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족보위작 건에 대한 소고 - 강정기
강정기 선생의 글로 인터넷에 올라 있습니다.
좋은 내용이기에 복사하여 올립니다.
【첫째. 개별 문중의 始祖(시조)
시조의 출신지가 中國(중국)에 편향되어 있고, 신분 또한 中國(중국)의 皇孫(황손)을 비롯하여 대개가 名門門閥(명문 문벌)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대다수가 귀족이요, 황족의 신분이었던 것이 된다.
둘째. 고려 말 이전의 世系圖(세계도)
고조선까지 소급하는 문중이 있으나, 대개는 삼국시대를 시조의 출발점으로 잡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족보는 대개 17세기 이후에나 그것도 소수의 양반 성씨문중에서 간행을 한 것인데 어찌 그 먼 옛날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세계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가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一連世系(일련세계 - 한 조상에서 한 자손으로 이어짐)로 되어 있다.
셋째. 선조님들의 官職記錄(관직기록)
고려 말 이전까지의 관직기록을 보면 封君(봉군), 諡號(시호)를 비롯하여 관직을 하지 않은 문중이 없으며, 그 내용 또한 휘황찬란할 정도로 벼슬이 빼곡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조의 공식적인 기록인 문과급제자는 허위가 끼어 들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여러 문중의 족보에서 문과 급제자를 허위로 기록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장원급제하여 영의정, 대제학,,,등 이름만 들어도 확연히 나타나는 사항까지 허위로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버젓이 내밀고 있다
본격적으로 족보의 위작이 위세를 떨친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이시기는 이미 구한말부터 해체된 신분제사회가 일정부분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고, 자본의 능력이 있는 씨족집단이라면 얼마든지 족보편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부터 대량으로 위조된 족보가 6.25동란을 지나고 50여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된 후 다음세대인 6 ~ 70년대 세대가 위조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대로 답습한 결과, 지금의 현세대에서 다수의 문중이 족보의 위작문제로 소란을 겪고 있다.
넷째. 明祖(명조)의 뒤바뀜
타문중의 顯祖(현조)로 명실상부하게 세상에서 공인하여 거론되는 인물이 타문중의 족보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섯째. 嫡孫(적손)과 庶孫(서손), 血孫(혈손)과 非血孫(비혈손)의 뒤바뀜
이것을 확인하려면 初刊本(초간본)이 있어야 수월하다.
적어도 嫡(적), 庶(서)를 구분하여 기록한 보첩이 있어야 확인이 가능하다.
조선조는 엄격한 신분사회였지만 18,19세기로 내려오면서 양민을 비롯한 상민, 심지어는 奴婢(노비)신분도 재력이 뒷받침되면 하급 양반으로까지의 신분상승이 가능해졌다.
血孫(혈손)이 몰락하여 소식이 없는 사이 새로이 非血孫(비혈손)이 자리하고 있을 때면 양상은 심각해진다.
세월이 흘러 친 혈손이 나타나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뼈대 있는 친 혈손들은 대개가 근거자료를 갖고 있기에 별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두고두고 시비에 소송까지 가서도 결말이 안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섯째. 가짜와 진짜의 차이
顯祖(현조)의 친 혈손임이 틀림없기에 족보상에 군더더기 같은 내용 붙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전란기에 선조의 내용이 失傳(실전)되었으면 있는 그대로 적는다.
또한 항렬도 굳이 宗中(종중)의 宗匠(종장) 문중과 똑같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기 백년이 지나면 연락도 끊기고 小門中(소문중) 나름의 문화가 태동한다.
이러하기에 한 顯祖(현조)의 자손들이라 하여 굳이 족보상에 동일 항렬을 고집하지 않는다.
반면에 중간에 한 성씨라는 이유, 또는 없는 성씨 만들어서 족보에 편입되는 경우는 다르다.
이들은 세대가 빈틈없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항렬 또한 宗匠(종장) 문중과 한가지로 일치시킨다.
그러나 이렇게 중간에 편입된 가짜는 선조의 세대를 확인해 보면 五世代(5세대) 이상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 증조부, 고조부 때까지의 기록만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짜 맞춘 것이 된다.
진짜는 대개 十世代(10세대) 이상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조상의 先塋(선영) 또한 보전이 잘 되어 있다.
300년 이상의 기록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조선조 봉건국가에서 그 부귀빈천이 어떠했건 간에 나름대로 뿌리 있는 문중으로 평가해도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