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이씨 입니다.(?)
타인이 나의 성씨를 물었을 때 “저는 경주이가입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글을 올렸더니 모 선생께서 자기 성만을 말할 때는 그냥 “저는 정가입니다.”로 말하고 본과 성을 함께 말을 할 때에는 ‘저는 진주정씨 입니다’. 또는 ‘저는 진주정씨의 후손 정가 입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한다고 하며 아래와 같이 댓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성과 씨는 구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鄭(정)자 성을 가진 분이 晉州(진주)라는 본관을 어느 특정인에게 하사 받게 되면, 鄭(정)은 姓(성)이고 晋州(진주)는 氏(씨)가 됩니다.
그래서 鄭姓(정성) 晋州氏(진주씨)가 됩니다.
만약에 자기 성을 남에게 말을 할 때에는 ‘정가입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하고, 본관과 성을 함께 말을 할 때에는 ‘진주정씨 입니다’. 또는 ‘진주정씨의 후손 정가 입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조께서 진주라는 씨(氏)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진주정가입니다.’ 라고 말을 하면 진주라는 씨(氏)를 받으신 시조를 낮추어서 말을 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엄격하게 구분을 하자면 현시대에 살고 계시는 분이 전주이씨라면 이분은 전주이씨의 후손이지 본인이 전주이씨가 아닙니다.
이분은 다만 전주이씨의 후손 이가(李哥) 입니다.
만약 전주씨(全州氏) 이성(李姓)을 가진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고 신분이 낮더라도 그 사람을 부를 때 ‘이가야’ 이렇게 부를 수는 있어도 ‘전주이가야’ 라고 부른다면 그 사람의 시조를 함께 지칭하여 낮추어 부르는 꼴이 되어 시조를 모욕하는 말이 됩니다.]
위의 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소견 올렸습니다.
댓글) 이이록
좋은 글로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末學(말학)이라 이해의 정도가 달라 소견도 다릅니다.
선생의 댓글에서 ‘성과 씨는 구분이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중국 한나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는 구분이 되어 따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씨(氏)와 성(姓)에 대한 사전적 해석으로는 구분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로 하십시오.
△ 씨(氏)
「접사」(인명에서 성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그 성씨 자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김씨/이씨/박씨 부인/최씨 문중/의유당 김씨/그의 성은 남씨입니다.
△ 씨(氏)
「I」 「명」(주로 문집이나 비문 따위의 문어에 쓰여)같은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
- 씨는 김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 성(姓)
「명」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인 칭호. 주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된다.
그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고아로 자랐다./여존남비의 인상을 주는 서양 사회에 있어서도,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자기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르게 ≪이희승, 먹추의 말참견≫
△ 성씨(姓氏)
「명」 '성(姓)'을 높여 이르는 말.
성씨가 같아 대불이가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 ≪문순태, 타오르는 강≫
우리 집 주인 나리 성씨를 말할 것 같으면 강가 성이올시다. - ≪박경리, 토지≫
* 우리말에서 氏(씨)라는 것은 姓(성)과 구분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姓氏(성씨)라는 말은 단순히 성(姓)의 높임말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한나라 이전 옛날의 姓(성)과 氏(씨)에 대한 개념으로는 선생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성을 남에게 말을 할 때에는 ‘정가입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하고, 본관과 성을 함께 말을 할 때에는 ‘진주정씨입니다’. 또는 ‘진주정씨의 후손 정가 입니다.’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조께서 진주라는 씨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진주정가입니다.’ 라고 말을 하면 진주라는 씨를 받으신 시조를 낮추어서 말을 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 진한(秦漢) 이전의 오랜 옛날의 개념이라면 이치에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내가 남에게 나의 본관과 성을 말할 때 “저는 경주이씨 입니다.”로 말하는 것과 “저는 경주이가입니다.”로 말하는 것이 현대의 氏(씨)와 姓(성)의 개념으로 어느 것이 바르게 말하는 것일까요?
현대에서는 우리말에 씨(氏)와 성(姓)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며 姓氏(성씨)라는 말도 단순히 姓(성)의 높임말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나를 가리켜 “저는 경주이가 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남에게 나를 낮추어 말하는 것으로 바르지 않습니까?
“저는 경주이씨 입니다.”
내가 타인에게 나를 높여 말하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이 바르게 쓸 수 있는 말일까요?
“당신은 경주이씨 입니까?”가 맞는 어법일까요?
“당신은 경주이가 입니까?”가 맞는 어법일까요?
이럴 경우 내가 타인에게 묻는 말이니 당연히 상대의 성씨를 높여 “당신은 경주이씨 입니까?”로 묻는 것이 어법에 맞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답변에서 상대에게 나를 낮추어 “저는 경주이가 입니다.”로 말하는 것이 바를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시조께서 받으신 본관을 후손이 성(姓)과 함께 함부로 쓰면 시조님이나 조상님에 대한 예를 낮추는 언사라는 것은 사고의 차이겠지요?
‘저는 경주이가 입니다.’라는 표현에서 경주는 시조님이 받은 씨(氏)이기에 경주를 붙여 말할 경우에는 시조를 높여서 말하는 경우이니 ‘저는 경주이씨 입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의 개념으로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은 氏(씨)와 姓(성)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주이씨는 시조님께서 ‘경주’라는 지명의 본관을 받으셨지만 경주는 어디까지나 지명이지 시조님과 같이 숭앙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명인 본관을 가지고 ‘나는 경주이가’라고 하면 안 되고 ‘나는 경주이씨’라고 해야 한다는 말씀은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공식적˙. 사무적인 단체명이나 종인들의 모임이나 자리,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는 ‘경주이씨’라고 함이 바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씨(氏)가 꼭 높임말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씁니다.
[김유신 씨/ 이순신 씨/ 안중근 씨/ 이승만 씨]로는 쓰이지 않으나 [김 씨/ 길동 씨/ 홍길동 씨/ 희빈 장 씨] 등으로는 쓰입니다.
◆ 姓과 氏는 어떻게 다른가? - 인터넷 복사 자료
진한(秦漢) 이후 성(姓)과 씨(氏)가 점차 하나로 합쳐져, 한대(漢代)에는 성(姓)이라고 통칭(通稱)되었다.
하지만 선진(先秦) 시기에는 姓과 氏가 달랐다.(* 성과 씨가 구분이 되었다)
姓은 모계씨족사회 시기에 발생했다.
같은 姓을 가졌다는 것은 동일한 여자 조상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姓은 "명혈연(明血緣)", "별혼인(別婚姻)"하는 작용을 했다.
氏는 姓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부계씨족사회 초기에 姓과 氏는 부계씨족 혹은 부락을 표시했다.
계급사회에 들어와서 氏는 귀천을 구별하는 의미가 있었으며 귀족 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
춘추전국 시기에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생겨나면서 성씨제도(姓氏制度) 역시 혼란이 발생하였다.
원래 姓은 어떤 한 씨족이 숭배하던 토템이나 혹은 거주지를 나타내었다(熊· 姜).
하나의 씨족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인구의 증가로 몇 개로 갈라지게 되고, 이 새로 갈라져 나온 씨족은 다시 새로운 토템이나 거주지를 자신들의 명칭으로 함으로써 姓의 가지가 생겨났다.
부계씨족사회에 이르러 인구가 증가하고 활동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姓의 지파는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각 지파마다 하나의 특수한 칭호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氏이다.
따라서 姓은 舊來(구래)의 族號(족호)이며, 氏는 후에 나타난 族號(족호)라고 할 수 있다.
계급사회에 진입한 후 氏는 貴賤(귀천)을 구분하는 표지가 되었다.
氏는 귀족남자 만을 일컫는 전문적인 호칭이었다.
귀족 여자들은 姓을 칭했으며, 이것은 족외혼이 가능하게 했다.
결혼 전의 여자는 姓 앞에 순서 등을 나타내는 이름을 붙였고(孟姜· 叔), 출가하면 姓앞에 국명을 붙이기도 했다.(秦姬)
卿大夫(경대부)에게 시집갈 경우 대부의 氏를 姓 앞에 붙이기도 했다.(趙姬)
氏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제후는 분봉 받은 국명을 자신의 氏로 했다(夏氏· 周氏)
卿大夫(경대부)는 하사 받은 采邑(채읍)을 氏로 했다.(제나라의 崔씨· 鮑씨)
官職(관직)을 氏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司馬氏· 司空氏)
이 외에 祖父(조부)나 父의 字(자)- (孟孫氏· 叔孫氏), 諡號(시호)- (文氏· 武氏· 昭氏), 爵位(작위)- (王氏· 侯氏), 居處(거처)- (南宮氏· 百里氏)를 氏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춘추시기에 귀족 남자들이 姓을 칭하지 않았던 것은 姓은 태어나면서 얻는 것으로 氏만 말하면 곧 姓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始祖(시조)의 姓이 이미 오래 되어 단지 시조의 姓만 말해서는 현재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방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에게 그 祖父(조부)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氏를 칭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氏는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심했다.
특히 제후와 卿大夫(경대부)의 경우 1대 사이에 氏가 바뀌기도 하였으며, 동일한 사람이 서로 다른 氏를 갖기도 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귀족이 몰락하여 천민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귀족 신분을 표시하는 氏는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한대에 이르러 점차로 평민들도 姓氏(성씨)를 갖게 되었다.
한편, 여러 가지 이유로 성씨가 바뀌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賜姓(사성), 避諱(피휘), 소수 민족의 改姓(개성), 音訛(음화), 劃數(획수)나 글자의 생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