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양절(重陽節. 9月 9日)
【 二十四節候(이십사절후) 와 俗節(속절)】
금년(乙未年2015년)의《중양절》은 양력10월 21일이고 음력은 9월 9일이다,
○ 중양절(重陽節)은 ‘24절후’가 아니고 [俗節(속절)]이다,
○ 중양절(重陽節)이란 음력 9월 9일 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명절(重日名節)의 하나이다,
○ ≪중일명절(重日名節)≫ 은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 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을 말한다,
○이날들이 모두 重陽(중양)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커“중양(重陽)”이라고 하며“중구(重九)”라고도 한다,
○또 9월“중기날(重期日))”“중지(重至)”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음력 3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에 다시 돌아간다,
○가을 하늘에 높이 떠나가는 철세 를 보며 한 해의 수확을 마무리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1, 유래(由來)
1);『韓國歲時風俗辭典(한국세시풍속사전)』에는 ◎중양절(重陽節)은 중국(中國)에서 유래한 명절(名節)로 그곳에서는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행하는 한족의 큰 전통절일(傳統節日) 이다.
중양절은 중국에서는 한(漢)나라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송(唐宋)대에는 추석(秋夕)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왔다
2); 중국,『荊楚歲時記』 “九月” 條(조)에 9월 9일 모든 백성들이 들판에 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며 즐긴다,
(九月九日 四民並籍野飮宴(사민병적야음연)
○ 『續齊諧記(속제해기)』에 중국의 汝南地方(여남지방)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동한(東漢)시대에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면 재난을 면 할수 있네.”라고 하였다/
[항경]이 이날 그가 시킨데 로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 같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 풍속”은 이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 注 ◉荊楚(형초)지방은 중국의 揚子江(양자강) 중류 유역에 위치하는데 [형초세시기]는 梁(양)나라의 宗凜(종름)이 6세기경에 지은 [荊楚記(형초기)] 에다가 隋(수)나라의 [杜公瞻(두공첨)]이 增補(증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중국세시기’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續齊諧記云 汝南桓景 隨費長房遊學 長房謂之曰 九月九日 汝家中當有災厄 急令家人縫囊盛茱萸繫 臂上 登山飮菊花酒 此禍可消 景如言 擧家登山 夕還 見鷄犬牛羊 一時暴死 長房聞之曰 此可代也 今世人 九日登高飮酒 婦人帶茱萸囊 蓋始於此,,,
3);『東國歲時記』“九月九日” 條에
서울풍속에 사람들은 떼를 지어 남산과 북악산에 가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흥겹게 논다,
이것은 등고(登高)의 옛 풍속이 답습된 것이다, 청풍계, 후조당, 남한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이 모두 단풍놀이하기에 아주 뛰어난 곳이다,
○【원문】都俗 登南北山飮食 以의樂 蓋襲登高之古俗也, 靑楓溪, 後凋堂, 南漢山, 北漢山, 道峯山, 水落山, 有賞楓之勝,,
4) 『韓國一生儀禮辭典』“重九茶禮” 條에
○ [정의]- 음력 9월9일에 조상에게 지내는 “차례”를 말함,
[역사] -중국 고대사회에서는“9”를 陽數 의 極이라 하여 漢代 이래로 이날을 큰 명절로 삼아 왔다,
[신라시대]- 重九日에 임금과 신하들이 안압지 와 臨海殿 이나 月上樓에 해마다 정기적으로 모여 詩歌(시가) 를 즐겼다,
[고려시대]- 나라에서 중구일마다 공식적인 행사로서 잔치를 벌였다,
이 축하연에 문무백관을 비롯하여 송나라, 탐라, 흑수, 의 손님들까지 참석하였다,
[조선시대]- 에는 봄(3월3일), 과 가을(9월9일), 두 차래에 걸쳐 노인잔치를 크게 베풀어 경로사상을 드높였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1); ○ 이칭,
중구(重九), 국화절(菊花節), 망제일(忘祭日), 상국일(賞菊日), 산신의 탄신일(山神-誕辰日), 제비돌아가는날, 등,
[제비돌아가는날]- 민간에서는 삼짓날 날아온 제비가 이날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2); ○ 행사,
중양절사(重陽節祀), 기로연(岐路宴), 망제(忘祭), 중구차례(重九茶禮), 올벼심리, 등고(登高),
[중구차례]-중구일에 조상을 찿아 성묘하고 차례를 모신다,
특히 이날은 돌아가신 날자를 모르거나 행사한 조상을 위해 차례를 지내는 집이 많다,
[올벼심리]- “일년동안 농사를 지은 새 곡식을 먹기 전에 조상에게 먼저 대접하는 제의”를 말하며 지역에 따라 중구일에 하기도 한다,,
[등고(登高)]-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서 하루를 즐기던 [풍속]으로서 『東國歲時記』에는“서울풍속에 남북의 산에 올라서 음식을 먹고 즐긴다,
이는 登高의 옛 풍속을 답습한 것이다,
청풍계(淸楓溪), 후조당(後凋堂), 남한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이 단풍구경에 좋은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3); ○ 음식,
국화전(菊花煎), 국화주(菊花酒), 구절초뜯기(九節草), 밤떡, (栗糕인절미고), 유자화채(柚子花菜), 등,
[국화주]-옛날에는 노란 국화 꽃잎으로 술을 담그고 떡을 빚어 먹었다,
4); ○ 重陽節祀, 『歲時風俗辭典』
- 중양절에 올리는 제사를 節祀라 말한다.
보통 “茶禮”라고 많이 호칭 하는데 이는 맞지 않는 것 같다.
“茶禮”란 제사절차 중에 茶를올리는 순서가 있어서 이르는 말인데 우리나라는 차가 없으므로 대신“熟水”를 올리므로 꼭 다례라고 호칭할 이유가 없다,
한해농사를 추수하면서 먼저 陽이 겹치는 좋은날 忌祭를 모시는“선조님의 무덤”에 獻以時食을 올리므로“절사”라고 하여야 옳다고 생각한다,
“설과 추석도‘차례’가 아니라《절사》이다”,
◎,墓祭와 忌祭는 有祝三獻 이고 名節에 올리는“節祀”는 無祝一獻 이다,
◎,가정의례준칙(1973년) = 묘제는 한식,추석,중양,또는 적당한시기,에 정 해서 한다,
◎,가정의례준칙 = 1973년,대통령령 제6680호제정,
1985년3월30일,대통령령 제11671호로 2차 개정, 현재 시행중임,,
5); ○ 不祧廟 祭祀, 『歲時風俗辭典』
조선 [宣祖때에 禮曹에서] 제향절차를 아뢰면서 [重陽]이 『國朝五禮儀』 에는 속절로 열거되어 있지 않지만 이날 時食으로서 薦新 하는 것이 古禮 이므로 俗節에 해당하는 祭祀가 行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열양세시기』에 조선전기까지는 시제보다 기제를 중요시 하다가 조선중엽에 이르려 사대부들이 시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데 일년4회의 시제가 부담되여 이를 춘추2회로 줄여서 봄에는 삼짓날 가을에는 중양절에 지내는 사람이 많아 졌다 특히 중양절 시제는 조선후기 이후 영남지방에서 [不祧廟]를 모신 집안들을 중심으로 행해져 왔다,
조상에 대한 시제는 각별히 重日을 택하여 삼월 삼짓날 이나 구월 중양절에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중양 때가 되어야 햇곡을 마련 할수 있었으므로 처음 수확물을 조상에게 드린다는 의미가 크다,,,
6); ○ 望祭, 『歲時風俗辭典』九月 望祭 條,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객사하여 제사 날을 모르는 조상이나 자손이 없는 사람에게 지내는 제사,
{무후제(無後祭)] , [구일제(九日祭)] ,. [구일차래(九日茶禮)]라고도 부른다, “望祭”는 방치되거나 소외되기 쉬운 영혼들을 위한 제사다,
제사의 이면에는 외로운 영혼을 위로 함으로서 살아있는 사람의 평안을 유지하고자 하는 현세주의적 심성도 깔려 있다,
【제의방식】- [ 儒家式] 으로 진행 한다,
笏記에 맞추어 三獻官이 지내며 [음식]은 酒果脯, 메(飯), 떡(餠), 등을 차린다,