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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 연화리 경주이씨 집성촌. - 189

녹전 이이록 2012. 3. 8. 11:37

■ 미륵도 연화리 경주이씨 집성촌. - 189

 

 

*문의와 답변의 글은 경주이씨 홈페이지와 전통의 명문 경주이씨 카페와 익재공후 판윤공파 카페의 ‘질문과 답변’ . ‘궁금한 것’ 난에서 답변이나 소견. 수정 사항 건의 등으로 올린 내용들입니다.

 

● 저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화리 중화동에 사는 첨정공파 38세손 이○환(27살)입니다.

 

‘우’자를 쓰는 형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우’ 항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중화동은 대부분이 경주이씨들로 구성된 집성촌 입니다.

 

근데 저는 어려서 ‘상서공파’인줄 알았는데 집안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첨정공파’라고 하시는데 첨정공파의 후손인 저희가 어떻게 통영 그것도 섬마을 미륵도에 까지 내려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 하여 혹 이에 대하여 아시는 분이 계시면 여쭤봅니다.

 

질문:

 

1. 입향조가 (여기에 내려오신 분) 누구이신가?

 

2. 첨정공파의 후손으로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이 계신가?

 

3. 국단공파 38세손과 첨정공파 38세손의 촌수 차이와 결혼이 가능한지?

 

4. 입향조께서는 왜 섬으로 오셨는지...?

 

(답변) 이이록

 

달아 공원과 통영수산과학관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펼쳐진 경치는 평생 잊지 못할 한 폭의 그림이지요.

 

시내에서 미륵도의 연결다리를 건너 오른쪽 당포. 중화. 연화. 연명 마을을 지나 달아 마을과 척포 마을에서 낚싯배 빌려 타고 밤낚시와 갯바위 낚시를 즐기던 마을이었기에 어느 정도 지리는 알고 있는 편입니다.

 

▲[상서공파인줄 알았는데 집안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첨정공파라..]

 

- 상서공파도 맞는 말씀이고 첨정공파도 맞는 말씀입니다.

 

대파가 상서공파(파조 중조 17세 상서공 휘 과)이고 중파가 첨정공파(파조 중조 21세 첨정공 휘 석견)이기 때문입니다.

 

상서공(휘 과)의 현손인 숭수. 철견. 정견. 석견 중 4째가 석견 할아버지입니다.

 

대파와 중파명을 연이어 말할 때는 ‘상서공후 첨정공파’라고 보통 칭합니다. 

 

▲[입향조가 (여기에 내려오신 분) 누구이신가?

 

- 한 마을이 경주이씨 집성촌인데 입향조가 누구신지를 모르다니 도리어 궁금합니다.

 

윗대 어른들께 한 번 문의해 알아보세요.

 

여기에 문의하는 것보다는 어른들께 문의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아무도 모르신다면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족보에 보면 할아버지 행적난 뒤에 ‘○墓는 ~~’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산양읍 중화리 선영에 맨 처음 묘를 쓴 할아버님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분명 다른 지역에 묘를 섰을 것이고요

 

이곳에 맨 처음 묘를 쓰신 할아버님을 ‘입향조’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시제를 올리지 않습니까?

 

시제를 올릴 때 자세히 살펴보거나  물어보시면 알게 될 것 같은데요.  

 

▲[첨정공파의 후손으로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이 계신가?]

 

- 전국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겠지요.

 

족보 행적난에  ‘○墓는 ~~’이라고 씌어 있는 묘의 소재지가 대체로 그 지역에 거주하며 살았던 곳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족보를 살펴보면 세계 표 아래쪽에 주소지가 밝혀진 족보도 있으니 살펴보세요.

 

▲[국단공파 38세손과 첨정공파 38세손의 촌수 차이와 결혼이 가능한지?]

 

-‘국단공파 38세손과 첨정공파 38세손’은 잘못 말씀하신 것입니다.

 

‘국당공파 38세와 첨정공파 38세’로 말을 해야 바릅니다.

 

즉 ‘세손’에서 ‘손’자를 빼고 읽어야 바르게 읽는 것입니다.

 

‘국단’은 ‘국당’으로 바르게 읽고 파명 뒤에는 ‘세’로만 읽지 ‘세손’으로 읽지 않습니다.

 

국당공파 38세. 첨정공파 38세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사귀는 두 분이 경주이씨 중조 38세 ‘우’ 항렬이신 모양입니다.

 

첨정공이 중조 21세이나 그 윗대는 중조 17세 상서공(휘과. 상서공파 파조)이고 국당공(휘 천. 국당공파 파조)도 중조 17세로 상서공과 국당공은 친형제간입니다.

 

상서공과 국당공은 형제로 중조 16세 송암공(휘 세기)의 아들로 국당공(휘 천)은 장자이고 상서공(휘 과)은 3자입니다.

 

국당공과 상서공의 후손인 두 분을 촌수로 따져보면 44촌간입니다.  

 

현재 9촌 이상은 동성동본이 결혼하더라도 어떤 법적 책임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동성동본 결혼을 반대합니다.

 

첫째는 동성동본과 결혼하면 가족간의 항렬에 따른 호칭이 이상하게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의 삶이란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양심과 도덕과 규범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계. 방계. 일가 상호간에도 호칭이 있고 ‘세(대)’수도 있고 대손(세손). 대조(세조)로도 읽고 촌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동성동본인 종친끼리 결혼을 하면 자신이 낳은 자식이 항렬로 숙항(아저씨뻘)도 되고 조항(할아버지뻘)뻘 이상의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친회에서나 사회생활에서 종친끼리 처음 만남이 있을 때 이름의 항렬자로 차서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아저씨. 조카님. 형님. 동생. 대부님. 조항님 등으로 예를 갖추어 칭합니다.

 

그런데 같은 종친끼리(동성동본) 결혼하였을 때 예를 살펴봅시다.

 

예를 들면 남자가 ○○공파 37세 ‘종’ 항렬이고 여자가 ◇◇공파의 40세 ‘희‘ 항렬의 두 남여 종친간이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을 때 두 부부의 관계는 무려 4세의 차이로 증조손 뻘의 관계로 아내는 남편의 증손녀 뻘이고 남자는 여자의 증조부 뻘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결혼하면 자식을 낳습니다.

 

그 자식은 아버지의 항렬자 다음인 38세 ’우‘ 항렬입니다.

 

어머니는 40세 ‘희’ 항렬이고 아들은 38세 ‘우’ 항렬이니 모자간이면서 자신이 낳은 자식보다 항렬이 두 단계나 낮아 자식이 어머니의 조항(祖行- 할아버지 항렬)뻘이 됩니다.

 

어머니와 자식간의 관계가 항렬로는 거꾸로 배분이 높은 조항(祖行)이 되니 이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까요?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 도리어 항렬과 세수로는 ‘할아버지뻘’이 되고 어머니는 아들의 손녀 뻘로 말하게 되는 것이니 참으로 해괴하고 이상한 관계가 맺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동물과 같이 촌수도 없애고 호칭도 없는 세계이면 누가 뭐라고 할까요?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배우자는 많은 다른 성씨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설명이 바르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여간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입니다.

 

촌수가 먼 동성동본과의 결혼에 어느 분이 유전자 운운하니까 올라온 젊은 분들의 글이 무슨 쓸데없는 말이냐? 는 것이지요.

 

이리저리 멀고 먼 촌수끼리의 유전자가 섞여도 후손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없다는 인식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종친회 카페에 미국에 체류 중인 어느 종친님이 글을 올려 주었습니다.

 

같은 동성동본(평리공파와 합천이씨) 끼리 결혼을 했는데 낳은 아이가 장애아란 것이지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대번에 같은 성씨임을 확인하는 질문부터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동본 결혼의 심각성을 알고 결혼하지 말라는 글을 올려 주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수십만 명이나 수백만 명 중에 한명 꼴이지만 자신의 처지로는 이런 경우를 당하니 매우 심각해서 올린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혈족끼리의 결혼에서 장애아의 출산은 알려진 일입니다.

 

자세히는 모르나 인터넷에 올라있는 혈족 결혼에 의한 질환입니다.

 

▶중세후기에 동유럽에서 귀족끼리의 [혈족 결혼]으로 생긴 ‘적혈구 생성 이상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가족성 지중해열은 성염색체 열성질환으로 유전됩니다.

 

태어난 아이는 가족성 지중해열을 일으키는 유전자 때문에 병에 걸립니다.

 

[혈족끼리의 결혼]은 2명의 보인자가 하나가 되게 하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입향조께서는 왜 섬으로 오셨는지...?]

 

왜 미륵도로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도 집안 어른들께 여쭈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화로 아니면 정치적으로 낭패를 당하여 깊은 산중이나 섬으로 들어가 몸을 숨겨 살았던 조상님들은 족보 행적에 ‘~~으로 인하여 낙남하였다.’는 기록이 남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주로 생활고로 인하여 산중으로 농사지을 땅을 찾거나 바닷가로 가 어부가 되는 생계유지 차원에서 옮겨가 주거지로 하는 경향도 있었겠지요.

 

옛날에 거제도와 남해도 등이 귀양지로 유명합니다.

 

상서공파보가 없어 찾아드리지를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