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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파? 소판공파?

녹전 이이록 2012. 1. 28. 12:24

■ 관람파? 소판공파?

 

 

● 아버지께서 저의 파가 경주이씨 중에 익재공파에서 분리된 관람파라고 해서요.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도 관람파란 것은 없네요.

 

어릴 적에 들은 바로 할아버지는 ‘상'자 돌림을 쓰시고 아버지는 ’희'자를 저는 ‘재'자를 돌림으로 써야한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답변) 이이록

 

▲[할아버지는 ‘상'자 돌림을 쓰시고 아버지는 ’희'자를 저는 ‘재'자...]

 

경주이씨 항렬제차 표에 따르면 종친님은 항렬자를 세수에 맞게 바르게 사용하였습니다.

 

‘상’항렬은 중조 39세이고 ‘희’ 항렬은 중조 40세이고 ‘재’항렬은 중조 41세입니다.

 

▲[익재공파에서 분리해온 관람파...]

 

‘관람’이 아니고 ‘관란(觀爛)’입니다.

 

‘관람파’는 대종보의 파명 기록에는 없는 파명입니다.

 

익재공파에서 분파된 파명이 아닙니다.

 

관란공 집안을 일러 관람파라고 한 모양입니다.

 

관란공은 경주이씨 14개 대파의 하나인 교감공파(校勘公派)입니다.

 

중조 19세 교감공(휘 존사)의 6세손(대손)인 중조 25세 관란(觀爛) 이승증(李承曾) 조상님을 말합니다.

 

관란공파는 아마 집안에서만 필요에 의해 부르는 파명 같습니다.

 

공식적으로 교감공파 대종회에서 인정하고 부여된 파명이 아니니 [교감공파 관란 문중]으로 말하는 것이 바를 것입니다.

 

▲아래는 교감공(휘 존사) ~ 관란공(휘 승증)의 계대입니다.

 

1세 →----→ 19세 - →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 25세

중시조(거명)..존사...........량........환.........윤흥.....철동......백한......승증

...............(교감공파)........1세손....2세손...3세손...4세손....5세손.....6세손

 

관란공(휘 승증)은 교감공(휘 존사)의 6세손(대손)입니다.

 

▲ 몇 세손(대손)?

 

1세 - → 2세 → 3세 → 4세→---→ 25세→--- → 39세 → 40세 → 41세

중시조...아들....손자.....증손자..........승증................相(상).....熙(희)....在(재)

(기준)....1세손...2세손..3세손............24세손...........38세손...39세손...40세손 

........................................................(기준)..............14세손...15세손...16세손

 

*[세=대. 세손=대손. 세조=대조]

 

중조 41세인 ‘재’ 항렬은 ‘중시조님의 40세손’이고 ‘관란공(휘 승증)의 16세손’입니다.

 

▲ 관란(觀爛) 이승증(李承曾)

 

1515(중종 10)~1599(선조 32).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의병장이다

 

자는 희로(希魯), 호는 관란(觀瀾)이며 경주 출신으로 태종 때의 위사공신(衛社功臣) 공조판서 양(良)의 증손이다

 

성리학자 김대유(金大有)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560년 추천으로 건원릉참봉·

 

1562년 사옹원제조· 1564년 상의원제조·

 

1580년 종부시전첨(宗簿寺典籤)· 사도시직장 등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모친상을 당하여 3년 시묘를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절하던 자리가 1척이나 움푹 파였으며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다가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관찰사가 공의 학문과 효행을 장계하여 정려(旌閭)가 내렸으며 마을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충효동(忠孝洞)’으로 바꿨다 한다.

 

말년에는 금학산(金鶴山)으로 들어가 삼회당(三會堂)을 짓고 후진을 가르쳤는데 문도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8세의 노구로 창의(倡義)하여 1,000여명의 군사를 이끈 의병장으로 왜적(倭賊)이 자인(慈仁- 경북)에 침입하므로 군사(軍師) 박응성(朴應誠)에게 퇴로(退路)를 막으라 하고 전면(前面)에서 들이치니 왜적이 대패하여 시체가 10리에 깔렸다.

 

공이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리고 사림(士林)은 지곡(智谷)서원· 도연(道淵)서원· 문호(汶湖)서원에 공을 각각 배향하였다.


 

● 족보를 보니 제1세 분이 ‘이거명’으로 되어 있고 ‘이거명’의 아들이 ‘금현’으로 되어 있거든요.

 

소판공파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소판공파 42대손. 돌림자는 호(鎬) 이○호 입니다.

 

댓글)

 

오문의 시조는 표암공 휘 알평이며, 소판공 휘 거명 할아버지는 오문의 중시조입니다.

 

소판공파라고 하지 않습니다.

 

△ 상◇

 

중시조 휘 거명 할아버지로부터 42대손(代孫)이 아니고 41대손代孫)입니다.

 

42세손(世孫)이 맞습니다.

 

세손(世孫)과 대손代孫)을 혼돈하시었군요.

 

답변) 이이록

 

▲[소판공파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소판공파’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조 휘 알평의 원대손이신 중시조이시며 신라 말에 소판 관직에 계셨던 휘 거명 조상님을 후손들이 소판공이라 칭합니다. 

 

이 소판공을 기세조로 하여 1세로 하고 중시조님부터 세계가 이루어지니 이 조상님이 ‘경주이씨 중시조’이지 이를 가리켜 ‘소판공파’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판공에 대하여는 ‘이거명’. ‘경주이씨 중시조’로 검색하시면 행적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중조 17세에 와서 본손 4촌간 8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8대파로 분파를 하였으니 이에서 분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니 지손계통에서 6대파로 분파하여 총 대파는 14개 대파로 분판된 것입니다.

 

14개 대파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성암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호군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판전공파. 월성군파. 직장공파. 석탄공파. 진사공파. 교감공파이며 이후 중조 21세 전후로 각 대파에서 다시 중파로 분파되고 이후 대강 26세 전후로 다시 소파로 분파됩니다.

 

* 중조 17세에서 대파로 분파하였으나 다른 지손 계통에서 윗대 조상님 중 훌륭하고 유명하신 조상님을 찾다보니 중조 15세 조상님을 파조로 하는 파도 있고(판전공파) 대파에서 바로 3형제가 뛰어나니 중조 18세에서 중파로 분파하기도 (국당공파에서 중조 18세 3형제 문정공. 제정공. 정순공의 분파)한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집안을 크게 중흥(형제가 크게 현달한 것 등)시킨 조상님을 기준으로 분파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 종친님은 '입향조'를 기준으로 분파명이 주어진다는 주장을 합니다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만약 입향조를 기준으로 분파된다면 140만 전 종인의 분파명만 수천 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대. 중. 소. 지파명까지 100개가 넘지 않습니다.   

 

물론 입향조가 되시는 조상님도 분파할 수는 있는 것이지요.

 

▲[소판공파 42대손. 돌림자는 호(鎬) 이○호 입니다.]

 

경주이씨 항렬제차 표에 따르면 ‘호(鎬)’ 항렬은 ‘중조 42세’입니다.

 

우리 경주이씨 조상님들은 [세=대. 세손=대손. 세조=대조]와 같이 등호(=) 좌우의 용어를 같은 뜻으로 읽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대’이니 ‘중조 42세’는 ‘중조 42대’로 말하고 읽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소판공파 42세손’이 아니고 ‘중시조(중조) 42세(42대)’라고 읽는 것이 바릅니다.

 

세손(대손)으로는 다음 표와 같이 읽습니다.

 

1세 - → 2세 - → 3세 →---→17세 → 18세→---→42세

중시조....아들.......손자.............익재공....아들.............‘호’항렬

(기준).....1세손.....2세손...........16세손...17세손..........41세손

.................................................(기준)....1세손............25세손

 

*[세=대. 세손=대손. 세조=대조]

 

중조 42세 ‘호’ 항렬은 ‘중시조님의 41세손’이고 ‘익재공의 25세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