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경주 이씨의 발전’ 수정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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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이씨의 발전.
(본손 계통)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이다.
이 밖에 지손(支孫) 계통으로 판전공파(判典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 삭제) · 석탄공파(石灘公派). (월성군파月城君派. 직장공파直長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교감공파校勘公派가 등 6대파)가 있다.
한편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 ⇒ 분적도(分籍圖))에는 전술한 (*10본 ⇒ 8본)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 ⇒ 삭제). (합천이씨. 차성이씨)와 우계이씨는 거명의 윗대인 (시조 후손)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 거명의)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 (중시조 15세 열헌공- 휘 핵과 성암공- 휘 인정. 동암공 – 휘 진. 송암공- 휘 세기 3자에 이어 9명의 손자 사인공- 휘 부. 헌납공- 휘 규. 이암공- 휘 관. 익재공- 휘 제현. 호군공- 휘 지정. 국당공- 휘 천. 부정공- 휘 매. 상서공– 휘 과. 사인공- 휘 조)이 모두 현달하여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14개 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李恒福이항복)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의 세칭 8별(鼈)집안의 (화곡華谷: 李慶億이경억)집)과 (매죽헌梅竹軒:) 완(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 문형 가운데 백사(이항복)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의 (화곡(이경억)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 誠中) 후손 (매죽헌(이완)집)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고려 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일곱 임금을 모시고)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인(李公麟) ⇒ 이공린
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 차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