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 몇 대손. 대동항렬. 팔별집과 자라
● '국당공파' 와 '국당파'는 다른 파인가요?
저희 할아버지께서 ‘상’자 돌림을 쓰셨고 아버지께서는 ‘형’자 돌림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여자라 돌림자를 쓰지 않고 그냥 이름을 지었다고 하던데 그럼 제가 몇 대손일까요?
답변) 이이록
1.'국당공파'와 '국당파'는 다른 파인가?
- 같은 파입니다.
중조 17세 휘 천 선조님의 호가 ‘국당(菊堂)’입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함부로 ‘국당’이라고만 호칭하면 후손으로서 경망스럽습니다.
후손이 조상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의미에서 ‘公’자를 넣어 ‘국당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당공파는 국당파에서 公자를 넣어 조상님의 호를 더 높여 호칭한 것입니다.
후손들 스스로 조상님을 높이고 자신들이 속한 파명의 격을 높여 부른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2.[조부님- ‘상’ 항렬. 부친- ‘형’ 항렬. 그러면 저는 몇 대손일까요?]
조부님은 ‘상’자 항렬로 중조 39세이고 부친은 ‘형’자 항렬로 중조 40세입니다.
그러면 종친님은 중조 41세 ‘재’자 항렬입니다.
종친님은 중시조님으로부터 마흔한 번째로 태어난 후손(자손)이라는 의미입니다.
중시조의 몇 대손(세손)이냐?
(묻기는 ‘몇대 손’으로 물었지요? ‘몇 대손’과 ‘몇 대^손’은 뜻이 다릅니다.
‘대손’은 맨 윗대조상님 기준으로 아랫대를 헤아려 말할 때에 쓰이는 용어이고 ‘대^손’은
대와 손을 띄어 말하는 것으로 뜻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중조 41세 ‘재’ 항렬은 중시조님의 40세손(40대손)으로 ‘세손(대손)’을 읽습니다.
그런데 중조 ‘41세^손’은 ‘41세 후손(자손)’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다른 분들의 답변이 41세를 모두 41세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 읽은 것입니다.
중조 41세는 중시조님의 40세손(40대손)으로 읽는 것이 바릅니다.
간편셈으로 ‘세손(대손)’ 헤아리는 방법을 말씀드리죠.
중조 41세의 수 41에서 -1를 한 수 40에 세손(대손) 단위를 붙여 읽으면 40세손(대손)입니다.
즉 중조 41세인 ‘재’ 항렬은 중시조님의 40세손(대손)으로 읽는 것입니다..
● 저는 ‘형’자 돌림입니다. 제가 무슨 파이고 몇 대손인지...
답변) 이이록
종친님이 ‘형’자 항렬이시라면 중조 40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상’자 항렬이라야 하고 중조 39세(39대)입니다.
항렬자로는 무슨 파인지는 전연 알 수 없습니다.
직계 계대의 조상님 중 유명한 선조님 휘를 알아야 혹간 파명을 알 수도 있습니다.
종친님께서 ‘형’자 항렬이시라면 중조 40세이신데 이것으로 ‘중시조님의 몇 대손인가?’는 알 수 있습니다.
간편셈으로 세손(대손) 헤아리는 방법을 말씀드리죠.
중조 40세의 수 40에서 -1를 한 수 39에 세손(대손) 단위를 붙여 읽으면 39세손(대손)입니다.
-1를 한 이유는 맨 윗대 조상님이신 중시조님을 기준으로 하여
‘누구의 몇 세손?‘ 으로 읽는데 중시조님을 ’세’ 수에서 빼고 헤아리기 때문에
‘세’수에서 -1를 한 것입니다.
즉 중조 40세인 ‘형’ 항렬은 중시조님의 39세손(대손)인 것입니다.
● 얼마 전에 질문 드린 것이 있었는데
답변 내용 중 ‘대동항렬 적용시기’란 말이 있는데
그 시기가 언제이며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이이록
1868년(고종 5년). 익재공파(益齋公派)가 주류를 이루는
오촌공 문중(梧村公- 27세 오촌 휘 대건. 창평공후 생원공파) 세거지인 진천 연촌에
각파 대표 9인이 모여 항렬(行列)을 정하였는데
진천(鎭川)의 오촌공 문중(梧村公 門中)에서 정하여 준용하고 있는 항렬자를 따라서 작명키로
당시 미정(未定)이었던 우(雨)자 이하의 5대 항렬자를 새로 정하였습니다.
그 전에 항렬자를 정하여 사용하여 오던 익재공파. 국당공파. 상서공파의 집안에서는
34세까지만 종전대로 사용하던 항렬을 쓰고
35세(대) 항렬부터는 진천 문중(익재공후 오촌공 종문)에서 쓰던 항렬을
대동항렬 즉 경주이씨 전 종인들이 다같이 쓰는 항렬로 하여 쓰게 된 것입니다.
35세(대) ‘榮(영)’ 항렬부터이고 이렇게 의정(議定)한 것이 1868년이니
대동항렬 적용 시기는 이때부터인 것입니다.
아래는 진천 문중(오천공 종문)에서 쓰던 항렬자와 9인 회동에서
정한 항렬자 입니다.
..세.......항렬........오행
↓
33세.....○원.........수
34세.....집○.........목
-----------------
35세....○영..........화
36세.....규○.........토
37세.....종○.........금
---------------여기까지 진천문중에서 쓰던 항렬(?)38세.....○우..........수
39세....상○...........목
40세....○희(형).....화
41세....재○...........토
42세....○호(건).....금
---------------
각파 대표 9인 회동에서 미정(未定)이었던
우(雨)자 이하의 5대 항렬자를 새로 정하였다. 고 하였으니
42세 ‘○호(건)’ 항렬을 정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경주이씨 전 종인들이 항렬자를 적용하는 ‘세’수가
중조 35세를 기준으로 항렬을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기준은 진천 문중 항렬을 기본으로 하면서
진천 문중에서 사용하였던 오행의 첫 시작이 35세인 火행인 ‘영’ 항렬입니다.
이를 바로 경주이씨 전 종인들에게 적용하게 한 것입니다.
각기 다른 문중 3집안에서도 항렬자를 정하여 쓰고 있었는데
대동항렬을 정하다 보니 중복되는 한자의 배열과 오행에 따라 정하다 보니
36세 ‘규’ 항렬과 37세 ‘종’ 항렬이 연이어
항렬자 놓이는 곳을 이름 2자 중 앞 자에 배열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봅니다.
● 경주이씨는 자라를 먹으면 안 된다는데..
맞다면 내력이 궁금하니 답변 줄 수 있는지요.
답변) 이이록
경주이씨 모두가 자라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익재공후 창평공파 후손(자손)들만이 아래와 같은 내력으로 자라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익재공(중조 17세. 휘 제현)의 6대손인 공린(公麟. 중조 23세. 창평공)의
현몽(現夢)에서 시작됩니다.
공린은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인 박팽년(朴彭年)의 취객(娶客- 사위)이 되었는데
혼례를 치룬 첫날밤의 꿈에 용왕(龍王)이 나타나서
“내 여덟 아들이 지금 사경(死境)에 이르렀으니 어서 구해 달라.
그대가 내 여덟 아들을 구해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라.”
라고 하므로 꿈을 깨어 일어나보니 한 밤중이었습니다.
잠든 신부를 흔들어 깨서 물어보니 신부의 말이
“어머니께서 며칠 전에 사위에게 먹이려고 자라 8마리를 사다가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고 하므로 둘이서 8마리의 자라를 꺼내서 10여리 밖에 있는 호수에 방생(放生)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에 공린은 박씨부인과의 사이에 8형제를 두었는데
3남 원이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죽으니
자라 8마리를 방생하러 가는 도중에 죽은 한 마리가 그였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8형제를 둔 것은 용왕의 보은(報恩) 때문이라 여겨서
이름을 모두 자라, 거북, 고래, 곤(鯤) 등 물고기의 이름을 붙여서
오(熬)· 구(龜)· 원(黿)· 타(鼉)· 별(鼈)· 벽· 경(鯨)· 곤(鯤) 이라 했는데
한결같이 글을 잘 지어 <8문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8형제가 모두 현달하였으므로 [팔별집]으로 불립니다.
이로부터 500여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자라를 먹지 않는다고 하니
8별을 자라의 환생(還生)으로 숭봉하는 가통(家統) 때문이리라.
공린은 박팽년의 서랑(壻郞- 사위)이라는 이유로 벼슬길이 막혔었다가
어머니 남양 홍씨(南陽洪氏)가 절부(節婦)로 표창되면서
30여년 만에 길이 터져서 무과(武科)를 거쳐 현령(縣令)에 이르렀으나
3자 원이 사화(士禍)로 인하여 죽자 청주에 유배되었는데
반정(反正) 후에 신원(伸寃- 신분을 원래대로 찾음)되었습니다.
구(龜- 차자. 사미정)는 문과에 급제, 좌랑에 이르렀을 때에
아우 원(黿- 재사당. 3자)의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 후에 충주목사에 이르렀습니다.
원(黿)은 문과를 거쳐 호조좌랑에 이르렀는데
김종직(金宗直)에게 ‘문충(文忠)’의 시호를 주자고 건의한 일로
곽산(郭山)에 유배되었다가 나주로 옮기고 갑자사화 때에 처형되었는데,
반정 후에 신원이 되고 도승지(都承旨)에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