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 큰 스님
◆체원(體元) 스님 - 중조 17세
경주이씨 큰 스님으로는 고려 말 법명 체원(體元)스님이 있다.
익재공(휘 제현)의 중형(仲兄- 둘째 형)이다.
1313년 충선왕 5년부터 1344년 충혜왕 5년에 활약한 화엄종 승려로
해인사 계통임을 알 수 있으며
법수사. 반룡사. 해인사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법수사 법수당두(法水堂頭). 반룡사 주법(主法) 등은
요즘의 주지와 같은 의미이나
왕권하의 왕과의 교분이 두터움은 그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법호로서 목암(木庵). 향여(向如)이고
시호는 각해대사(覺海大師)이다.
◆ 법홍(法弘)스님 - 중조 37세
혜은당 법홍 대종사(慧隱堂法弘大宗師 ) - 상서공파
1915년 강원도 고성군 서면 백천교리 325번지에서
이시영 선생의 친족 경주이씨 규환(圭煥- 弼得)과 전주이씨 순이(順伊)의 장남으로 출생,
이름을 종오(鍾五)라 하였다.
10세 서울관악구 시흥동 호압사(虎壓寺)에 조모의 인도로 입산
14세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유점사에서 운악(雲岳)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득도
17~27세 불교 강원에서 수학
28세 천태종(현 관음성취 금룡산 천초사(淺草寺) 불교학원 불교학과 졸업(在籍淨
31세 천태종보통검정고시합격, 천태종 권율사(權律師)로 보임(補任)함
41세 부산금수사 주지에 취임.
50세 대한민국문화훈장 수상
51세 원효종 총무원장 취임.
59세 천태종 소승도보임(少僧都補任) 승려자격 1위
62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상임이사 취임
66세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상임이사
75세 원효종 종정 추대
80세 한국전불교법사연합회 총재.
85세 '부처님 발자취를 찾아서'발간
87세 대한 불교 원효종 제10대 종정으로 취임
89세 3월10일(양) 오후 6시20분 입적.
◆ 성철(性澈) 스님 - 분적종 합천이씨
세속명(본명)은 이영주(李英柱) 이고 법명 성철(性澈)이다.
한 분 근세에 유명한 분이 성철(性澈)스님이다.
분적종(分籍宗) 합천이씨(합천이씨- 분적시조 개開) 계대이다.
생몰년(음) 1912년 2월 19일 - 1993년 11월 4일
1935.................해인사에서 東山스님을 은사로 득도
1967. 7..............해인총림 초대방장
1981. 1..............제6대 조계종 종정
1991 ~ 1993. 11...제7대 조계종 종정 재임
1912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山淸郡丹城面墨谷里)에서 태어났으며,
속명은 이영주(李英柱)이다.
아버지 율은(栗隱) 이상언(李尙彦, 1881~1959),
어머니 강상봉(姜相鳳, 1893~1957)의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다.
어머니가 스님을 임신하고서는 문밖출입을 삼가고 모난 음식을 먹지 않고
모난 데 앉지 않는 등 온갖 정성으로 태교하였다고 전한다.
진주중학교(晋州中學校)를 졸업하고 출가(出家)하여
1935년 해인사(海印寺)에서 하동산(河東山) 대종사(大宗師) 밑에서 득도하였다.
속세와 관계를 끊고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하는 승려로 알려졌으며
파계사(把溪寺)에서 행한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은 유명하다.
종단(宗團)의 분규가 아물지 않은 가운데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여전히 합천 해인사 백련암(白蓮庵)에서 구도를 계속하였다.
그 후 전두환 정권 때 종정으로 조계종을 이끌었으며
지눌(知訥)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여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서로 《돈오입도요문강설》(1986) 등이 있다.
성철의 유명한 법어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수행하는 사람이 자그마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는 물이 산으로,
산은 물로 보이는 혼돈을 겪게 되지만,
깨달음의 수준이 자라면서 물은 물로, 산은 산으로 보게 된다는
즉, 만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지혜(반야· 보리)를 갖게 된다는 법어이다.
◆ 지관(智冠)스님 - 중조 37세 - 익재공후 판윤공파
법명은 지관(智冠). 세속명(世俗名- 出家 전)은 해붕(海鵬),
족보명(族譜名)은 종붕(鍾鵬)이다.
1932년 5월 11일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유계리에서 출생하였다.
1947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고향인 포항에서 출가를 하게 되었으니
15세에 병을 얻어 절에서 약을 먹으며 요양을 하던 중에
염불을 해보라는 스님의 권유에 따라 염불을 했고 병이 나아 이를 계기로 출가하게 되었다.
종붕(지관 스님)이 출가할 당시에는 통도사와 해인사 등 4~5개의 강원만 있었다.
1957년 해인사 대교과 강원을 졸업하고 28세에 해인강원의 강사가 되었다.
당시 풍조는 ‘스님 네가 학교에 간다고 하면 저놈은 마실(마을)에 가는 놈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즉 공부만 하면 스님을 안 하고 퇴속을 하는 일이 많았으나
어른 스님들이 내전을 모두 보았으니 신학문을 배워보라고 권유했고
종무소에서 학비를 대주어 당시 해인사 재무 스님과 함께 마산대학교 3학년에 편입학했다.
어른들(원로 스님)이 학비를 대주고 해서 일주일에 이틀씩 마산으로 강의를 들으러 갔고 졸업을 했다.
그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을 전공하고
1968년 동국학원 이사,
1976년 동국대 전임교수가 되어 동국대 철학박사, 종단 최연소 강사,
1986년 비구스님으로는 최초로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낸 뒤
1993년 종단 최연소 본사(해인사) 주지를 역임 했으며
2005년 제32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원장을 지냈다,
은관문화훈장(2001). 2005년 학술부문 제9회 만해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현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저서로 <능엄경약해> . <한국불교소 의경전연구> .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 신라· 고려· 조선편 외 다수 >
◇ 지관스님 가계도 - 익재공후 판윤공파
중조 17세 익재공(齊賢) → 18세 시랑공(서종瑞種)→ 19세 대사공공(원익元益)→
20세 선판서공(선瑄)→ 21세 판윤공(지대之帶) → 22세 부사공(점點)→
23세 선략공(형림亨林)→ 24세 참봉공(수광秀光)→ 25세 주부공(진津)→
26세 청와공(경한景漢) → 27세 통덕랑(상빈尙斌)→
28세 학포공(회징晦徵- 청하 유계리 입향조)→ 29세 증 통정대부(세분世粉)→
30세 문례(文禮)→ 31세 경범(京範)→ 32세 규만(奎萬)→ 33세 녹원(祿元)→
35세 통정대부(우표宇杓)→ 36세 호영(昊榮)→ 37세 규백(圭白)→
38세 차자 종붕(鍾鵬- 지관 스님)
◇ 족보 기록 (익재공후 판윤공파보)
[중조 37세 - 종붕(鍾鵬)
법명 지관(法名智冠). 승려(僧侶) 법학사(法學士).
1933년 2월 13일생.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동국대학교 총장역임(東國大學校 總長歷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