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의 유래’ 오류 수정 - 2
제목 ‘경주이씨 유래’라는 장문의 글입니다.
원 제목 ‘경주이씨의 유래와 역사’의 글에 다른 자료를 보완하여 쓴 글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자료를 모아 글을 써 올렸으나 잘못된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은 【.............】로 나타내고 이견과 소견이 다른 부분에는 * 표시를 한 후 아래에 ▲[...........]로 나타낸 뒤 소견)으로 수정하여 올립니다.
【*그로부터 백년이 지나 제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여섯 마을의 이름을 고치고 성씨를 내릴 적에 알천 양산촌은 급량부라 일컫고 이씨로써 성을 삼아 비로소 경주를 본관으로 한 큰 집안이 열리게 되었고,
*무릇 2천여 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차성, 우계, 합천, (가평, 평창), 아산, 재령, 원주, (흥향) 등 많은 지종으로 나뉘어 가지와 줄기마다 꽃 피고 열매 맺듯 역대를 통하여 뛰어난 문무장상들이 헬 수 없이 배출되었음을 보거니 이 어찌 깊은 뿌리에서 솟아오르는 진액의 덕택이 아니며, 또한 이 어찌 시조의 끼치신 은혜가 아닐까보냐,】
▲[*그로부터 백년이 지나 제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
소견)
신라 건국 시기가 서기전 57년이고 유리왕 9년은 서기 32년이니 89년 후로 100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백년이 지나’라고 기술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무릇 2천여 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차성, 우계, 합천, (가평, 평창), 아산, 재령, 원주, (흥향) 등 많은 지종으로 나뉘어] ⇒ 무릇 2천여 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차성, 우계, 합천, 아산, 재령, 원주, 진주. 장수 등 많은 분적종으로 나뉘어
* 가평, 평창. 흥향이씨는 경주이씨 분적종으로 확인된 이씨가 아닙니다.
【그의 혈통을 받은 자손들이 거룩한 유적지를 그냥 보지 못하여 순조 때 표암 위에 시조의 자취임을 새겼고, *순종 때에는 바위 아래 표암제를 세웠으며, 또 근래에 국가에서 거룩한 유적임을 찬양하여 묘우를 세웠고, 터전을 확장하며 장원과 송죽으로 경내를 미화하여 조상을 사모하는 자손들의 마음은 기쁘기 여지없다.】
▲[*순종 때에는 바위 아래 표암제를 세웠으며,]
*표암제 ⇒ 표암재(瓢巖齋)
【그러나 공의 사적은 결코 한 씨족의 역사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근원이므로 나는 굳이 그 유적을 찾아 알천 동북쪽 금강산 내린 맥이 마지막 맺힌 표암 위에 올라 눈을 감고 2천 년 전 민족의 옛 조상을 사모하며, 다시 그 혈통의 큰 인물들이 대대로 겨레 위해 큰 업적 끼친 것들을 헤아려 볼 때 감격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명활산, 금오산, 선비산이 에워 둘렸고,
문천이 알천이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곳
신라의 옛 서울. 알평 어른 내리신 자취
2천년 묵은 역사 흐리듯 또렷도 하다.
옛 조상 축복을 받아 자손과 겨레 영광 있으리!】
▲[*명활산, *금오산, *선비산이 에워 둘렸고, *문천이 *알천이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곳]
*선비산 ⇒ 선도산
*명활산(明活山) : 보문동 소재. 보문호 서쪽에서 남쪽에 있는 산, 명활 산성.
*금오산(金鰲山) : 경주 남산 - 북쪽의 금오산(金鰲山)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하여 남산이라 한다.
*선도산(仙桃山) : 경주시 서쪽에 있는 높이 390m의 낮은 산이다.
예부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서악'으로 중요시 되었다.
서산, 서술산, 서연산, 서형산 등
*문천(蚊川) : 반월성(半月城)을 끼고 도는 경주의 남천(南川).
임진왜란 때 문천회맹(蚊川會盟)
*알천(閼川) : 보문호에서 내려오는 서천(西川). 북천(北川) -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다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북천을 '알천(閼川)'으로 적고 있다.
<김주원은 서라벌에서 북쪽 20리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소식을 듣고 입궁을 하던 김주원은 홍수로 인 해 물이 불어난 ‘알천’을 건너지 못해 입궁이 지체되고 있었다.>
*형산강(形山江) : 울산광역시와 경상북도 경주시· 포항시를 흘러 동해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강.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513m) 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대천이라 불린다.
【이 경모비(景募碑)는 지난 1979년 11월 1일 당시 경주이씨 중앙화수회(花樹會) 총재였던 당시의 삼성그룹 회장 고 이병철(李秉喆)씨의 성금으로 건립했는데,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이 비문을 지었다.
비문의 내용은 모두가 신화적(神話的)인 내용 일색이다.
시조께서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도 그렇고,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그렇다.
우리민족의 시조라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이 환웅(桓雄)과 웅녀(熊女) 사이에서 탄생했다거나,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을 갖추게 한 다음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하여 태어났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시 시조의 얘기로 돌아간다.
어쨌든 시조와 관련한 신화적 전설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인간의 코에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하셨다는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민족이든 종족이든 인간의 시조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 한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단군(檀君)’도 우리들의 시조도 그들이 실제의 인물이라면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온 ‘아담’의 후손이며, ‘노아’의 큰 아들인 ‘샘’의 후손일 뿐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해 돋는 동쪽을 향해 이동해 온 한 무리의 우두머리일 뿐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부정하는 비기독교인(非基督敎人)들이 하등의 근거도 없이 회자(膾炙)시켜 온 엉성한 전설을 맹신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극구 부인하면서도 원숭이가 자신들의 할아버지라고 믿는 비기독교인들이 그들의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거나, 알에서 깨어났다는 말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견)
자신의 뿌리인 시조 탄생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자신의 종교와 결부시켜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의 시조 [아담]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조와 관련한 신화적 전설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인간의 시조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 한사람일 뿐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온 [아담]의 후손이며, [노아]의 큰 아들인 [샘]의 후손일 뿐이다.’
‘해 돋는 동쪽을 향해 이동해 온 한 무리의 우두머리일 뿐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극구 부인하면서도 원숭이가 자신들의 할아버지라고 믿는 비기독교인들이 그들의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거나, 알에서 깨어났다는 말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인 경주이씨의 시조에 대한 내용이 타당성이 없다고 해도 후손으로써 이를 반대하면서 이 시조에 대한 글은 왜 썼는지?
차라리 경주이씨 시조와 조상에 대하여 글을 쓰지 말지 하느님과 아담을 넣어 시조님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경주이씨 문중에서는 또 시조(始祖) 경모가(敬慕歌)라는 것을 만들었다.
누가 부르고 있는지는 모르나 – 물론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이은상이 작사하고 신윤원이 작곡한 경모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 경주이씨 시조(始祖) 경모가(敬慕歌)
명활산(明活山) 금오산(金鰲山) 선도산(仙桃山)이 에워 둘렀고
문천(蚊川)이 알천(閼川)이 형산강(兄山江)으로 흘러드는 곳
신라의 옛 서울 양산촌장(楊山村長) 내리신 자취
이천년 묵은 역사 흐린 듯 또렷하도다.
옛 조상 축복 받아 자손과 겨레 영광 영광 있으리 】
소견)
'시조 경모가(始祖敬慕歌) - 누가 부르고 있는지는 모르나 – 물론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조 경모가'를 왜 꼭 이러한 글로 폄훼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