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는 자신이 찾아야 합니다.
●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이제 자녀를 낳아서 내 뿌리가 어딘지를 알고 싶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께 듣기로는 익재공파?. ?대손이라고 했고 시조는 : 이알평 등등...
유명한 사람으로 부통령 이시영 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이시영씨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방송을 보고 알게 되어서 찾다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독립운동가시네요
할아버지 성함은 이학○. 아버지는 이◇종(동)자 돌림이라 하셨던 것 같고요.
형제들 이름에는 □호. ○호. ◇호. 병제 이렇습니다.
어떤 놈이 이완용의 자손이라 해서 그런가 싶었고 피해의식 속에 살았는데
뿌리를 몰라서 당한 것 같아서 억울합니다.
답변) 이이록
▲[자녀를 낳아서 내 뿌리가 어딘지를 알고 싶습니다.]
- 아들과 딸을 낳고 기르다보니 나의 뿌리를 알고 싶어졌다는 것이겠지요.
계대를 밝히지 못하여 뿌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아버지 이상 직계 조상님의 계대를 알아
익재공파이니 익재공파 족보를 한장 한장 뒤져
수고와 노력. 시간을 들여 계대를 찾내어 밝혀야 할 것입니다.
▲[시조- 이알평.]
- 우리 경주이씨 시조님은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입니다.
신라 건국 전 사로 6촌 중 알천 양산촌 촌장이시고
6촌장의 수장으로 화백회의를 주재하셨으며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신라를 건국한 원훈(元勳)으로 좌명공신(佐命功臣)이었으며
관직은 아찬(阿餐. 阿飡- 6두품)으로 군무를 관장하였고
3대 유리왕 9년(서기32년) 양산촌을 급량부(양부)로 개칭하면서
급량부 대인으로 호칭되었고
이때에 이씨(李氏) 성을 사성(賜姓- 임금으로부터 성을 받음) 받았습니다.
표암(瓢巖- 표주박 표. 바위 암에서 ‘박바위’- ‘밝바위’라고도 함)
즉 박바위에 강림하였기 때문에(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
표암을 호로 하여 '표암공'이라고 하기도 하고
관직명을 따서 ‘아찬공’이라고도 후손들이 호칭합니다.
▲[유명한 사람으로 부통령 이시영- 독립운동가.]
- 성재 이시영(李始榮)선생은 조선 임진왜란 때
구국의 명신 백사공(白沙公)의 10대손이다.
백사공의 가문은 그 유례가 없을 만큼 번창하여
10대손인 성재(휘 시영)선생에 이르기까지
부통령 1인, 영상(領相) 6인, 그리고 3인의 문형(文衡)을 배출한 명문이다.
성재(휘 시영)선생은 우찬성(右贊成) 유승(裕承)공과
동래정씨(東來鄭氏) 사이에서 7형제 중 5자로 태어났다.
17세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출사(出仕)하여 19세에 형조좌랑이 되었으며
23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한 다음 요직을 거쳐
26세에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 정3품)에 이르고
38세에 평안남도(平安南道) 관찰사(觀察使)에 임명되고
이듬해에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
그 다음해에 한성 재판소장, 고등법원 판사에 이르렀으며
종2품 태극팔괘장(太極八卦章)을 받았다.
을사조약(乙巳條約. 단기4238. 서기1905)이 체결되자
동지들과 모임을 가지고 나라의 장래를 숙의(熟議)하였다.
우당(이회영)선생과 성재(이시영)선생 6형제는 전 가족을 솔가(率家)하여
나라가 망하던 해 12월에 전 가족 40여명이 만주로 떠났다.
만주 통화현 합니하(哈泥河)에 넓은 대지를 매입하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무관학교를 세워
만주 일대에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3,000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홍범도(洪範圖)의 지휘 아래 왜군 100여명을 사살한《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와
김좌진(金佐鎭), 이범석(李範奭)의 통솔로 수천 명의 왜군을 섬멸한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가 신흥무관학교 출신에 의한
대첩(大捷)이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상해로 내려가서 임시정부(臨時政府)를 창설하고
법무총장과 재무총장, 의정원장에 추대되었고
무인년(戊寅年. 단기4271.서기1938)에 중경(重慶)으로 임시정부가 이사한 후
이때부터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의 법무총장과 재무총장을 번갈아 맡았다.
한민족의 긍지(矜持)를 제고시키고자
피맺힌 글 ≪駁黃炎培之韓史觀≫이라는 저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을유년(乙酉年. 단기4278.서기1945)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한민족은 36년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해방은 되었으나 우선 국토의 분단. 민족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골육상쟁의 참상이 사회혼란을 부추겼다.
선생은 고국에 돌아와서 성균관 총재.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에 피선되었다가
뒤에 대종교(大倧敎)의 대표직만 빼놓고 일체의 공직에서 탈퇴하였다.
1948년 7월 3일에는 국회 본회의에 나아가서 198명의 민의원에게
“국호(國號)를《대한민국(大韓民國)》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7월 12일 대한민국 헌법이 통과되고 16일 정부조직법이 가결되면서
20일에는 대망의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대통령에 이승만, 성재 선생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단기4284년(서기1951) 5월 9일 이승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여 부통령직을 사퇴하고
저 유명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로부터 1년 후에 선생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민주세력과
국민의 여망을 거부할 수 없어서 대통령 출마를 하였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단기4286년(서기1953) 4월 15일 새벽 2시경에
동래(東萊) 온천의 우사(寓舍)에서 영면하셨다.
▲[아버지께 듣기는 익재공파?]
- 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있으며 익재공파가 맞을 것입니다.
익재공파는 경주이씨 14개 대파 중 하나로
고려 말에 학자. 정치가. 문장가. 시인으로 경주이씨를 대표하는
익재공(휘 제현)을 파조(파시조)로 하여 분파하고
그 후손들이 익재공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 [?대손]
1세 -→ 2세 - -→ 3세 - → 4세 →--→17세 →--→42세 → 43세 → 44세-→ 45세
소판공..병부령공..낭중공..병정공......익재공........호.건....제.준.....동........병.심
중시조............................................익재공파
(기준)...1세손.......2세손....3세손.......16세손........41세손..42세손..43세손..44세손
16세조..15세조.....14세조...13세조.....(기준).........25세손..26세손..27세손..28세손
*세=대. 세손=대손. 세조=대조로 등호(=)좌우의 용어를 같은 뜻으로 읽습니다.
'몇 대손?'은 '몇 세손?'과 같은 뜻으로 묻고 답합니다.
대손(=세손)은 조손(祖孫- 조상과 후손)간에 항상 윗대 조상을 기준으로 하되 기준은 헤아리지 않고 기준의 다음 아랫인 아들을 1세손(=1대손)으로 읽고 다음 아랫대인 손자를 2세손(=2대손), 다음 아랫대인 증손자를 3세손(=3대손)....등으러 헤아려 내려가
중조 42세 '호.건'항렬이면 '중시조님의 41세손(=41대손)'이고 '익재공의 25세손(=25대손)'이 되고 중조 45세 '병.심'항렬이면 '중시조님의 44세손(=44대손)'이고 '익재공의 28세손(=28대손)'이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 이학○. 아버지 - 이◇종 - (동)자 돌림.
형제들 이름 - □호. ○호. ◇호. 병제.]
- 조부 ~ 형제들까지 항렬자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부 - - → 아버지 - - - - → 형제
학○..........◇종(‘동’항렬)....□호. ○호. ◇호. 병제
43세..........44세.................45세 – 부친을 ‘동’항렬로 보았을 때 - ①
제.준.........동.....................병.심
40세..........41세.................42세 – 형제들을 ‘호’항렬로 보았을 때 - ②
희.형.........재.....................호.건
조부님의 휘(이름)에는 항렬자가 없고
부친께서 ‘동’항렬이시라면 조부님과 형제들 항렬자와 세수는
①과 같고 형제들의 항렬을 ‘호’자로 보면 세수는 ②와 같이 읽어야 합니다.
어느 것이 정확한지를 알아두셔야 할 것입니다.
▲[어떤 놈이 이완용이 자손이라 해서 그런가 싶었고
피해 의식 속에 살았는데 뿌리를 몰라서 당한 것 같아서 억울합니다.]
- 1) 이완용과는 전연 관계가 없습니다.
이완용은 경주이씨가 아니고 종친님은 경주이씨이니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됩니다.
2) 경주이씨 익재공파라고 들었다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부통령 휘(이름) 시영 선조님은 계대가 상서공파입니다.
익재공과 상서공은 중조 17세로 4촌 형제간이며
대파로 분파한 대파조(대파 시조)입니다.
3) 조부님 휘 (학○).부친 휘 (◇종)은 경주이씨 항렬제차에 따른 항렬자가 아닙니다.
4) [형제들 이름- □호. ○호. ◇호. 병제]에서 보면
형제들 항렬자는 중조 42세(대) 'O 호(鎬)'자 항렬 같습니다만
위의 글로서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형제들 항렬이 '호'자 항렬이시라면 앞으로는 아래와 같이 알아두십시오.
중조(중시조) 42세(대)의 뜻은 중시조님으로부터
마흔두 번째로 태어난 자손(후손)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대파명 익재공파를 넣어 말씀하실 때도
'익재공파 42세(대)'라고 하셔야 합니다.
익재공파 뒤에는 세(대)로 말을 해야지 세손(세손)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중시조, 익재공(중조 17세 휘 제현) 뒤에는 세손(대손)으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몇 대손(세손)'은 조손(祖孫- 조상과 후손)간의 관계를 묻는 것이니
사람과의 관계를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파명은 사람이 아니니 파명 뒤에는 세손(대손)으로 말할 수 없으니
'~~공파 42세손(대손)'은 쓸 수없는 말입니다.
‘중조 42세(대)’ . ‘익재공파 42세(대)’ 로 말하고
‘중시조님의 41세손(대손)’ . ‘익재공의 25세손(대손)’으로 말하는 것이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문의자 댓글) ○호
- 정말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부분이라 애매모호 했는데 이제야 후련해집니다.
내 조상과 핏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 참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