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祭酒). 염(厭). 가묘참례(家廟參禮). 생신(生辰). 기신(忌辰)
인터넷에 올라 있는 자료로 옛날 제사 등에 대한 문답과 설명으로 당시의 제사 사정을 알아볼 수 있기에 참고로 복사하여 올립니다.
▲ 술로 제사 지내는 것[祭酒]
[문]
술로 제사 지내는 것은 신(神)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논어》향당(鄕黨)에 이르기를 ‘임금이 제사한 뒤에 먼저 먹었다.[君祭先飯(군제선반)]’고 한 곳에서의 ‘제(祭)’도 역시 술로 제사한다는 뜻입니까?
답)
그에 대한 주에 “마치 임금을 위하여 음식을 맛보는 것처럼 하는 것으로, 감히 객례(客禮- 손님을 대하는 예의)로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이다.” 하였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뜻은 주객(主客)의 예와는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문)
그런데도 주자가 이렇게 이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전에 가르침을 받들건대,
“존장(尊丈- 자기보다 지위가 높거나 16세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을 모시고 식사를 할 경우에는 나이와 덕의 공경스러움이 부형(父兄)과 같은 자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나머지 연장자에 대해서는 제사를 하여도 혹 괜찮을 듯하다.”고 운운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복(愚伏)은 이르기를,
“《예기》곡례(曲禮)에 이르기를, ‘주인은 손님을 인도하여 제사한다.[主人延客祭(주인 연객제)]’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연(延)은 인도하는 것이다.’ 하였네.
《논어》의 주에서 이른바 ‘감히 객례(客禮)로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이른 것이네.
만약 임금이 제사하기를 기다려서 제사하고 임금이 먹기를 기다려서 먹는다면, 이는 객례로 자처하는 것이네.
‘연장자를 모시고서 밥을 먹을 때 제사하는 것이 마땅하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사계장(沙溪丈- 사계 선생)의 설이 헤아려 짐작한 것이 마땅함을 얻었네.” 하였습니다.
[답]
정우복의 설이 제대로 된 것이네.
다만 옛날에는 좌중(座中)의 상객(上客)이 술로 제사하였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제사하지 않았네.
국자좨주(國子祭酒)의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네.
그러나 《가례》에는
“사시(四時- 4계절)의 제사를 지낼 때에는 정위(正位)에 있는 사람은 모두 술로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고례와는 같지 않은데, 그 뜻을 상세히는 모르겠네.
▲ 염(厭)의 뜻
[문]
《가례》 사시제(四時祭)의 합문조(闔門條)에 ‘이른바 염(厭)이다.’ 하였습니다.
염의 뜻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예기》 증자문(曾子問)에 상세하게 나오네.
○《예기》 증자문의 주에 이르기를,
“‘염(厭)’은 바로 배부르게 먹는다는 뜻인데, 신이 흠향하는 것을 이른다.
염에는 음염(陰厭)과 양염(陽厭) 두 가지가 있다.
음염이란 것은, 시동씨(尸童氏- 제사 때 신을 대신하는 아이)를 맞이해 오기 전에 축(祝)이 잔을 따라서 올린 다음 주인(主人)을 위해서 귀신에게 말을 하여 흠향하도록 권하는 것인데, 이때에는 깊숙하고 고요한 실(室)의 구석에서 한다.
그러므로 음염이라고 하는 것이다.
양음이란 것은 시동씨가 일어난 뒤에 좌식(佐食- 제수를 주관하는 자)이 시동씨의 자리 앞에 있는 천조(薦俎- 신(神)에게 제수(祭羞)를 바치는 일)를 철거하여 서북쪽 모퉁이에다가 설치하는데, 방 안의 밝은 곳을 찾아서 설치한다.
그러므로 양염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제정한 뜻은 귀신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기에서나 여기에서나 신이 흠향하여 실컷 먹을 수가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하였다.
○향상(享嘗) : 향(享)은 봄 제사이고, 상(嘗)은 가을 제사이다.
○사중월(四仲月) : 중춘(仲春), 중하(仲夏), 중추(仲秋), 중동(仲冬)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 사시(四時)의 묘제 때에 가묘(家廟)에도 함께 참례(參禮)하는 일에 대하여
[문]
사시의 묘제 때에 가묘에도 참배를 합니까?
[답]
묘제와 가묘는 장소가 이미 다르므로 비록 병행하여 거행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회재(晦齋)가 말하기를 “세속에서 정조(正朝)ㆍ한식(寒食)ㆍ단오(端午)ㆍ추석(秋夕)에 모두 묘소에 나아가 참배를 하고 청소를 하니, 오늘날 일방적으로 폐지할 수는 없다.
이날 새벽에 사당에 나아가 음식물을 올리고, 이어서 묘소에 나아가 절을 올리면 될 것이다.” 하였다.
◈ 생신(生辰)에 대하여
[문]
《가례집설(家禮集說)》에 생신(生辰- 돌아가신 考妣고비의 생신 제사)ㆍ기신(忌辰- 돌아가신 考妣고비의 기일 제사)의 설이 있습니다.
시행하는 것이 예(禮)에 맞습니까?
번거로운 것이 될 성도 싶은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답]
생신과 기신의 제사는 풍선(馮善- 중국 明명나라의 학자. 《가례집설(家禮集說)》 등을 편찬함)이 창시한 것으로 퇴계(李滉이황)가 잘못이라고 하였는데, 옳은 견해이다.
퇴계가 정도가(鄭道可- 정구鄭逑)에게 답한 편지에 “맹자(孟子)께서 이른바 예 아닌 예라는 것이 이런 유(類)를 두고 한 말인 듯하다.” 하였다.
소견)
퇴계 선생은 생신제사는 모시는 것은 '예 아닌 예'라는 예를 들어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위 문답에서는 '풍선'의 견해가 옳다고 하였습니다.
끝없는 효도의 발로로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생일날을 기려 간단히 제사를 올리는 '풍선'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생신은 살아 생전에 해마다 태어난 날을 축하해 살아있는 동안 행한 행사이므로 돌아가신 이후는 생신제를 모시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왕가에서는 생신제를 지냈습니다.(조선왕조실록 검색)
생신제는 부모님에 한해서 올리는 것이 원칙이며 복상(服喪)기간인 3년만 올리고 이후에는 폐지합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어머니 돌아가신지 7년만에 생신제사를 올리는 사진이 올라 있습니다.
복상기간 3년내에서만 생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나 돌아가신지 7년 후에 가족회의의 결정으로 생신제사를 모신들 잘못된 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문]
지금 할아버지의 묘와 아버지의 묘가 각각 몇 십리 밖에 떨어져 있는데, 사시(四時)의 묘제를 지낼 때 제사를 나누어서 지낼 만한 다른 자손이 없어서 하루 안에는 결단코 양쪽 묘에 제사를 지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영남 지방의 풍속에는 으레 며칠 전에 조상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당일에는 고비(考妣)의 묘에 제사를 지냅니다.
이 역시 주자가 제석(除夕- 섣달 그믐날밤)이 되기 전에 미리 제사를 지낸 뜻에 합치되며, 또한 노복(奴僕)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답]
날짜가 되기 전에 미리 제사 지내는 것 역시 주자가 행한 바이니, 영남 지방의 풍속이 마땅함을 얻은 것이네.
묘제는 다음 날에 제사를 지내도 된다.
[문]
《가례의절》에 이르기를,
“이단(履端- 음력 1월을 달리 부르는 말)의 제사를 해를 걸러서 행하는 것은 아마도 온당치 못한 듯하다.
이제부터는 다음 날에 지내고자 한다.”
하였는데, 이 말이 매우 옳은 듯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다른 절일(節日)도 역시 그렇습니다.
당일에 형세상 두루 다 제사 지낼 수 없을 경우에는 《가례의절》에 따라서 다음 날에 제사 지내는 것이 날짜가 되기 전에 미리 제사 지내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날짜가 되기 전에 미리 제사 지내는 것에 대해 비록 주자의 가르침이 있기는 하지만, 다음 날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더욱 편하고 마땅할 듯하네.
소견)
주자의 가르침대로 제사 날짜가 되기 전에 미리 제사를 지내는 것은 기일 이전에 제사를 모신 것이니까 그 해의 기일 전에 제사를 모신 것과 같아 제사를 바르게 모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기일이 지난 다음날에 제사를 모심은 올해의 기일은 어제로 지났으니 어제인 기일을 넘겨 오늘 제사를 모심은 다음해의 기일을 1년 앞당겨 제사를 모심과 같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