮開國原從功臣檢校左政丞諡靖順公神道碑銘幷序(조선개국 원종공신 검교 좌정승 시 정순공 신도비명 병서) - *十九世孫 鍾宣撰(19세손 종선 찬) - (대조. 세손)
종6열
▲ [寔我十九代祖靖順公也(식아 19대조 정순공야)]
* 정순공(靖順公)- 휘는 성중이며 국당공(휘 천)의 4자이다.
역문 P117 종 12열
▲[이 분은 우리의 十九代祖(19대조) 靖順公(정순공)이다.]
- '十九世孫 鍾善'(19세손 종선)과 '十九代祖 靖順公(19대조 정순공)'이 비교적입니다.
정순공(휘 성중)은 중조 18세이고 종선은 '鍾(종)'자 항렬이니 중조 37세이다.
○ 중시조 18세 정순공(휘 성중) ~ 37세 종선의 계대
①18세→ ②19세→ ③20세→ ④21세→ ⑤22세→ ⑥23세→ ⑦24세→ ⑧25세→
19대조.....18대조....17대조....16대조....15대조.....14대조....13대조....12대조...
(기준)......1세손......2세손.....3세손......4세손......5세손......6세손......7세손......
⑨25세→ ⑩27세→ ⑪28세→ ⑫29세→ ⑬30세→ ⑭31세→ ⑮32세→ ⑯33세→
11대조....10대조.....9대조......8대조......7대조......6대조......5대조.....4대조....
8세손......9세손......10세손....11세손.....12세손.....3세손.....14세손...15세손....
⑰34세→ ⑱35세→ ⑲36세→ ⑳37세
3대조......2대조......1대조.......(기준)
16세손....17세손.....18세손.....19세손
정순공의 ‘19세손’이 종선(鍾宣)이고 종선(鍾宣)의 ‘19대조’가 靖順公(휘 誠中)입니다.
'몇 世孫(세손)'은 윗대를 기준으로 하되 기준은 제외 하고 그 아랫대로 순번대로 헤아려 읽은 수 뒤에 붙여 읽는 용어이자 단위입니다.
윗대 조상인 중시조 18세 정순공이 기준(주격)이 됩니다.
기준은 헤아리지 않고(제외하고) 그 다음 아랫대(아들)부터 1. 2. 3...등으로 헤아려 가면 중조 37세 휘 종선은 19이고 이 수 뒤에 세손을 붙여 19세손으로 읽고 말합니다.(세손=대손)
‘몇 대조’는 아랫대를 기준으로 하여 윗대로 헤아려 가는 만큼 중시조 37세 종선(鍾宣)이 기준(주격)이 되니 기준은 제외하고 그 윗대(부)를 1. ‘조’를 2. ‘증조’를 3. 4. 5.....등으로 헤아려 올라가면 중시조 18세 정순공은 19대조로 읽게 되는 것입니다. (代祖=世祖)
'十九世孫 鍾善(19세손 종선)'과 '十九代祖 靖順公(19대조 정순공)'은 '동의'논지로 읽은 것입니다.
이를 중조 37세 종선은 정순공의 '19세손이나. 19대손'으로 읽고 정순공은 종선의 '19대조나 19세조'로 읽거나 말합니다.
그러나 이를 '이의'주장으로 읽으면 ‘世孫‘은 휘 종선이 주어진 계대에서 중시조 20세이니 ’20세손‘으로 읽거나 말합니다.
‘몇 代祖(대조)’로 말할 때는 대불급신(代不及身= 대는 자신은 헤아리지 않는다. 제외한다. 뺀다.)'하여 ‘19대조'로 읽어져 동의논지와 같게 읽거나 말합니다.
'몇 世孫(세손)'으로는 중시조 20세는 ’세=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어 '20세=20세손'으로 읽거나 말합니다.
위 글에서는 종선과 정순공의 조손(祖孫)관계는 '19세손(=18대손) 종선'과 '19대조(=19세조) 정순공'이 틀림없습니다.
’동의‘논지에서는 몇 대조(=세조)나 몇 세손(=대손)으로 읽고 말할 때 기준(주격- 맨 윗대와 맨 아랫대. 묻는 기준에 따라)은 제외하고 같은 계대에서는 대조(=세조)와 대손(=세손)의 헤아린 수치는 항상 같은 수치로 읽게 됩니다..
두 조손관계(祖孫關係)는 서로 19세손(=19대손)은 19대조(=19세조)로 '十九世孫 鍾善(19세손 종선)'과 '十九代祖 靖順公(19대조 정순공)'이 되는 것입니다.
● 再思堂先生李원碣記(재사당 선생-이원-갈기)- 逸集卷之二(일집 권지2) 李錫禧撰(이석희 찬)
- (대조. 세손)
[*我八代祖考再思堂先生。禍於弘治甲子....春田公諱慶徽。官吏曹判書。贈諡忠憲公。華谷公諱慶億。
官左議政。厚德淸名。爲顯廟名臣。靜心公諱茂。以至行聞。命旌閭。卒官同樞。*俱先生五世孫也。
咸謂役也不可以無識。略敍梗如右。崇禎紀元後再庚戌維夏上澣。*八代孫錫禧。謹識 ]
▲[*我八代祖考再思堂先生]
- 나의 8대조 할아버지가 재사당 선생
중시조 32세 석희는 24세 재사당공(휘 원)의 8대손이며 석희의 8대조가 재사당공이다.
▲[*俱先生五世孫也]
- 그 선생의 5세손이다.
선생 즉 휘 경휘(慶徽)와 휘 경억(慶億)은 재사당공(휘 원)의 5세손이다.
▲[*八代孫錫禧(8대손 석희)]
- 8대손 석희.
32세 휘 석희는 24세 재사당공(휘 원)의 8대손이다.
○ 중조 24세 원 ~ 32세 석희의 계대
①24세 → ②25세 → ③26세 - - → ④27세 - - → ⑤28세 →
원(黿).......발(渤)......경윤(憬胤).....대건(大建)....시발(時發)..
(기준).......1세손.......2세손............3세손............4세손..........
(기준).......1대손.......2대손............3대손............4대손..........
⑥29세 -- → ⑦30세 - → ⑧31세 - → ⑨32세
경휘(慶徽)...인엽(寅燁)...제곤(濟坤)...석희(錫禧)
5세손...........6세손..........7세손...........8세손
5대손...........6대손..........7대손...........8대손
五世孫..............................................八代孫
중조 29세 춘전공(휘 경휘)과 화곡공(휘 경억)은 재사당공(휘 원)으로부터 5세손(=5대손)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24세 재사당공(휘 원)으로부터 휘 석희는 8대손(=8세손)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로 보면 동일계보(同一系譜)에 '세손(世孫)과 대손(代孫)'을 혼용(混用)하고 있는 것은 '세손(世孫)과 대손(代孫)'을 같은 뜻으로 읽고 썼다는 사실을 말하는 사례입니다.
4대조(=4세조)에 대하여 자신은 4대손(=4세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4대조(=4세조) 기제사 축문에 자신을 '5세손(=5대손)'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사당공(휘 원)의 4자인 승지공 휘 발(渤)이 생원공 휘 타에게 계자로 감.
생부(生父)인 재사당공(휘 원)을 8대조로 기록했기 때문에 생부를 계대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