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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의 유래’ 오류 수정 - 21

녹전 이이록 2019. 3. 14. 09:11

경주이씨의 유래오류 수정 - 21



제목 경주이씨 유래라는 장문의 글입니다.


원 제목 경주이씨의 유래와 역사의 글에 다른 자료를 보완하여 쓴 글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자료를 모아 글을 써 올렸으나 잘못된 내용이 많습니다.


바르게 쓴 글인 줄 알고 여러 카페나 블로그에 그대로 복사하여 올려놓았습니다.


원문은 .............로 나타내고 이견과 소견이 다른 부분에는 * 표시를 한 후 아래에 [...........]로 나타낸 뒤 소견)으로 수정하여 올립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주이씨 국당공파(菊堂公派) 후손으로 카페지기보다 한 항렬 낮은 ()’자 항렬이다.


원래 호적명을 이상정(李相定)으로 등재했다가 이명박(李明博)으로 바꿨다는데,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과연 그럴 필요성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항렬자(行列字)를 따르고 싶지 않았거나, 항렬자를 쓸 수 없는 신분이었거나, 둘 중의 한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중앙화수회 역대총재 중에도 항렬자를 쓰지 않은 이들이 많다.


초대 이시영(李始榮 : 초대 부통령) 총재와 78대 이상철(李相喆 : 전 국회의장), 13대 이민우(李敏雨 : 전 신한민주당 총재), 14대부터 현재까지 연임하고 있는 이종찬(李鍾贊 : 전 국정원장)씨 등은 항렬자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23대 이인(李仁 : 초대 법무부장관), 46대 이갑성(李甲成 : 31운동 민족대표, 전 민의원), 912대 이병철(李秉喆 : 전 삼성그룹 회장) 총재 등은 반상(班常)의 구별이 엄존했던 그 시기에 항렬자를 안 쓰거나, 못 쓴 축에 속한다.


소견)


위 글은 대동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작명한 분들에게 이름을 바꾸거나 항렬자를 바르게 쓰지 않은 이유를 항렬자(行列字)를 따르고 싶지 않았거나, 항렬자를 쓸 수 없는 신분이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명박. 이인. 이갑성. 이병철은 왜 항렬자를 쓰지 않았는가?


항렬자를 넣어 작명하면 항렬자 자체가 오행과 겹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름자의 한자 획수와 항렬자가 오행이 겹치지 않도록 작명하기 때문에 항렬자 아닌 다른 한자로 작명하는 것입니다.

 

  사주의 오행과 항렬자의 오행이 겹쳐진다면 항렬자 대신 다른 글자를 넣어 작명합니다
   

  木이 많은 사주에 에 해당하는 항렬자를 넣으면 사주의 조화를 방해하므로 사주와 이름의 기운을 조화

  시키기 위하여 항렬자가 아닌 글자인 다른 글자로 작명한 것이지 무슨 신분이나 어떤 이유로 항렬자를

  쓰지 않고 작명한 것이 아닙니다.


이하 생략 - 화제를 바꾼다. ~ ‘월성이씨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다.에서


[*경주지방의 경주이씨들 조차 자신들의 본관을 월성이씨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다.]


소견)


경주이씨월성이씨는 같은 지명을 본관으로 하여 일컫는 성씨이기 때문에 월성이씨라고 하였다고 하여 잘못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멋으로 경주이씨를 월성이씨’, ‘계림이씨라고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몰락하기는 했으나, ‘월성이씨라는 관명(貫名)은 조상 대대로 세거지(世居地)를 지키고 있는 종손(宗孫)들이 주로 쓰는 명칭이고, ‘경주이씨라는 관명은 종손이 아닌 차손(次孫)이나 서자(庶子)들로 유학을 하고 대처(大處 ; 도시)에서 부를 축적하여 출세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관명(貫名)이기 때문이다.

맏이로 태어나 조상의 묘역(墓域)을 지키느라 도회지로 진출하지도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종손(宗孫)들은 월성이씨를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조상을 모시지 않아도 되는 차남이하 자손들이나, 서자(庶子) 또는 중인이나 상민(常民)출신 종중(宗中)들은 일찍이 도회지로 진출하여 돈을 벌고 공부를 하여 출세하면서 자신들을 홀대하고 구속하던 틀을 벗어나기 위해 조금은 신식에 속하는 경주이씨(慶州李氏)’라는 관명을 만들어 전래시켜 온 것이다.


[*비록 몰락하기는 했으나, ‘월성이씨라는 관명(貫名)은 조상 대대로 세거지(世居地)를 지키고 있는 종손(宗孫)들이 주로 쓰는 명칭이고, ‘경주이씨라는 관명은 종손이 아닌 차손(次孫)이나 서자(庶子)들로 유학을 하고 대처(大處 ; 도시)에서 부를 축적하여 출세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관명(貫名)이기 때문이다.]


소견)


같은 관명인 경주이씨월성이씨에서 월성이씨는 몰락하였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월성이씨는 종손이 주로 쓰는 명칭이고 경주이씨는 차손(次孫)이나 서자(庶子)들이 대처(大處; 도시)에서 유 학을 하고 부를 축적하여 출세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관명(貫名)이라니 무엇을 근거로 같은 성씨인 경주와 월성 두 관명을 구분하여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월성이씨경주이씨를 이상한 말로 구분하였습니다.


맏이로 태어나 조상의 묘역(墓域)을 지키느라 도회지로 진출하지도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종손(宗孫)들은 월성이씨를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조상을 모시지 않아도 되는 차남이하 자손들이나, 서자(庶子) 또는 중인이나 상민(常民)출신 종중(宗中)들은 도회지로 진출하여 돈을 벌고 공부를 하여 출세하면서 조금은 신식에 속하는 경주이씨(慶州李氏)’라는 관명을 만들어 전래시켜 온 것이다.‘ 라고도 하였습니다.


바르지 못한 설명입니다.


신라 시대 현 경주지역은 진한. 서라벌. 사로, 신라. 낙랑. 계림. 월성. 동경. 금오. 문천이라고 불리던 지명을 신라 패망 후 고려 건국 때 태조가 경주라고 한 것이고 경주이씨를 고풍스러운 이름으로 월성이씨’ . ‘계림이씨라고 부른 것입니다.


맏이인 종손은 묘역(墓域)을 지키느라 도회지로 진출하지도 못하고 월성이씨라 하고 차손과 서자의 지손은 도회지로 진출하여 돈을 벌고 공부를 하여 출세하여 경주이씨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닙니다.


월성이씨는 옛적에 경주월성. 계림이라 하였기에 이를 따서 월성이씨’ . 계림이씨라 하였고

경주는 조선 태종 임금 때부터 다시 경주라 불려 지금까지 '경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